[단독] 하도급대금 지급보증서 미발급 적발돼도..97%는 시정명령 '솜방망이' 처벌 그쳐

세종=이윤정 기자 2016. 9. 29. 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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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6개월간 보증서 미지급 업체 1168개…과징금 사례 단 한 곳뿐지급보증서 없이 원청업체 부도 나면 하청업체는 속수무책

최근 4년 6개월간 하도급대금 지급보증서를 발급하지 않은 업체가 1000여개로 나타난 가운데 그 중 97%는 시정명령 처분을 받는 데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하도급업체는 지자체가 더욱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김다희 디자이너

건설업계에서 2013년 12월은 그 어느 때보다도 아찔한 순간으로 기억된다. 당시 대형 건설사 중 하나인 쌍용건설이 법정관리(기업회생) 절차를 밟게 되면서, 쌍용건설과 계약을 맺은 160여곳의 하도급업체들이 ‘줄도산’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이들이 쌍용건설과 맺은 계약은 355건, 총 7115억원어치였다.

대한전문건설협회 관계자는 “이럴 경우를 대비해 쌍용건설은 하도급업체들에게 ‘하도급대금 지급보증서’를 발급해 줘야 했지만, 쌍용건설이 2013년 초부터 워크아웃(기업재무구조개선 약정)을 신청해 두는 바람에 신용도가 하락해 하도급대금 지급보증서 발급이 어려웠다”며 “하도급업체들은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매일 불안에 떨어야만 했다”고 말했다.

최근 5년간 전국에서 하도급대금 지급보증서를 발급하지 않았다 적발된 업체가 1000여곳으로 집계된 가운데 이 중 시정명령 등 ‘솜방망이’ 처벌을 받은 업체가 97%를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도급대금 지급보증서는 쌍용건설 사태와 같이 공사를 맡긴 업체(원도급업체)가 파산 등의 위기를 맞을 경우 하도급업체에 ‘안전판’ 역할을 하기 때문에, 정부가 이와 관련한 처벌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9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황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2년부터 올해 6월까지 하도급대금 지급보증서를 발급하지 않은 업체는 총 1168곳으로 나타났다. 이 중 시정명령을 받은 업체는 1136곳으로 전체 중 97.3%를 차지했다. 영업정지와 과징금 처분을 받은 업체는 5년간 각각 31곳, 1곳에 불과했다.

지역별로 살펴보면, 적발된 업체 모두에게 시정명령을 내린 지자체는 17개 시도 중 광주, 부산, 대전, 대구 등 8곳에 달했다. 서울(99%), 울산(98%), 경북(98%), 경남(95%) 등 나머지 시도 역시 모두 시정명령 처분 비율이 90% 이상으로 나타났다.

건설산업기본법에 따르면, 원도급업체는 하도급업체와 계약을 체결할 때, 하도급대금 지급보증서를 의무적으로 발급해 줘야 한다. 다만 공사 금액이 1000만원 이하의 소규모 공사이거나 하도급업체가 대금을 직접 받는 경우엔 적용되지 않는다.

하도급대금 지급보증서는 원도급업체의 파산 등 예기치 않은 사고가 발생했을 때 하도급업체가 일정 비율 이상 대금을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하는 역할을 한다. 원도급업체가 대금을 지불하지 못할 경우, 건설공제조합 등 보증기관이 대신 지불해주기 때문이다.

법에 따라 원도급업체는 하도급대금 지급보증서를 의무적으로 발급해야 하지만, 그 비율은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이 지난해 발표한 ‘전문건설업 실태조사 분석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공공분야 하도급대금 지급보증서 교부율은 65.4%, 민간 분야는 42.9%에 불과했다.

하도급업체들은 원도급업체가 하도급대금 지급보증서를 발급하지 않았다 적발돼도 그 처벌수위가 낮기 때문에 이같은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처분 주체인 각 지자체는 적발된 업체 대부분에게 시정명령을 내리는데, 이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거나 반복적으로 적발된 업체에게만 6개월 이내 영업정지 또는 1억원 이하의 과징금을 부과한다. 업체는 영업정지와 과징금 중에서 어떤 처분을 받을지 선택할 수도 있다. 금전적 여유가 있는 업체는 과징금을 선택하고, 그렇지 않은 업체는 영업정지를 선택한다.

이에 대해 경기도 건설기술과 관계자는 “하도급대금 지급보증서를 의무적으로 발급하도록 법으로 규정한 이유는 상대적으로 을(乙)인 하도급업체가 대금을 안전히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한 것이지만, 원도급업체가 갑(甲)이라고 해서 무조건 강하게 처벌하는 것은 하도급업체를 위해서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시정명령을 통해 하도급대금 지급보증서 발급을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어 “공공분야의 경우 하도급대금 지급보증서 발급 비용을 발주자가 부담해주지만, 민간분야에선 발주자가 원도급업체에 비용 부담을 미루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원도급업체도 발주자와의 관계에선 을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하도급대금 지급보증서 발급 비용은 발주자가 계약 비용에 포함해 원도급업체에 지급하도록 돼 있고, 기업 신용도가 높을수록 저렴하다. 특히 공공기관이 발주한 공사라면 원도급업체가 부담해야 할 비용은 거의 없다. 50억원 미만일 경우 공사금액의 0.081%, 50억원 이상~100억원 미만일 경우 0.080%, 100억원 이상~300만원 미만일 경우 0.075% 등이다.

업계에서는 2013년 쌍용건설 사태, 2015년 동부건설 사태 등을 예로 들며 하도급대금 지급보증서 발급 의무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한전문건설협회의 한 관계자는 “하도급대금 지급보증서는 영세 하도급업체들을 위한 안전판 같은 존재”라며 “아무리 부도 사태가 빈번히 발생하지 않더라도 하도급대금 지급보증서 없이 사고가 터지면 그 파급력은 엄청나다”고 우려했다.

황 의원은 “하도급대금 지급보증서는 건설업계의 안정성을 위해 하도급업체는 물론 원도급업체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라며 “정부는 원도급업체들이 하도급대금 지급보증서 발급 의무를 더욱 무겁게 여길 수 있도록 그 처벌 수위를 강화하는 것은 물론 원도급업체들의 비용 부담 또한 함께 덜어줄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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