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읽기] 21세기 교육과 20세기 학교 / 윤태웅

2016. 9. 27.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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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윤태웅
ESC 대표·고려대 공대 교수

이번 학기엔 학부생들에게 ‘공학수학2’를 강의합니다. 2학년 전공필수 과목인데, 복소수함수와 선형대수가 주제입니다. 전기전자공학의 여러 영역에서 많이 쓰이는 수학이지요. 하지만 모든 학생이 복소수함수의 미적분이나 선형연산자를 잘 다뤄야만 하는 건 아닙니다. 이런 수학을 별로 사용하지 않는 분야도 없지는 않은데다, 과학기술 저술가나 기자가 되려는 청년들도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복소수함수와 선형대수를 활용하지 않을 소수의 학생들에게 공학수학2는 어떤 의미일까요?

수학은, 전제가 참이면 결론도 참일 수밖에 없는 연역추론입니다. 과정이 결과에 우선하지요. 지금까지 존재해왔던 지식체계 가운데 가장 확실한 것이기도 합니다. 2보다 큰 짝수 가운데 두 소수의 합으로 나타낼 수 없는 수는 이제껏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지만, 수학에선 그 이야기가 그저 추측일 뿐입니다. 증명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미적분학도 극한의 개념이 명확히 정의된 19세기 중엽에 이르러서야 엄밀한 수학이 될 수 있었습니다. 뉴턴과 라이프니츠가 미분법을 만든 게 17세기 후반이었으니 150여년이나 걸린 셈이지요. 수학이 추구하는 지식의 확실성은 어쩌면 실현 불가능한 이상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정의로움과 공평함 같은 이상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서 엿볼 수 있듯이 모든 이상엔 가치와 힘이 있습니다.

복소수함수와 선형대수를 가르치면서 저는 학생들에게 수학적 사유 과정을 강조합니다. 극한과 수렴의 의미 등을 따지며 익숙함과 앎을 구별하려 합니다. 모호하지 않은 언어를 논리적으로 구사하는 일도 중요하지요. 서로 다른 대상들이 공유하는 수학적 법칙을 눈여겨보고, 무관해 보였던 것들 사이에 성립하는 동일성을 탐구하기도 합니다. 겉으론 잘 드러나지 않는 관계를 파악해내는 게 공부의 힘이라 할 수 있지요. 이러한 ‘수학 활동’은 사실 (공학수학2의 결과물을 사용하지 않게 될) 소수를 위한 배려일 뿐만 아니라, 다수에게도 바람직한 방식이라 여깁니다. 늘 그래 왔지만, 특히 인공지능 시대엔 지식을 도구로 부리는 기술보단 지식을 창출하는 능력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과학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주가 빅뱅 이후 가속팽창해 왔다든가 공간이 굽고 빛이 휜다든가 하는 건 그냥 신기한 이야기일 뿐입니다. 과학자들이 어떻게 그런 이론을 만들어냈는지 알지 못한다면 말입니다. 우주론과 신화를 구별할 방법도 마땅치 않겠고요. 전공이든 교양이든 과정 없이 주어지는 결론은 공허합니다. 세계 그 자체보다 그런 세계를 인간이 이해할 수 있다는 게 저는 더 놀랍습니다. 저희 학생들도 이런 경이로움을 함께 느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토요일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에서 어른이 실험실 탐험 행사를 열었습니다. 비전공자를 위한 과학활동 체험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어른이’는 어린이같이 호기심이 가득한 어른들을 일컫는 표현이었지요. 참석자들은 대학의 발생학 실험실을 찾아가 초파리 이야기를 듣고 현미경으로 직접 관찰까지 해볼 수 있었습니다. 줄곧 신기한 표정을 짓던 물리학 교수는 이제 초파리의 암컷과 수컷을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며 어린아이처럼 활짝 웃더군요.

한데 정작 진짜 어린아이들은 호기심을 제대로 발휘해보지 못한 채 학원으로 내몰립니다. 학생들은 별 의미 없는 암기에 귀한 시간을 빼앗기며, 결과가 과정을 압도하는 온갖 시험에 대비합니다. 교육현장의 시계는 그렇게 20세기에 멈춰서 있습니다. 개별 강의실의 변화를 넘어서는 개혁이 필요한 실정입니다. 여의치 않으면 학교 밖에서라도 대안적인 해법 찾기에 나서야 하지 않겠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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