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르포] "인체에 무해하다지만.." 가습기 살균제 원료 들어간 치약에 불안한 소비자

유진우 기자 2016. 9. 27. 17:3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집에서 쓰던 치약인데 불안해서 마트가 문을 열자마자 나왔어요.”

살균제에 사용된 화학물질 메칠클로로이소치아졸리논과 메칠이소치아졸리논 혼합물(CMIT·MIT)이 검출된 메디안 치약 브랜드의 간판에 불이 꺼져 있다. /연합뉴스 제공

지난 26일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가습기 살균제’ 원료를 함유한 아모레퍼시픽의 11개 치약 제품을 회수한다고 발표한 후 소비자들이 불안해하고 있다. 식약처가 ‘양치한 후 입안을 물로 씻어내는 제품의 특성상 인체에 유해성은 없다’고 밝혔지만 반신반의하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아모레퍼시픽에 해당 원료를 납품한 미원상사는 CMIT·MIT가 치약에 사용할 수 없는 금지 물질이라는 사실조차 몰랐다. 아모레퍼시픽 역시 이 사실을 확인하지 못했다. 현행 약사법에 따르면, 허가된 물질 외에 다른 성분을 첨가하면 행정처분을 받게 된다.

이번 문제는 아모레퍼시픽이 미국 식약청(FDA)에 일반의약품(OTC)으로 인증받기 위해 제출한 자료를 이정미 정의당 국회의원(환경노동위원회) 측이 조사하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회수 대상은 ‘메디안후레쉬포레스트치약’, ‘메디안후레쉬마린치약’, ‘메디안바이탈에너지치약’, ‘본초연구잇몸치약’, ‘송염본소금잇몸시린이치약’, ‘그린티스트치약’, ‘메디안바이탈액션치약’, ‘메디안바이탈클린치약’, ‘송염청아단치약플러스’, ‘뉴송염오복잇몸치약’, ‘메디안잇몸치약’이다.

◆ 교환·환불 문의에 분주한 마트…“해당 제품 회수했지만, 소비자 혼란 가중”

27일 오전 10시 30분. 서울시 성동구 왕십리 이마트에는 개점 직후임에도 치약 환불을 위해 찾아온 소비자들이 있었다. 쏟아지는 문의에 직원들이 바쁘게 설명하고 있었지만 소비자 불안을 잠재우긴 역부족이었다.

마트를 찾은 한 여성은 “집에서 쓰던 치약인데 뉴스를 보고 너무 놀랐다”며 “문제가 된 치약이 아니라지만 ‘메디안’ 브랜드를 보니 아직도 팔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 걱정된다”고 말했다. 그 옆의 여성은 직원을 붙들고 아이가 쓰고 있는 ‘송염 우리아이치약’은 괜찮은 것인지 재차 확인했다.

직원은 “어제(26일) 저녁 공문이 내려와 해당 치약은 모두 판매대에서 회수했다”면서도 “문의하는 소비자들이 많아 안내문을 붙이려 한다”고 말했다. 5분 후 붙은 안내문에는 ‘식약처의 조치에 따라 CMIT·MIT가 함유된 치약의 제품 회수/환불을 실시한다’는 내용과 함께 해당 제품 목록이 나열돼 있었다.

대형 마트는 판매대에서 해당 제품을 회수하는 등 재빠른 대응을 보였지만, 일선 편의점에선 혼선을 빚었다. 몇몇 점포의 아르바이트 직원들은 “치약 회수 공문에 대해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27일 오전 서울의 한 마트 매장의 치약 진열대에는 가습기살균제 성분이 함유된 치약은 회수했다는 문구가 걸려있다. /윤민혁 기자

수많은 점포에 공문을 전달하고 제품을 회수하는데 시간이 걸릴 듯하다. 편의점 업계 관계자들은 “해당 치약을 전산상에서 삭제해 판매할 수 없게 조치했다”며 “이른 시일 내에 모두 회수해 소비자 혼란을 최소화하겠다”고 밝혔다.

◆ 불안한 소비자들... 환불 어떻게 받나

시민들은 허용되지 않은 원료가 사용됐음에도 인체에는 무해하다는 식약처 발표에 혼란스럽다는 반응이다. 지난 추석 문제가 된 치약을 선물 받았다는 한 20대 남성은 “인체에 무해하다는 식약처 발표를 믿는다”면서도 “꺼림칙해 선물 받은 치약은 사용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지역 슈퍼마켓 중에선 아직 치약 회수에 관해 전해 들은 것이 없다는 곳도 있었다. 기자가 치약 회수 소식을 알고 있느냐 묻자 “처음 듣는다”고 답하기도 했다. 제품 회수와 교환·환불을 위한 아모레퍼시픽 측의 노력이 더 필요한 상황이다.

대형마트, 편의점 등은 이미 교환·환불을 진행 중이다. 대형마트의 경우, 각 지점 고객센터에서 영수증 보유 여부와 상관없이 교환·환불받을 수 있다. 미개봉 제품은 바로 교환 또는 환불해 준다. 편의점에선  영수증이 없더라도 구매 일시를 알고 있다면 전산 기록과 대조해 교환·환불해준다.

아모레퍼시픽의 공식적인 교환·환불은 9월 28일 오전 9시부터 시작한다. 구입처, 구매 일자, 사용 여부, 본인 구매 여부, 영수증 소지 여부 등과 상관없이 아모레퍼시픽 고객상담실(080-023-5454)에서 무조건 교환·환불받을 수 있다.

◆ 오락가락 식약처...무해하다던 CMIT·MIT, 유럽·美에선 퇴출 행렬

CMIT·MIT는 올해 논란을 일으켰던 ‘가습기 살균제’에 사용된 화학물질로, 폐 섬유화 등을 일으킬 수 있어 항상 유해성 논란이 따라붙는다. 치약에는 제품이 변질되지 않도록 하는 방부제로 첨가한다.

제조사인 아모레퍼시픽은 ‘원료사로부터 납품받은 소듐라우릴설페이트(SLS) 내에 CMIT·MIT 성분이 극미량 포함됐다’고 인정했지만 ‘인체에 유해하다’는 언급은 하지 않았다.

27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정의당 이정미 의원 책상에 가습기 살균제 성분이 함유된 아모레퍼시픽의 메디안 치약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제공

식약처 역시 ‘미국과 유럽 등에서는 치약 보존제로 CMIT·MIT 사용이 가능하다’며 ‘양치한 후 입안을 물로 씻어내는 제품의 특성상 인체에 유해성은 없다’고 밝혔다. 외국에서는 치약 속 CMIT·MIT 함량을 최대 15ppm까지 허용하고 있는데, 아모레퍼시픽의 해당 제품에는 CMIT·MIT가 0.0022∼0.0044ppm 함유돼 인체에는 유해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아모레퍼시픽, 식약처의 설명과 달리 CMIT·MIT는 미국과 유럽에서 쓰이지 않는 추세다. 특히 지난해 이후 안정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퇴출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보습 브랜드 ‘도브’ 등을 만드는 세계적인 생활용품 업체 유니레버(Unilever)는 2013년 이후 비누, 샴푸, 린스 등 자사가 만드는 모든 제품군에서 MIT 사용을 단계적으로 줄이고 있다. 현재 유니레버가 미국에서 새롭게 출시하는 모든 화장품에는 MIT를 사용하지 않는다.

‘하기스’ 등의 유아용 제품 브랜드로 유명한 킴벌리클락(Kimberly-Clark)은 간단히 씻어내는 역할 뿐인 아기용 물티슈에도 MIT를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지난해 4월 이후로는 아기용 물티슈뿐 아니라 여성용 물티슈에서도 MIT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

브루스 브로드 미국 접촉 피부염 학회(American Contact Dermatitis Society) 회장은 2015년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MIT는 치약에 거의 사용하지 않는 보존제(unusual additive)”라며 “매일 MIT 성분에 노출될 경우, 이에 대한 알러지 민감도가 올라갈 수 있다”고 말했다.

MIT 성분에 대한 민감도가 높아지면 목이 붓거나, 음식에 대한 알러지 반응이 심해지는 초기 부작용이 나타난다. 미국 피부염학회는 이런 점을 감안해 2013년 MIT를 ‘올해의 알러지 발생 물질’로 꼽았다.

유럽집행위원회(EC) 산하 과학자문단인 소비자안전과학위원회(SCCS·Scientific Committee on Consumer Safety) 역시 “샴푸 등에 들어가는 경우를 제외하면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양이 얼마라고 말하기 어려운 물질(no safe concentrations)”이라며 MIT가 들어간 제품 사용에 주의를 당부했다.

☞관련 기사  식약처, 아모레퍼시픽 치약 11종 회수...'가습기 살균제' 성분 함유

- Copyrights ⓒ 조선비즈 & ChosunBiz.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