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또 다른 안치범'이 잊혀져간다

이가현 기자 입력 2016. 9. 29. 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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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박한 의사상자 기준.. 6년간 256건 중 58%만 인정

우리 사회의 ‘또 다른 안치범’에게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고(故) 안치범씨는 불이 난 건물에서 이웃을 대피시키고 목숨을 잃었다. 안씨처럼 다른 사람을 구조하다 목숨을 잃는 의사자는 매년 17명가량 된다.

하지만 숨은 의사자나 의상자가 더 많다. 정부가 의사상자 인정에 소극적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살신성인(殺身成仁)’을 몸으로 실천하는 의로운 이들을 더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예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매년 17.2명 ‘살신성인’

보건복지부는 ‘의사상자 지정 제도’가 시행된 1970년부터 올해 8월까지 46년 동안 의사상자는 737명으로 집계됐다고 28일 밝혔다. 최근 5년간(2011∼2015년) 의사자는 86명이다. 매년 17.2명꼴이다. 지난 1월 전복된 승용차를 발견하고 운전자를 구조하는 중에 달려오던 승용차에 희생된 남정화(27·여)씨, 지난해 8월 해수욕장에서 친구를 구하고 숨진 우치승(당시 14세)군 등이 ‘시민 영웅’이다. 올 들어 지난 26일 현재 의사자는 4명, 의상자도 4명이 지정됐다.

의사상자는 ‘의사상자 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라 복지부 의사상자심사위원회 심사를 거쳐 지정된다. 정부로부터 의사자나 의상자로 지정되면 보상금·의료급여·취업보호 등 혜택을 받는다. 의사자의 유족에게 주는 보상금은 2억291만원(올해 기준)이다. 인정 기준은 ‘직무 외의 행위’로 급박한 위해에 처한 타인의 생명·신체 또는 재산을 구하는 구조행위를 하다가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은 경우다.

야박한 의사상자 선정

그러나 정부가 의사상자 선정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2011년부터 올해 3분기까지 의사상자 신청은 256건이지만 150건(인정률 58.6%)만 인정을 받았다. ‘인정률이 낮다’ ‘야박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 중에 하나는 ‘지정 기준’에 있다. 이 기준은 ‘의로운 행위’ 자체보다 ‘직무와 연관성’에 초점을 두고 있다. ‘직무 외의 행위’로 의로운 일을 했냐는 것을 따지기 때문이다.

2014년 5월 전남 장성의 한 요양병원에서 불이 나자 이 병원의 간호조무사였던 고(故) 김귀남(당시 53세·여)씨는 소화기로 화재를 진압하려 했다. 병원 안을 뛰어다니며 환자와 직원들에게 “불이 났다”고 소리쳤다. 김씨는 유독가스에 질식해 사망했고, 그해 의사자로 지정됐다.

이와 달리 지난해 11월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화재 때 동료들을 대피시키다 유독가스 중독으로 사망한 화기감시자 장모(당시 50세·여)씨는 의사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장씨는 불이 붙은 배 안으로 들어가 호루라기를 불며 동료들을 대피시켰지만 ‘화기감시’라는 직무를 수행하다 사망했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었다.

이런 한계는 세월호 참사 때 여실히 드러났다. 세월호 구조작업을 돕다 사망한 민간잠수사 고(故) 이민섭(당시 44세)씨는 의사자로 지정되지 못했다. 이씨 외에 민간잠수사 22명도 의상자 신청을 했지만 인정을 못 받았다. ‘급여를 받고 잠수에 참여했기 때문에 직무 외 수행으로 다치거나 사망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게 이유다. 민간잠수사 가운데 상당수는 잠수병으로 본업에 복귀하지 못한 채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심사과정, 기준 투명성 높여야”

때문에 제도를 손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직무 외의 행위’라는 기준을 탄력 적용하고, 심사과정과 지정 기준을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김수영 변호사는 “의사상자심사위 판단에만 맡겨져 있어 법적 안정성이나 예측 가능성이 낮은 제도인 만큼 심사과정의 투명성이 제고돼야 한다”며 “좋은 일을 한 이들을 널리 기억하고 알린다는 의미라고 한다면 ‘직무 외의 행위’를 너무 엄격하게 판단하는 건 취지에 맞지 않다”고 말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타인을 위해 몸을 던진 사람을 모두 의사상자로 지정한다면 좋겠지만 이 제도는 자기 직무와 전혀 무관한데도 타인을 구하다 희생한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글=이가현 기자 hyun@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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