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개 일자리사업에 15조 헛돈.."차라리 n분의 1로 나눠줘라"

조시영 2016. 9. 26.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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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급국가 바이러스 ⑥ ◆

'고용촉진지원금, 지역고용촉진지원금, 장년고용지원금, 장년고용안정지원금, 출산육아기고용안정지원금, 고용유지지원금, 고용창출지원금….'

비슷한 이름의 이들 사업은 현재 정부가 운영 중인 '고용장려금' 사업들이다. 올해 정부는 고용장려금 명목으로 4개 부처에서 총 20개 사업에 2조8000억여 원의 나랏돈을 쏟아붓고 있다. 2조8000억원은 연봉 3000만원짜리 정규직 일자리를 해마다 9만3000개 만들 수 있는 규모다. 최근 우리나라 일자리가 연 30만개씩 늘어나는 것을 감안하면 엄청나게 큰 돈이다.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는 사업이지만 얼마나 고용을 '장려했는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분석조차 없다. 정부 고위 관계자마저 "차라리 예산을 돈으로 나눠주면 더 효과가 있었을지 모른다"고 토로할 정도다. 수십 년 동안 '관행적으로' '보여주기식'으로 운영된 정부 정책이 대한민국을 B급 국가로 만든 바이러스라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고용장려금은 정부 정책이 '시대 흐름에 맞춰 변화하지도 않고, 제도 원래 취지에 맞춰 운영되지도 않는' 실상을 대표한다.

우선 정책의 '방향' 자체가 20년째 제자리인 게 문제다. 박윤수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26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은 주로 신규 채용을 돕는 방식으로 고용장려금을 운영하고 있다"며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전체 고용장려금 예산 중 새로운 일자리 창출을 지원하는 사업 비중은 9.6%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기존 일자리를 유지하는 형식으로 지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외환위기 직후 고용 창출보다는 고용 안정에 중심을 두고 우후죽순 만들어진 고용장려금 제도가 20년 가까이 그대로 유지된 결과다. 일자리 사업 예산을 담당했던 기획재정부 관계자도 "고용 유지형 고용장려금은 원래 경제위기 때 대량 실업을 막는 효과적인 수단이었다"며 "지금 같은 일반 상황에서는 채용을 늘리는 쪽으로 제도를 운영하거나 아니면 아예 고용장려금 규모를 줄이는 게 맞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문제는 담당 공무원들이 고용장려금 제도의 원래 취지 자체를 모르고 '관행적으로' 일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KDI가 20개 사업 담당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사업 수혜 집단이 누구인지에 대해 물은 결과 절반가량이 '지원 대상을 특별히 구분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원래 취업취약계층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제도인데 관행적으로 집행하다보니 담당하는 공무원들마저 제도의 본래 취지에 대해 무감각해진 것이다. 예산을 펑펑 쓰는 '고용장려금' 정책이 '공무원 고용 유지용'으로 전락했다는 비아냥이 나오는 이유다.

일자리 사업 전체로 시야를 넓혀 보면 문제의 심각성이 더해진다.

일자리 사업에는 올해 25개 부처 196개 사업에 15조8000억여 원의 나랏돈이 투입된다. 전체 6개 일자리 사업 대분류 가운데 고용장려금 다음으로 많은 돈이 투입되는 게 2조6000억여 원이 들어가는 직접일자리 사업이다. 단순노동 위주다 보니 정작 일자리가 필요한 청년이나 고학력 여성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사업들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3조9700억원이 투입된 이후 규모가 크게 줄지 않은 채 유지됐다. 선진국에서는 경기가 침체됐을 때만 동원하는 사업을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상시적으로 운영하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일자리 사업을 25개 부처에서 나눠 하다보니 부처별로 당장 '일자리 몇 개를 늘렸다'고 홍보 효과를 내야 하기 때문에 직접일자리 사업이 우후죽순 늘어났다고 진단한다. 한마디로 정부 정책이 '보여주기' 위주로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비슷한 사례는 대부분의 부처에서 발견된다. 더불어민주당 김현권 의원에 따르면 2010년부터 7500억원이 투입된 농림축산식품부의 '일반농산촌 종합개발사업' 169개 권역을 조사한 결과 가구당 소득은 사업 종료 3년 후 불과 6만8000원이 늘었다. 단순히 사업비를 나눠 해당 권역 농가에 줬을 경우 가구당 1039만원이 돌아간다는 계산이다. 사실상 정책 효과가 아예 없는 셈이다.

사업을 통해 만들어진 저온저장고, 복지관, 숙박시설 등 시설물 활용도도 150개 조사 대상 중 92곳(61.3%)이 "부진하다"고 대답했다. 농식품부는 시설물 활용도 부진 원인에 대해 "시설물 조성 이전에 운영과 사후관리에 대한 구체적 계획이 미흡했고, 마을별 나눠 먹기식 시설 조성으로 동일 기능 시설이 중복되고 이에 따른 운영비 중복 지출이 발생했다"고 해명했다. 김 의원은 "일반농산촌 개발사업은 농촌 현장에서 예산 낭비 사업, 소수에게만 특혜가 돌아가는 사업으로 악명이 높았다"고 지적했다. 보여주기식 업무로 예산을 낭비한 사례는 부처별로 경쟁하듯 만든 공공 애플리케이션(앱)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김병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산업통상자원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산업부와 산하 기관에서 운영 중인 공공 앱 29개 이용실적이 저조해 폐지됐다. 이는 전체 산업부 소관 앱 41개의 약 70% 수준으로 총 5억원가량의 예산이 낭비된 것으로 알려졌다. 예를 들어 산업부가 개발해 운영하던 공공 앱 '산업통상자원부픽토그램'은 2013년 3월 1500만원을 투입해 개발됐지만 누적 다운로드 건수가 약 500건에 불과해 폐지됐다. 이 밖에도 20여 개 앱이 정보제공 등을 목적으로 개발·운영하다 이용실적 저조와 서비스 중복 업데이트 등 관리상의 어려움 등으로 폐지된 것으로 나타났다. 엉터리로 정책을 설계하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이훈 더민주 의원에 따르면 산업부가 관리하는 '지방투자촉진보조금'은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기업에서 돌려받지 못할 나랏돈이 4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방투자촉진보조금은 수도권 소재 기업이 지방 투자를 계획할 경우 보조금을 주는 제도로, 기업이 투자계획을 성실히 이행하지 못하거나 부도가 나면 국고로 환수해야 한다. 하지만 2012년 이전에는 환수 요건이 강제가 아니어서 약 15억원을 돌려받지 못했고, 환수 의무화가 도입된 2012년 이후에도 기업 부도로 환수하지 못한 금액이 현재 4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별취재팀 = 조시영 차장 / 이상덕 기자 / 전정홍 기자 / 이승윤 기자 / 정의현 기자 / 나현준 기자 / 부장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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