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활성단층 알고도 원전·방폐장 건설
ㆍ2000년 단층 보고서에 인근 지질상태 지적 불구 추진
‘제2의 보고서.’ 경주 월성원자력발전소 인근에 활성단층이 존재한다는 한국지질자원연구원(지질연)의 2012년 ‘활성단층지도 및 지진위험 지도 제작’ 보고서를 발표하기 이미 12년 전인 2000년 같은 기관에서 만든 비슷한 내용의 보고서가 존재했다. 2000년 5월 보고서는 월성원전 인근에 활성단층으로 추정되는 단층이 존재한다는 중간보고서 형태의 자료였다. 당시 일부 특정기관에만 제출돼 비공개였던 보고서가 이번 국정감사를 통해 전체 내용이 공개됐다.
정부가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김성수 의원(더불어민주당)에게 제출한 ‘신기지각변형 연구’라는 2000년 보고서에 따르면 이미 이때 23곳의 신생대 4기 단층이 추가로 발견됐으며, 이 가운데 8곳은 분석 결과 활성단층으로 추정된다고 나타나 있다. 특히 이 분석을 위해 캐나다 멕매스터대, 영국 옥스퍼드대, 일본 도쿄대 등의 분석기관에서 연대 측정을 해 활성단층의 추정 근거로 삼았다. 이 보고서를 통해 또 월성원전과 불과 5㎞ 떨어진 경주 양남면 수렴리에 수렴제1∼3단층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여기에다 월성원전과 10∼15㎞ 떨어진 곳에 울산단층대가 존재하고, 여기에 원원사단층과 개곡단층, 말방단층 등 신생대 4기 단층들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2012년 지질연의 보고서가 2000년 보고서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사실은 연구자들의 면면만 봐도 알 수 있다. 2000년 보고서에 이름이 실린 최성자 연구원은 2012년의 지질연 보고서의 연구책임자였다. 2000년 보고서의연구책임자였던 최위찬 연구원도 2012년 보고서의 연구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이들 외에도 한 명의 연구원과 한 곳의 위탁연구기관 연구책임자가 두 보고서에 똑같이 나와 있다.
2000년 바탕으로 2012년 보고서 나와
연구원뿐만 아니라 2012년 보고서는 연구내용 역시 2000년 보고서를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000년 보고서에 나타난 활성단층 추정 지역이 2012년 보고서에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다만 2012년 보고서의 연구지역이 더 광범위해졌음을 알 수 있다. 2000년 보고서에서 문제 삼았던 월성원전 인근의 수렴단층과 읍내단층도 2012년 보고서에 실려 있다. 이들 단층에 대한 2012년 보고서의 참고문헌에 2000년 보고서가 기록돼 있어 2000년 보고서가 토대가 됐음을 알 수 있다. 2012년 보고서에서 활성단층으로 조사된 울산단층의 여러 단층들은 이미 2000년 보고서에서도 언급돼 있다. 울산단층의 단층들은 월성원전과 불과 10㎞ 안팎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책임연구자인 최성자 박사는 9월 22일 서울대에서 열린 심포지엄에서 “원전 안전을 고려할 때 활성단층과 활동성 단층을 구분해야 한다”며 “양산단층과 울산단층은 활성단층이라는 증거가 나왔지만 그렇다고 활동성 단층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활성단층은 신생대 제4기 이후 단층운동 기록이 있는 단층이고, 활동성 단층은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의 기준에 따라 정의된 단층이다. 활동성 단층은 3만5000년 전 이후에 적어도 1회 또는 50만년 전 이후 2회 이상 지표 및 지표 가까이에 변위가 존재하는 단층을 말한다.
문제는 2000년 보고서에 월성원전 인근의 단층이 활성단층으로 추정된다는 분석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월성에 신1호기와 신2호기의 원자력발전소가 건설돼 운전을 개시했다는 점이다. 게다가 2000년 보고서가 만들어진 이후에 이 지역과 가까운 곳에 경주 방사성폐기물처분장(경주 방폐장)이 만들어졌다. 경주 방폐장은 여러 후보지 중 주민투표를 거쳐 2005년 경주로 부지가 선정됐다. 방폐장은 2015년부터 가동에 들어갔다. 2000년 보고서에는 영덕 천지원전 건설 예정지 바로 인근에 양산단층대에 속하는 덕곡단층과 자부티고개 단층, 세못저수지 단층 등이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2000년 보고서는 2012년 보고서처럼 비공개였다. 하지만 일부 내용이 알려지면서 파란을 겪었다.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의 윤영탁 의원이 2001년 이 자료의 주요 내용을 공개하자, 해당 기관과 책임연구원이 원전 안전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당시 <매일신문> 보도에서 윤 전 의원의 이야기에 따르면 이 보고서에 대한 영구 배포금지조처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9월 22일 국회 미방위 현안보고에서 더민주의 김성수 의원과 고용진 의원이 따져 묻자, 신중호 지질자원연구원 원장은 “제가 알기로는 그런 일이 없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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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5월 한국자원연구소의 단층 관련 보고서에 나타난 영남 동해안 지역의 단층들. |
당시 위탁연구기관의 연구책임자였던 고려대 이진한 교수(지구환경과학과)는 “활성단층이 있다고 원전을 못 짓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신월성 1·2호기와 방폐장 건설 때 면밀히 조사했을 것으로 보지만 이쪽 지역(경주 월성지역)이 다른 지역보다 지질상태가 좋지 못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후속 연구 중단으로 아쉬움 남겨
2012년 지질연 보고서의 ‘연구개발 결과 활용계획서’에는 ‘후속연구 추진’으로 나와 있으나 이후 후속연구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2000년 보고서 역시 2012년 보고서와 비슷한 운명에 처했다. 중간보고서 형태였으나 완성 보고서는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초 이 연구는 1997년부터 2000년까지 1단계로 한반도 내 활성단층 가능지역의 지질구조에 대한 정밀조사, 2000년부터 2003년까지 2단계로 GPS자료를 이용한 활성단층의 운동특성 및 시대규명, 2003년부터 2006년까지 3단계로 활성단층의 등급분류 및 활성단층 위험분포도 작성이 계획돼 있었다. 당시 과기부는 1997년부터 2006년까지 특정 연구개발사업의 하나로, 2000년 5월 1차로 수집한 기초자료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2000년 보고서의 존재가 논란이 되자 나머지 사업 추진은 관련기관의 사업으로 넘어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진한 교수는 “단층 연구는 하루 이틀 사이에 이루어질 수 없다”면서 “지질자원연구원의 2012년 보고서도 3년 안에 이뤄진 만큼 완결된 조사라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국민안전처에서 지진 발생 이후 밝힌 것처럼 앞으로 25년 정도 꾸준히 조사해야 제대로 된 분석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김성수 의원은 “2000년 보고서에서 월성원전에서 불과 5㎞ 떨어진 수렴단층, 10㎞ 떨어진 원원사단층 등이 모두 활성단층이라는 분석은 2012년 지질자원연구원 보고서와 같은 결론”이라면서 “특히 일본 도쿄대 등의 국제지질분석 전문가들이 다수 참여했던 만큼 의미가 있었다”고 평가했다. 김 의원은 “하지만 이 연구가 조기에 마무리되고 말았다”면서 “(보고서 이후) 활성단층 연구가 계속되었더라면 우리나라 활성단층 지도와 지진위험 지도가 벌써 완성됐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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