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가을 색다른 길을 걷고 싶다면

이성원 입력 2016. 9. 28.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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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둘레길·용머리해안 지질트레일 걷기
한라산 둘레길 수악길 코스의 신례천에서 만난 이끼바위들.

“가을, 제주를 걷지 않는 자 스스로에 죄를 짓는 것이다.”

제주올레 안은주 사무국장이 자신 있게 내건 슬로건이다. 가을 제주의 올레를 걸어본 이들이라면 누구나 수긍할 것이다. 그는 “자신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이 바로 가을의 제주를 걷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제주가 가장 아름다워질 때다. 들판과 오름 가득 덮은 억새가 높고 맑은 하늘에 붓질하며 제주 바람을 그려내는 계절이다. 제주의 최고 걷는 길은 역시 명불허전 올레일 것이다. 제주엔 올레 말고도 걷는 길이 많다. 올레를 많이 걸었고 조금 색다른 제주의 길을 걷고 싶은 이들에게 2개의 길을 추천한다. 제주의 중산간 깊은 숲 속을 걷는 한라산 둘레길과 세계지질공원인 제주를 공부해가며 걷는 지질트레일이다.

한라산 둘레길 수악길 코스

그림 3

한라산 자락을 휘감아 도는 환상(環狀)의 둘레길이다. 해발 600~800m 지대 옛 일제 병참로와 임도, 표고버섯 재배 운송로 등을 활용해 만든 숲길이다.

총 80㎞ 중 지금까지 개발된 구간은 천아숲길, 돌오름길, 동백길, 수악길, 사려니숲길 등 5곳. 이중 수악길에서 걸음을 시작했다. 돈내코 입구에서 사려니오름 입구까지인 수악길의 총 길이는 16.7㎞. 이 길 중간에 옛 5ㆍ16도로인 1131번 도로를 만난다.

수악길의 이름을 있게 한 물오름(수악)이 이 1131번 도로 인근에 있다. 1131번 도로와 만나는 부분에서 걸음을 시작했다. 처음 만나는 길은 널찍했고 무리지어 선 삼나무들이 우람했다. 대낮임에도 숲이 깊어지며 사위가 어두워온다. 섬뜩할 정도로 숲이 짙다. 정령들이 사는 곳이 아닐까. 그들만의 공간에 몰래 들어온 듯한 긴장감이 들었다.

올레와 다른 건 계속해 숲길로만 이어진다는 것. 시야는 초록에 갇힌다. 그래서 더 자신에 집중하게 되는 길이다.

물오름 곁을 스쳐 지났을 무렵. 물이 없는 천을 만났다. 신례천이다. 설문대할망이 아무렇게나 던져놓았을 것 같은 커다란 바위로 가득한 계곡이다. 이 바위계곡의 한쪽, 그 돌덩이들에 푸른 이끼가 소복히 덮여있다. 동화 속의 세계에 서있는 듯한 느낌이다. 태곳적 숲의 향취가 느껴진다. 숲 그늘 밑에 서서 이끼 바위들을 내려다 보고 있자니 초록이 살갗에 스며드는 느낌이다.

바위계곡을 건너 계속 걸음을 옮겼다. 이따금 숲 속의 노루가 놀라 도망간다. 길 초입 멧돼지 등이 있으니 조심하란 안내문이 떠오른다. 이곳은 야생의 세상인 것을. 한라산이 품은 드넓은 숲의 한복판이다. 새소리가 유독 청명하다. 온대림과 난대림이 한데 어우러진 독특한 원시림, 그 숲의 속살이다.

산방산ㆍ용머리해안 지질트레일

용머리해안.

지질트레일은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브랜드를 활용해 만든 길이다. 성산ㆍ오조, 김녕ㆍ월정, 산방산ㆍ용머리해안, 수월봉 등 4곳에 조성됐다.

이중 제일 먼저 생긴 곳이 산방산ㆍ용머리해안으로 그 안에 AㆍB 두 개의 코스가 있다. 산방산과 용머리해안은 일찍부터 제주의 관광명소였다. 그 생김새가 워낙 독특하기 때문이다. 큰 밥사발을 엎어놓은 듯한 산덩어리가 우뚝 솟아있고, 바다엔 시간의 더께가 겹겹이 쌓인 듯한 시커먼 절벽이 둘러쳐져 있다. 용암과 시간이 빚은 그 마법에 무지하더라도 마냥 감탄을 불러오는 풍경들이다.

산방산과 용머리해안.

산방산은 용암이 뻗지 못하고 종처럼 굳어 만들어진 용암돔이다. 섬의 절벽은 주상절리가 빼곡하게 둘러싸고 있다.

용머리해안은 스멀스멀 분출한 용암이 물과 만나 굳어진 지형. 산방산에서 보면 바다로 들어가는 용의 모습이라고. 웅장한 자연의 힘이 느껴지는 기암절벽은 제주에서도 가장 오래된 화산지형이란다. 한라산이 솟기 전 먼저 마그마를 뿜어낸 곳이다.

0용머리해안의 포트홀.

용머리해안은 쉽게 볼 수 없다. 물때를 맞추지 못하면 입장 불가다. 파도가 거칠거나 바람이 세도 들어갈 수 없다. 외계 행성의 표면 같은 기괴한 모양의 해벽을 감상하고, 바닷물이 소용돌이 쳐 만든 포트홀도 구경한다. 섬 자체가 거대한 지질박물관인 제주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는 걸음이다.

용머리해안에서 나와 형제섬 떠있는 바다풍경을 감상하며 해안길을 걸으면 사계리에 다다른다. 붉은색의 하모리층이 특이하다. 화산재 위로 걸은 발자국이 선명히 남은 사람발자국 화석까지 해안길이 이어진다. 이곳에서 단산 자락의 대정향교로 길은 방향을 바꿨다가 불미마당 베리돌아진밧 등을 거쳐 산방산 밑으로 원점회귀한다.

서귀포=이성원기자 sungw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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