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지금은 묵념의 시간

박원호 | 서울대 교수·정치학 2016. 9. 27.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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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지난해 11월 시청 앞 광장에서 시위 도중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던 백남기 농민이, 317일을 버티다 지난 일요일 숨을 거두었다. 나는 고인을 만난 적도 없고 그가 어떤 생각으로 시위에 참여하게 되었는지도 자세히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지금은 우리 모두가 조용히 묵념할 시간이라는 사실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렇게 묵념을 해야 할 시간이라는 의견도 마치 하나의 ‘정치적 견해’를 표출하고 ‘편을 드는’ 것으로 읽혀질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동료 시민의 생명권이 국가로부터 침해당했는데 이웃으로서 노여워하지 않는다면 그는 좌파도 우파도 중도도 아니며, 진보나 보수 어느 자리에도 낄 자격이 없다. 사람이 죽고 사는 생명권의 문제에는 좌우, 진보·보수가 따로 없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새누리당의 대변인 브리핑은 이와는 약간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듯하며, 이를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故 백남기 농민의 명복을 빕니다. 다시는 이런 안타까운 슬픔이 없도록 우리 모두 함께 노력해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시위가 과격하게 불법적으로 변하면서 파생된 안타까운 일이 다시는 반복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요약하자면, 고인의 죽음은 과격하고 불법한 시위로 말미암아 ‘파생’된 것이며,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 모두 함께’ 즉 정부와 시민사회 공히 노력하자는 메시지이다.

물론 어떤 민주주의에서도 갈등은 존재할 것이며, 때로는 국민의 자유와 권리가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헌법이 적시하고 있는 것처럼 국민의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은 침해할 수 없다는 과잉금지의 원칙에 이르게 되면 우리는 공권력이 한 시민의 생명권을 침해한 장면에 다다르게 된다.

나는 여기에서 다음의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얼마만큼의 과격하고 불법한 시위가 죽음의 ‘파생’을 정당화하는가? 시민들이 돌을 던지면 돌을 맞서 던지고, 시민들이 쇠파이프를 들면 물대포를 직사하도록 프로그램된 공권력은 정상적인 공권력인가? 그것이 공권력의 ‘실수’라고 한다면 왜 책임지는 사람은 없는가?

두 명의 농민이 있었다. 2005년 11월 여의도 문화마당에서 ‘쌀 협상 국회비준 반대 시위’를 벌이다 전용철 농민과 홍덕표 농민은 진압경찰에 맞아 숨을 거두었다. 그리고 역시 고인이 된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다음과 같은 사과문을 발표한다.

“…공권력도 사람이 행사하는 일이라 자칫 감정이나 혼란에 빠지면 이성을 잃을 수도 있는 것인데, 폭력 시위를 주도하는 사람들이 이와 같은 원인이 된 상황을 스스로 조성한 것임에도 경찰에만 책임을 묻는다는 것은 불공평하다는 비판이 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공권력은 특수한 권력입니다. 정도를 넘어 행사되거나 남용될 경우 국민들에게 미칠 피해가 치명적이고 심각하기 때문에 공권력의 행사는 어떤 경우에도 냉정하고 침착하게 행사되도록 통제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공권력의 책임은 일반 국민들의 책임과는 달리 특별히 무겁게 다뤄야 합니다….”

역사가 반복한다는 것은 그 이후 꼭 10년이 지나서 다른 한 농민이 진압경찰에 의해 아스팔트 바닥에 쓰러졌다는 사실이며, 역사가 퇴보한다는 것은 이번에는 어떤 최소한의 사과나 진상 규명의 노력 한 푼도 317일 동안 없었다는 사실이다. 농촌은 여전히 농촌이며 공권력은 여전히 공권력인 곳, 아스팔트 위에서 만나는 구호들이 변했는지는 모르지만 어제의 역사가 오늘 반복되고 내일 악화될 것이 분명한 곳. 이웃의 고통을 ‘시체팔이’라고 부르며 조롱하는 자들이 숨어 사는 천박한 도시. 우리는 진정 이런 곳을 우리 아들딸들에게 이렇게 물려줄 것인가.

그래서 지금은 묵념의 시간이 아닌가 한다. 역사가 공동체로서의 우리에게 부가한 하중은 우리가 살아온 10년이, 혹은 지난 30년이 어쩌면 수레바퀴를 제자리에서 돌리고 있었던 슬픈 꿈이 아닌가 하는 자각, 그래서 그 악몽에서 깨어나는 묵상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비록 아프고 괴롭고 서럽더라도 우리 주변의 무기력과 무관심을 어떻게 털어낼 것인지 반추할 시간을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한 농민이 있다. 아마도 그는 ‘농민’이라는 칭호를 가장 자랑스러워했을 것이다. 자녀들의 이름을 정성스럽고 뿌듯하게 지었을 것이고, 여느 생활인처럼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셨을 것이다. 그가 지난 일요일 빛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갈 때 그랬던 것처럼 고인을 조용하고 평화롭게 보내줄 묵념과 함께 그의 영면을 기원한다.

<박원호 | 서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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