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백남기씨 시신 부검영장이 발부되기까지

박정환 기자 2016. 9. 28.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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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백남기 농민의 빈소에 네덜란드에서 찾아 온 둘째사위 로던 씨와 손자 지오군이 조문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016.9.27/뉴스1 © News1 사진공동취재단

(서울=뉴스1) 박정환 기자 =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뒤 숨진 농민 백남기씨(70)에 대한 부검영장이 끝내 발부됐다. 서울 종로경찰서는 서울중앙지법이 백씨의 시신을 부검하기 위해 재신청한 시신 부검영장(압수수색검증영장)을 발부했다고 28일 밝혔다.

백씨는 지난해 11월 '제1차 민중총궐기 대회' 현장에서 경찰의 물대포를 맞아 쓰러져 중태에 빠진 뒤 25일 오후 1시58분께 숨을 거뒀다. 그가 숨을 거두기까지 유족과 경찰, 검찰의 갈등을 계속 됐으며 사망 이후에도 부검 여부를 둘러싸고 갈등은 심화됐다.

결국 이번 부검영장의 발부로 유족과 시민단체 등의 강한 반발과 충돌이 예상된다. 백씨가 쓰러진 이후 현재까지 상황을 정리해봤다.

◇경찰 물대포 맞고 쓰러진 백씨…시민단체, 경찰 갈등 격화

지난해 11월 백씨는 경찰이 쏜 물대포를 맞고 위독한 상황에 빠졌다. 백씨가 쓰러지고 이틀 후 가톨릭농민회·전국농민회총연맹·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회 소속 회원 등을 백씨가 쓰러진 것을 두고 경찰청 앞에서 '강신명 청장 사죄·퇴진 촉구' 집회를 열었다. 백씨의 가족들은 당시 책임자였던 강신명 전 경찰청장과 구은수 서울지방경찰청장 등 7명을 살인미수 혐의 등으로 검찰에 고발했다.

이 사이에 야당도 바쁘게 움직였다.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은 당 차원으로 대책위원회를 열고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했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도부와 함께 백씨를 문병하기도 했다.

11월 말부터 경찰과 시민단체의 갈등은 심화됐다. 백남기 농민의 쾌유와 국가폭력규탄 범국민대책위원회(대책위)는 수천명 규모의 집회를 하겠다고 예고했고 경찰은 번번히 집회 금지 통보를 내렸다. 급기야 법원이 나서 "집회, 행진 금지는 위법"이라고 결론을 내렸고 대책위와 시민단체 등은 지난해 12월5일 1만여명이 참가한 '제2차 민중총궐기 대회'를, 그로부터 2주 후에는 '제3차 민중총궐기 대회'를 열었다.

올해 초부터 대책위는 도보순례에 나서며 정부에게 "국가폭력을 사과하라"며 촉구했다. 백씨의 의식불명 상태가 100일이 넘어서자 백씨 가족은 그해 3월 국가와 경찰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이후 더불어민주당은 20대 국회서 '백남기 사건' 청문회를 추진하겠다고 나섰다. 이즈음 백씨의 의식불명 상태가 200일째를 기록했다. 야3당이 백남기 청문회를 열기로 합의한 상황에서 경찰은 백남기 사건에 대한 야당의 자료제출 요구를 번번히 거부했다. 야당은 '백남기방지법'을 발의하고 검찰의 수사를 촉구했다. 여러 난항 끝에 결국 8월25일 여야는 백남기 청문회를 열기로 합의에 도달했다.

◇여야 진통 끝에 열린 청문회…"사과·진상규명은 없어"

여야 진통 끝에 지난 12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주최로 청문회가 개최됐으며 강신명 전 청장이 증인으로 참석해 당시 상황에 대한 공방이 벌어졌다. 강 전 청장은 당시 "사람이 다쳤다고 해서 무조건 사과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백남기 농민사건에 대한 공식 사과를 거부했다.

이어 강 전 청장은 "경찰은 불법폭력시위 대처 중 발생한 안타까운 사고로 규명하고 있지만 주최 측은 현장 경찰관에 살인미수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며 "객관적 조사와 법원 판결에 따라 나오는 책임에 대해 사과방문을 포함해 모든 조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청문회에서는 백씨의 중태 원인과 경찰의 살수차 사용 방식에 대한 문제점 등이 지속적으로 도마에 올랐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신체조직에 상해를 입힐 수 있는 살수차의 위험성은 전세계적으로 공인됐다"며 "디지털 장치로 수압을 조절해 사용할수 있음에도 눈대중으로 맞췄다는 점을 경찰도 인정했다"고 주장했다.

또 김정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입수해 공개한 소방 구급활동일지와 당일 촬영된 여러 동영상에 따르면 백씨가 물대포를 맞고 병원에 옮겨지기까지 44분이나 걸려 경찰의 후속 조치가 없었던 게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됐다.

하지만 경찰의 공식사과는 없었다.

이철성 신임 경찰청장 역시 12일 기자간담회에서 "청문회 결과에 따라 경찰의 법집행에 문제가 있다면 개선해야 한다"면서도 "지금까지는 법원 판결에 의하면 그날(지난해 11월14일) 공무집행은 적법하다고 보고 있다"고 말해 공식적인 사과는 피했다.

이어 이 청장은 "집회규모가 커지면 집회하는 분들과 대화해서 가급적 경찰력을 최소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야권에서 살수차 운영을 법적으로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데 개선 방안 등을 검토할 것"이라고 향후 대책만을 간단히 언급했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오른쪽)가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백남기 농민의 빈소를 찾아 조문을 마친 후 정현찬 가톨릭농민회 의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016.9.28/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백씨 끝내 25일 사망…부검영장 결국 발부

경찰의 사과와 진상규명이 미뤄지는 사이 백씨의 상태는 점점 더 악화됐다. 지난 24일 대책위는 "백남기 농민이 위독하다"고 발표하면서 백씨의 상태가 위중하다는 것이 파악됐다.

백씨의 상태를 알린지 하루가 지난 25일 백씨는 끝내 숨을 거뒀다.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은 후 약 317일만이다. 대책위 측은 "오늘 백남기 농민이 선종했다. 서울대병원으로 모여달라"며 집결을 호소했다. 경찰 역시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수백명의 병력을 현장에 배치했다.

경찰과 대책위, 유족은 백씨의 부검을 둘러싸고 심한 갈등을 빚었다.

백남기 대책위는 "사인이 밝혀지지 않았을 때 하는 부검을 운운하는 것은 사인을 은폐하기 위한 것"이라며 "대통령의 사과와 책임자 처벌이 없는 가운데 장례를 치를 수 없다"고 반발했다. 하지만 검찰은 "정확한 사인규명이 필요하다"며 26일 부검영장을 청구했고 법원은 이를 기각됐다.

하지만 검찰은 27일 부검영장을 재청구했고 법원은 경찰에 부검 필요성과 상당성에 대한 추가 소명자료를 요청했다. 그리고 결국 28일 백씨에 대한 부검영장을 발부했다.

결국 이번 부검영장의 발부로 유족과 시민단체 등의 강한 반발과 충돌이 예상된다.

검찰 관계자는 "부검 장소와 방법에 관해 유족과 유족이 지정하는 사람을 부검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부검 과정 영상 촬영 등을 조건으로 하는 것이 법원의 취지"라고 전했다.

경찰은 "유족 측 입장을 고려해 오늘밤 영장을 집행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k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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