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기씨 죽음 앞에서.. 부검만 고집하는 경찰

김성환 2016. 9. 27. 0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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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찰, 법원 기각에도 거듭 주장

“국민 관심 커 명확한 절차 필요”

이철성 청장 기자간담회서 강조

보강수사 후 영장 재신청 강행

2. 시민ㆍ사회단체 대정부 투쟁 예고

유가족, 정부 상대 손배소송 제기

“책임 회피하기 위한 경찰의 꼼수”

영장 집행 우려해 경찰과 대치 중

서울대병원에 마련된 고 백남기씨 빈소에 26일 조문을 하기 위한 시민들의 행렬이 멀리 건물 밖까지 이어졌다. 사진공동취재단

시위 도중 경찰이 쏜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사경을 헤매다 숨진 고 백남기(69)씨 부검을 강행하려는 경찰을 향한 비난이 거세지고 있다. 법원의 영장 기각 결정에도 경찰은 재신청을 강행하는 등 부검 의지를 굽히지 않아 과잉진압에 따른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꼼수가 아니냐는 지적이 비등하다.

서울중앙지법은 26일 새벽 경찰이 전날 신청한 백씨의 (사체)부검영장(압수수색검증영장)을 기각하고, 진료기록 압수에 대한 영장만 발부했다. 공식적인 기각 사유는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경찰은 부검이 필요하다는 의사를 거듭 피력하고 있다. 이철성 경찰청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백씨 부검은) 일반 변사사건 처리 지침에 따른 것”이라며 “또 국민적 관심이 크고 법적 다툼도 있는 사안이어서 더욱 명확한 절차를 밟아 의학적 판단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찰은 이날 확보한 의료기록 분석 및 전문가 의견을 토대로 보강수사를 한 후 검찰과 협의를 거쳐 밤 늦게 영장을 재신청했다.

반면 법원의 판단은 다르다. 재경법원의 한 판사는 “사인이 분명히 드러나거나 다른 방법에 의해 규명될 수 있을 때 (부검영장을) 기각한다”며 “백씨의 경우 이미 수개월 전부터 입원과 검사, 치료를 받아와 여러 진료기록이 존재했고, 사망 전 전문의 진단도 나와 일반 변사사건의 기준으로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부검이 필요한 사안이 아니라는 얘기다.

때문에 경찰이 백씨 죽음을 놓고 책임소재를 가릴 민ㆍ형사상 소송 등에 대비하기 위해 부검을 밀어 붙이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관계자는 “경찰은 백씨의 입원 당시 증상(지주막하 출혈)과 심정지 사유(신부전)가 다르다는 점을 빌미로 부검 당위성을 주장하고 있다”며 “직접적 사인이 물대포 피해와 관계없다고 밝혀질 경우 향후 소송에서 유리한 증거로 삼으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현재 백씨 유가족은 국가를 상대로 2억4,000만원 규모의 국가배상청구 및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또 강신명 전 경찰청장 등 경찰 관계자 7명을 살인미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해 수사가 진행 중이다.

경찰의 부검 강행 방침이 알려지면서 시민ㆍ사회단체들은 강력한 대정부 투쟁을 예고했다. 백씨 시신이 안치된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는 혹시 모를 영장 집행을 우려해 일반 시민 및 단체 관계자 50여명이 경찰과 대치를 이어가고 있다. 경북 성주에서 올라온 농민 석호판(55)씨는 “25일부터 경찰이 백 농민의 시신을 탈취하려 한다는 말이 돌아 자리를 떠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전날 3,600여명의 경력을 빈소 안팎에 배치했던 경찰은 이날 400여명을 병원 주변에 남겨두고 만일의 물리적 충돌에 대비했다.

백씨 투병을 계기로 꾸려진 범국민대책위원회도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투쟁본부로 전환했다. 대책위 측은 “국가폭력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 대책이 마련될 때까지 범국민 서명운동과 촛불 문화제 개최 등 투쟁을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오후까지 백씨 빈소에는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와 박원순 서울시장,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조문객 2,000여명이 다녀 갔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수사 자체가 이뤄지지 않았고 법원이 위법성을 확인했는데도 부검을 고집하는 경찰의 행태는 명백한 수사권 남용”이라고 지적했다.

김성환기자 bluebird@hankookilbo.com

26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에 마련된 고 백남기 농민의 빈소.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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