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깊이보기]'증오의 정치'가 불러온 유혈사태..헝가리에서 경찰 노린 폭탄 공격

이윤정 기자 2016. 9. 2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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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증오는 또 다른 증오를 불러올 뿐이다.

다음달 2일 유럽연합(EU)의 난민 분산 수용 계획 찬반을 묻는 헝가리 국민투표를 앞두고 지난 24일(현지시간) 수도 부다페스트에서 경찰을 겨냥한 폭탄 공격이 발생했다. 이날 폭발로 경찰 2명이 크게 다쳤다. 카롤리 팝 경찰청장은 25일 기자회견에서 “이번 공격의 목표는 경찰이었다”고 밝혔다.

아직 테러 가능성에 대해 밝혀진 것은 없지만 헝가리 내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 정부 측 캠페인은 자극적인 표현을 사용하며 난민 수용 반대 여론을 부추겼다. 야당은 정부가 국민 복지와 부패 문제에서 여론을 돌리기 위해 난민 문제를 끌어들였다고 비판했다. 정부 캠페인에 반대하는 여론은 잠잠한 편이었지만 갈등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었다. 도심 한가운데서 경찰을 살상하기 위한 공격이 벌어진 것도 국민투표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총리 “난민은 독”…난민은 막았지만 증오는 막지 못했다
헝가리의 인종차별적인 외국인혐오 정책은 악명 높다. 지난해 9월 EU가 16만 명의 난민 분산 계획을 투표에 부쳤지만 헝가리는 반대표를 던졌다. 난민 분산 계획이 확정된 뒤에도 헝가리는 줄곧 강제할당에 반대하며 자국만의 대책을 세우고 있다. 지난해 9월엔 오스트리아, 독일 등에서 들어오는 난민을 막기 위해 국경에 레이저 선을 두른 장벽을 세웠다.

우파 성향의 빅토르 오르반 총리도 인종차별적 발언을 서슴지 않고 내뱉는다. 그는 지난 7월 크리스티안 케른 오스트리아 총리와의 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모든 이민자들이 공공안전 위협이자 테러 위협”이라며 “우리에게 이민자들이란 해결이 아닌 문제이고 약이 아닌 독”이라고 말했다. 또 최근에는 “EU가 리비아에 거대한 난민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고까지 주장해 비난을 받았다.

국민투표를 앞두고 헝가리 정부는 난민에 대해 반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알고 있느냐(Did you know)’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방송화면 캡처

국민투표를 앞두고 정부는 ‘알고 있느냐(Did you know)’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캠페인에는 “프랑스 파리 테러가 이민자들이 벌인 것을 아는가” “리비아에서만 난민 100만명이 유럽으로 넘어온 것을 아는가” “유럽으로 난민이 몰려든 뒤 여성 성희롱 사건이 증가한 것을 아는가” 등의 문구가 사용됐다. 정부는 포스터를 제작 등 캠페인을 위해 세금 1000만유로(124억6400만원)을 썼다.

정부의 극우적 캠페인을 비난하기 위해 사회주의 정당인 ‘두 개의 꼬리를 지닌 개’는 풍자 포스터를 만들었다. 이들은 크라우드펀딩으로 4000명에게 10만유로(1억2400만원)를 모금했다. 정부의 포스터를 풍자해 “헝가리인 100만명이 다른 유럽국가로 이주하기를 원하는 것을 아는가” “시리아가 지금 내전을 벌이고 있는 것을 아는가” 등의 문구를 포스터로 제작했다. 게르게이 코바치 대표는 “정부를 반대하면서도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는 헝가리인 수백만명에게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고 풍자 포스터 제작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정부의 선동 정책에 난민을 반대하는 여론은 높아지고 있다. 여론조사 기관인 푸블리쿠스의 안드레아스 풀라이 대표는 “1년 전만 해도 난민을 지지한다는 여론이 2/3에 달했지만 올해는 응답자의 1/3만이 난민에 대해 동정심을 갖고 있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정부 측은 EU의 난민 수용 계획을 반대하는 캠페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졸탄 코바치 정부 대변인은 “사람들이 왜 상식적인 이야기를 ‘외국인 혐오’라고 몰아가는지 모르겠다”며 “난민을 무조건 수용하라는 EU가 잘못됐기 때문에 우리는 헝가리의 국경 통제권을 EU로부터 다시 가져올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가 앞장 서서 난민을 폄하하고 있는 것에 대해 코바치 대표는 “헝가리에서 지금처럼 증오가 확산했던 시대는 없었던 것 같다”며 “그들은 (증오라는) 악마를 끄집어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에 말했다.

■테러 위험 ‘유럽 방문 금지 구역’ 지도까지 제작했지만 자국서 경찰 공격 당해
헝가리 정부가 테러가 일어난 유럽 각 도시를 지도에 표시한 ‘유럽 방문 금지 구역’ 책자를 지난달 일반 가정에 배포했다.

정부는 난민을 테러 위협을 가하는 존재로 몰아가기도 했다. 테러가 일어난 유럽 각 도시를 지도에 표시한 ‘유럽 방문 금지 구역’ 책자를 지난달 각 가정에 보내 비난을 샀다.

헝가리 정부가 수백만 가구에 배포한 이 책자에는 런던, 브뤼셀, 마르세유, 베를린, 스톡홀름, 코펜하겐 등 유럽 주요 도시 900여 곳이 난민 때문에 가서는 안 되는 곳으로 표시됐다. 난민이 유럽 주요 도시에서 테러와 폭력을 일으켜 정부 당국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게 책자 내용이다.

‘통제 불능’ 지역으로 묘사된 영국, 프랑스, 덴마크, 벨기에, 스웨덴 주헝가리 대사들은 헝가리 외무부 장관을 만나 캠페인 책자가 실상을 곡해하고 있다고 항의했다. 그러나 헝가리 외무장관은 BBC에 “치안 담당 기구의 공식 자료를 근거로 만든 것”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난민을 한 명도 받아들이지 않은 헝가리에서도 지난 24일 도심 폭발물 공격이 일어났다. 폭발물은 유산탄으로 조합된 사제폭탄이었다. 경찰청장은 “범죄 원인에 대해 7가지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했지만 테러 연관성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했다.

헝가리 당국은 현재 용의자를 찾기 위해 공항과 기차역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다. 폭발 장소 인근 145개 보안 카메라에서 확보한 사진을 분석해, 청바지와 밝은 색 낚시 모자를 착용한 20세∼25세 남성을 용의자로 지목했다. 용의자 정보를 건네는 제보자에게 현상금 1000만 포린트(약 4000만원)도 내걸었다. 의회는 26일 국가안보위원회 회의를 열어 폭발사건 관련 대책을 논의했다.

한편 다음달 2일 열리는 국민투표가 유효하려면 50% 이상 투표율을 기록해야 하지만 국민들이 얼마나 투표장에 나올지는 미지수라고 외신들은 내다봤다.

<이윤정 기자 y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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