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 배치' 허가제..노골적 용역폭력 줄긴 했지만

2016. 9. 27.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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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밥&법] ‘경비원 배치제도’ 허가제

지난 8월1일 오후 충남 아산시 갑을오토텍에서 사쪽의 직장폐쇄에 반발해 점거농성중인 이 회사 노조원들이 회사가 고용한 경비용역업체 직원들과 공장 정문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다. 아산/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2012년 7월27일 새벽, 경기도 안산시 반월공단에 있는 자동차부품회사 에스제이엠(SJM) 공장 후문에 버스 5대가 차례로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린 것은 공장에서 파업 농성 중이던 노동조합을 ‘공격’하기 위해 회사가 고용한 민간 경비용역업체 ‘컨택터스’의 경비원 250여명이었다. 회사는 안산단원경찰서에 오전 6시께 경비업체를 배치하겠다고 신고했지만, 그보다 이른 새벽 4시40분께 공장을 급습했다. 이들은 무장병력을 방불케 할 정도로 방패와 곤봉, 소화기 등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2시간가량 피 터지는 폭력 사태가 발생했다. 이들은 방패와 곤봉으로 노조원을 무차별 폭행하고, 무거운 금속 부품을 얼굴에 집어 던지기도 했다. 경찰은 이를 보고도 수수방관했다. 30명이 크게 다쳤고, 그중 10명은 병원에 실려 갔고, 공장은 컨택터스의 손에 떨어졌다.

에스제이엠 사태가 터진 뒤 4년이 흐른 2016년 8월1일 오후 2시, 충남 아산의 갑을오토텍 공장 정문 앞에 초록색 복장을 맞춰 입은 ‘잡마스터’라는 민간 경비업체 소속 경비원 150여명이 나타났다. 금속노조 갑을오토텍지회 조합원 400여명은 지난달 26일 회사가 단행한 직장폐쇄가 “노조 파괴를 위한 불법행위”라고 주장하며 공장 안에서 점거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또다시 용역폭력이 벌어질 것을 우려하는 여론이 거세졌고, 결국 11일 만에 용역경비업체는 철수했다.

노동조합의 정당한 쟁의행위를 파괴하기 위한 사쪽의 ‘사적인 폭력’은 끊임없이 반복돼온 고질병이다. 1970~1980년대의 이른바 ‘구사대’ 폭력은 1990년대 이후부터 민간 경비업체의 ‘사업’으로 진화했다. 2012년 ‘에스제이엠 사태’는 이렇게 민간 영역에서 합법적으로 자행되는 사적 폭력의 양태를 드러낸 사례다. 4년 뒤 경비용역업체가 배치된 똑같은 사업장에서 폭력 사태가 빚어지지 않은 이유는 뭘까?

지난 2013년 5월7일 국회에서는 경비업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당시 민주당 임수경·정청래 의원 등이 대표발의한 법안 7개가 합쳐졌다. 개정 경비업법의 핵심은, 기존 신고제였던 ‘경비원 배치제도’를 허가제로 바꾼 것이다. 개정법은 2014년 6월부터 시행 중이다. 과거에는 배치 24시간 전에 신고만 하면 되는 방식이었지만, 이젠 48시간 전에 관할 경찰서에 배치 신청을 해 허가를 받아야 한다. 관할 경찰서는 배치 예정인 경비원의 폭력 전과나 교육 이수 여부 등 결격 사유를 검토해 폭력이나 충돌 가능성이 있다면 판단하면 배치 신청을 반려할 수 있다. 배치 허가가 떨어진 뒤에도 경비업무의 범위를 벗어난 행위를 하거나 허가 신청 내용이 거짓으로 드러날 경우, 배치 폐지 명령을 할 수 있고 이를 따르지 않으면 경비업체 허가를 취소할 수도 있다. 한 번 허가가 취소되면 5년간 경비업 허가를 받을 수 없도록 규제도 강화했다.

에스제이엠 사태 이후 경비업법 개정 운동에 나선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의 김남근 변호사는 “경비업법 개정 이후 최소한 과거처럼 회사가 쟁의행위 중인 노동조합을 상대로 용역업체를 동원해 노골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일은 많이 없어졌다”며, 경비업법을 개정한 효과가 아주 컸다고 설명했다. 경찰 관계자는 “경비업체 입장에서 문제가 생겼을 경우 경비업 허가가 취소돼 5년 동안 사업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매우 조심스러워한다”고 설명했다. 갑을오토텍 노조의 손찬희 사무장은 “지난 8월 용역이 배치되고 굉장히 긴장을 많이 했는데, 11일 만에 다 빠졌다. 용역경비업체를 통해서는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인지, 경비업체 인력이 철수한 뒤부터는 사쪽 직원들이 정문으로 진입을 시도하면서 우리 쪽 폭력을 유발하려는 것 같다. 회사 직원들이 경찰청 앞에서 경찰 투입을 촉구하는 시위도 매일 하고 있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조심스럽기는 경찰도 마찬가지다. 과거 에스제이엠 사태 때는 경찰이 눈앞에서 벌어지는 폭력 사태를 수수방관하다 당시 관할서장이 옷을 벗는 일까지 있었다. 하지만 신고제에서 허가제로 바뀌고 경찰의 권한이 커진 만큼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했을 때 경찰이 져야 할 책임은 이전보다 훨씬 크다. 경찰청 관계자는 “배치 허가를 내줄 때 사전에 충돌 가능성을 꼼꼼히 따져 결정을 한다. 이번 갑을오토텍 앞에 경비업체 배치 허가를 내줄 때도 마찰이 일어나지 않도록 사내로는 들어가지 않는다는 조건을 달았다. 복장과 장비, 근무 장소 등도 엄격히 제한했다”고 설명했다. 개정법 시행 이후 재능교육이 본사 앞에서 천막농성 중인 노동자들을 상대로 경비용역 배치허가를 신청했지만 관할서인 서울 혜화경찰서가 두 차례나 반려하기도 했다.

개정 경비업법을 피한 편법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대책도 필요하다. 지난해 갑을오토텍 사업장에서 빚어진 폭력 사태는, 경비업체가 아닌 회사가 직접 고용한 특전사와 경찰 출신 직원들에 의해 발생했기 때문이다. 재개발이 추진 중인 서울 노원구 인덕마을 철거 현장에서도 재개발 조합 쪽에서 고용한 경비업체가 집행원 쪽 인력과 섞여서 철거에 반대하는 주민들에게 폭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경찰이 수사 중이다.

허승 기자 rais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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