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투기 읽어 주는 남자] 박정교의 대담성, 반만 최홍만에게 나눠 줄 수 있다면..

조회수 2016. 9. 27. 21:1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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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FC 이끌 '안티 히어로' 권아솔, 사시키 신지와 경기에서 보여 줘야 할 것은?

[스포티비뉴스=이교덕 기자] 케이지 옆 VIP석에 앉아 있던 로드FC 라이트급 챔피언 '권두부' 권아솔은 난데없이 가운뎃손가락을 들었다. 브루노 미란다를 트라이앵글 초크로 잡고 라이트급 타이틀 도전권을 따낸 사사키 신지에게 날린 쌍권총이었다.

그 장면이 그대로 생방송 전파를 탔다. 미국의 지상파 폭스스포츠 생방송에서 F로 시작하는 욕설을 서슴지 않던 네이트 디아즈와 비견될 만한 돌발 행동. 최홍만에게 "나랑 붙어"라고 소리치며 테이블을 뒤집고, 구와바라 기요시에게 KO패 한 뒤 "후두부를 맞아 기억이 안 난다"고 발뺌한 권아솔이니까 가능했다.

권아솔은 이날 경기를 치르지 않았지만 장충체육관에서 가장 주목 받은 '신 스틸러'였다.

지난 24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로드FC 33에서 최홍만이 마이티 모에게 또 KO로 졌다. 마이티 모가 펀치를 휘두를 때 카운터펀치를 맞히겠다는 작전이었으나 최홍만이 너무 느렸다. 마음에서도 졌다. 정타를 몇 대 맞고 나니 머릿속이 하얗게 된 듯, 몸이 굳어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그다음부턴 때리기 좋은 타깃이 됐다. 마이티 모는 마음먹고 오버 핸드 훅을 풀샷으로 돌렸고, 승기를 내준 최홍만은 결정타를 맞고 풀썩 주저앉았다.

마이티 모는 대회 후 기자회견에서 "내 몸 상태가 일생에서 가장 좋았다. 최홍만은 내가 몸 상태가 좋을 때, 그렇지 않을 때를 모두 겪었다. 그래서 그는 이번 경기에서 (몸 상태가 좋은 나를 보고) 유독 불안해 했다"고 밝혔다.

"전성기 시절 컨디션 80%를 회복했다"며 자신감을 보인 최홍만이었으나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경기 내용이었다. 아직 펀치 트라우마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적극적인 공격을 내지 못한 것이 패인. 몸무게 161kg로 10년 전 몸 상태에 가까워졌다지만, 마음은 그러지 않은 듯. 어설펐지만 무모하고 강력했던 '테크노 골리앗'의 돌격은 더 이상 볼 수 없는 것일까?

로드FC 33의 최고의 명승부는 미들급 경기에서 나왔다. 김내철과 박정교는 3라운드 15분 내내 치고받았다. 김내철이 선제공격하면서 초반 흐름을 주도했다. 그런데 정타를 꽤 많이 맞고서도 박정교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눈이 퉁퉁 부었지만 계속 "들어와"라고 손짓했다. 그러다가 카운터펀치를 터트리고 김내철을 휘청거리게 했다. '돌격대장'과 '흑곰'이 뒤엉킨 난전에 장충체육관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김내철의 판정승. 그러나 결과에 상관없이 남자의 싸움이란 무엇인지 보여 준 박정교에게도 박수를 보낸다. 박정교의 대담성을 주사기로 뽑을 수 있다면 좋겠다. 반만 최홍만에게 나눠 준다면 한국 격투기 흐름이 바뀔 수 있을 텐데…. 대담성을 떼어 줘도, 박정교는 케이지에 오르면 흑곰 스타일로 또 돌진할 게 분명하다.

박정교는 백스테이지에서 "김내철과 경기를 올해의 경기로 뽑아 달라"고 웃으며 말했다. 정말 그럴 수 있다면 로드FC '올해의 명승부' 상을 주고 싶다.

최홍만이 케이지 펜스에 기대며 KO된 순간이 개인적으로 뽑은 로드FC 33 최고의 명장면. 박정교의 "들어와, 들어와"가 두 번째. 세 번째는 밴텀급 김민우가 일본의 강자 네즈 유타에게 손쉽게 KO승 한 장면이었다.

'모아이' 김민우는 상승세가 가파른 젊은 강자다. 이제 만 23세. 무에타이 타격에 주짓수 실력을 장착한 올라운드 파이터로, 전적은 8승 2패가 됐다. 가장 중요한 건 군필이라는 사실! 사토 쇼코, 문제훈을 꺾고 이번에 네즈 유타를 카운터펀치에 이은 파운딩으로 15초 만에 끝내 3연승을 달렸다. 미래가 밝다.

전 밴텀급 챔피언 이윤준이 갑작스러운 뇌경색으로 타이틀을 반납해 현재 로드FC 밴텀급 왕좌는 공석이다. 정문홍 대표는 '원펀맨' 김수철을 일단 차기 챔피언 결정전 출전 대기자로 올려놓았다. 나머지 한 자리가 김민우 또는 문제훈에게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정문홍 대표는 "김민우와 문제훈의 상대 전적은 1승 1패다. 2차전은 문제훈이 대체 선수로 일주일만 준비해서 졌으니 기회가 한 번 더 돌아가야 한다"고 밝혔다.

김민우와 함께 그의 소속 팀 MMA 스토리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지난해 초 MMA 스토리 체육관에서 차정환 관장을 만났을 때 "우리 체육관 선반에 최무겸의 페더급 챔피언벨트가 놓여 있다. 2년 안에 벨트 두 개를 더 올려놓겠다"고 말했다. 웃으면서 던진 말이 현실이 돼 가고 있어 놀랍다.

당시 차정환 관장이 염두에 둔 선수는 밴텀급 김민우와 라이트급 김경표였을 텐데, 본인이 지난 1월 로드FC 28에서 후쿠다 리키에게 KO승 하고 떡하니 미들급 챔피언이 됐다. 그의 공약에서 남은 벨트는 하나. 과연 김민우가 타이틀전까지 갈 수 있을까?

지난해 7월 격투기 무대로 복귀해 1년 동안 로드FC 메인이벤트를 장식해 온 최홍만은 경기 전 "누가 뭐라고 해도 앞으로 10년은 선수 생활을 더 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메인이벤터로서 최홍만은 더 준비해야 한다. 달라져야 한다. 한국 무대가 부담된다면, 일본으로 가서라도 감각을 되찾길. 라이진은 최홍만이 마지막으로 자신의 가능성을 테스트할 수 있는 무대가 아닐까.

로드FC의 한 해 농사에서 흥행을 이끈 두 명의 파이터가 있었는데 하나가 최홍만, 하나가 권아솔이었다. 물론 권아솔은 올해 한 번 싸워 18초 만에 졌다. '권두부'라는 별명을 얻고 조롱의 대상이 됐다.

그러나 인지도는 크게 상승했다. "최홍만과 무제한급에서 붙여 달라"고 도발한 작전이 잘 먹혔다. 로드FC 33이 끝나고 기자들 사이에선 무제한급 토너먼트 우승자 마이티 모를 제치고 권아솔이 이 대회 MVP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가 나왔다.

인지도를 빠르게 높이기 위해 권아솔은 '치트키'를 썼다. 헤비급 선수들을 도발했고, 이둘희를 "작은 부상인데 도망간다"고 몰아세웠다. 페이스북에서 그는 코너 맥그리거보다 거친 악담을 쏟아 냈다.

그런데 대중의 관심을 받고 나서 케이지 위에서 파이터 권아솔을 보여 준 적은 없다. 그 기회가 오는 12월 10일 로드FC에서 갖게 될 라이트급 타이틀 2차 방어전이다. 사사키 신지는 스탠딩 타격전에서 잽을 잘 쓰고, 그라운드에서 탄탄한 주짓수 실력이 좋다. 전적 17승 3무 9패로 경험도 많다.

권아솔은 다음 달 16일부터 tvN에서 방송되는 모의 사회 시뮬레이션 '소사이어티 게임'에 출연한다. 벼르고 벼른 예능 프로그램 데뷔다. 권아솔은 그의 원투 스트레이트만큼 빠르고 강한 독화살을 여기서도 날려 댈 것이다.

그러나 이제 케이지 위에서 '파이터 권아솔'을 보여 달라. 계체도 무리 없이 통과하고 챔피언답게 경기를 이끄는 권아솔이, 숨을 고르고 마음을 다잡아야 하는 최홍만의 빈자리를 채울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분명 우리나라 정상급 파이터다.

끝으로 로드FC 33 종료 후 기자회견에서 권아솔과 사사키 신지의 대화 내용을 전한다. 권아솔은 역시 다양한 공격(?)을 준비하고 있다.

권아솔 : 사사키가 상대의 약한 부분을 잘 공략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 우선 너무 재미없는 경기였다. 수준이 떨어졌다. 타이틀 도전자에 맞지 않는 내용이었다. (갑자기) 사사키 신지에게 질문을 해도 되겠는가? 독도는 누구 땅이냐고 생각하는가?

사사키 : 에…. 질문이 너무 어렵다. 격투기 이외에 잘 모른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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