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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재우의 메이저? 메이저! ] 굿바이, 에이스 페르난데스

조회수 2016. 9. 26. 15:1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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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호세 페르난데스!

 지난 25일 늦은 밤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2013년 내셔널 리그 신인왕이자 마이애미 말린스의 에이스 호세 페르난데스가 보트 충돌 사고로 세상을 떴다는 것이 그 충격적인 소식의 전말이었다. 이제 나이 24세. 그야말로 앞날이 창창한 메이저 리그를 대표하는 강력한 구위의 소유자이며 드라마와 같은 탈출의 주인공인 그가 이렇게 허무하게 세상을 등졌다는 것이 믿기 어려웠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아직 그의 숨겨진 기량 모두를 채 펼치기도 전에 아쉬운 작별을 고했다는 것이다.

 15살이란 어린 나이에 목숨을 걸고 쿠바를 탈출하여 메이저 리그에 화려한 데뷔를 했고 찬란한 미래를 꿈꾸었던 그의 짧은 인생을 되돌아 보았다.

 24년전 쿠바의 산타 클라라에서 출생하고 자란 그는 올시즌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주전 유격수로 떠오른 알레드미스 디아즈와 한동네에서 자라며 함께 야구를 했다. 그리고 디아즈의 아버지와 삼촌이 페르난데스의 재능을 알아보고 야구를 권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의 의부가 2005년 쿠바를 탈출한 뒤 페르난데스는 13살의 어린 나이에 어머니, 여동생과 역시 탈출을 시도한다. 하지만 3번의 시도는 모두 실패로 돌아가고 페르난데스는 그 때마다 붙잡혀 그 어린 나이에 감옥 생활을 해야 했다.

 그래도 그에게 영원히 꺾을 수 없는 꿈인 메이저 리그 무대를 향한 열정은 멈추지 않았고 2007년 네 번째 시도만에 마침내 탈출에 성공한다. 이런 탈출은 정말 목숨을 건 시도였다. 실제로 멕시코로 향하는 배에서 어머니가 바다로 떨어졌고 페르난데스는 상어가 우글거리는 바다에 목숨을 걸고 뛰어들어 어머님을 구하는 등 천신만고 끝에 멕시코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2008년 미국 플로리다주의 탐파로 이주를 하게 된다. 그곳에서 브롤리오 알론소 고교에 진학하여 다시 야구를 시작하게 되고 재능은 꽃을 피우기 시작하게 된 것이다. 고교 마지막 해에 그는 12승1패에 2.35의 평균 자책점을 기록했을 뿐 아니라 두 번의 노히트 경기까지 펼쳐 메이저 리그 스카우트들의 눈을 사로잡게 된다. 지역팀인 마이애미가 지역 스타로 이미 발돋움한 페르난데스를 놓칠리 만무했다. 2011년 아마추어 드래프트에서 그는 당당히 1라운드 14번에 지명됐고 2백만달러의 계약금을 받게 된다.

 당시 그를 눈여겨 본 스카우트의 표현을 빌려보면 자신의 구위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해 ‘cocky’라는 표현을 썼다. 이 표현은 수탉처럼 도도하다는 뜻이다. 거기서 그친 것이 아니라 이런 도도함은 마치 아마추어 시절의 로저 클레멘스나 조시 베켓을 연상 시키며 구위 또한 이들과 비견하여 전혀 떨어지지 않는다라고 리포팅을 했다고 하였다. 그는 제2의 고향팀 마이애미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프로 데뷔를 한 이듬해인 2012년 퓨처스 올스타전에 출전했으며 싱글A 팀에서 14승1패 1.75의 뛰어난 성적을 거두며 일약 팀 내 최고의 유망주로 떠오른 것이다. 2013년 마이애미는 이제 프로 경력 1년 반에 불과한 페르난데스를 스프링 트레이닝에 초청했고 기죽지 않는 투구에 감탄을 금지 못했다. 결국 경험을 쌓아주는 측면의 애초의 계획과는 다르게 그는 당당히 25인 로스터에 들어간다.

 더블A도 거치지 않은 약관 20살의 쿠바 출신 청년이 당당히 메이저 리거로 탄생한 것이다. 그 해 그는 내셔널 리그에서 브라이스 하퍼를 제외하곤 최연소 선수였다. 그 해 4월7일 뉴욕 메츠를 상대로 데뷔전을 치뤘고 5이닝 동안 3피안타 1실점 탈삼진 8개를 기록하며 확실한 싹수를 보였고 두 번째 선발 등판에서 템파베이 레이스를 상대한다. 이 경기가 끝난 후 당시 조 매든 감독은 자신의 야구 경력에 가장 뛰어난 젊은 투수라고 극찬을 했다.

 영상설명: 2016년 9월 10일 7이닝 14K 호투를 펼친 페르난데스

그의 매 등판 경기는 전국의 뉴스거리로 떠올랐고 영화가 같은 탈출 스토리가 사람들이 심금을 울렸다. 그의 행진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데뷔 첫 해 올스타로 선정되는 영광으로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전설의 밥 펠러와 드와이트 구든에 이어 올스타 역사상 3번째로 만 21살이 되기 전에 삼진을 두 개 잡은 투수로 기록된다.

 신인으로서 투구 이닝 제한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해 기록은 28경기 등판 12승6패 2.19의 평균 자책점을 기록했다. 평균 자책점은 2위였고 대체 선수 대비 가치인 WAR은 6.3으로 전체 3위를 기록했다. 187개의 삼진은 6위지만 9이닝당 9.75의 탈삼진은 1위였다. 사이영 투표에서도 클레이튼 커쇼와 아담 웨인라이트에 이어 3위에 오를 정도였다. 그 이듬해 8경기만 던지고 타미존 수술을 받게 되고 지난해 후반에 돌아와서 전혀 수술의 휴유증 없이 6승을 거두며 시즌을 마감했고 올해는 역시 시즌의 대다수를 포스트 시즌 경쟁에 들어가 있던 팀의 에이스로 16승8패 2.86의 성적을 거두었다. 그의 마지막 경기는 워싱턴 내셔널스와의 홈경기로 8이닝동안 피안타 단 3개 무실점 호투였고 무려 13개의 삼진을 뺏어내며 시즌 16승을 거둔 것이다.

 페르난데스는 자신과 목숨을 건 탈출을 한 어머님과 할머니를 끔찍이 아꼈다고 한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죽기 일주일전 SNS를 통해 자신의 여자 친구 카를로 멘도자의 임신 소식을 알려 가슴을 아프게 한 것이다.

 많은 야구 전문가들은 짧지만 굻직했던 그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아직 자신의 정점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을 꼽는다. 하늘이 내려준 재능과 열정 그리고 야구에 대한 사랑을 다 펼치지 못하고 우리 곁을 떠난 것이다. 그의 사망 소식을 전하는 팀 공식 인터뷰 석상에서 돈 매팅리 감독은 울음을 참기 위해 여러 차례 말을 멈추어야 했다. 그리고 그의 야구는 마치 돈도 명예도 아닌 순수한 즐거움을 추구하는 리틀 야구의 기쁨을 느끼게 해주었다며 눈물을 삼켰다.

 그의 멋진 투구를 우리는 이제 이생에서 볼 수는 없지만 하늘 나라에서 못 다한 멋진 투구를 하리라 믿는다. 굿바이 호세 페르난데스, 굿바이!

영상설명: 슬픔이 느껴지는 사진, 디아즈와 페르난데스

영상설명: 페르난데스를 잃은 슬픔을 전하는 맨프레드 커미셔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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