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어 입력폼

[야구는 구라다] 강정호 조연, 매커친 주연의 '득점 조작단' 사건

조회수 2016. 9. 26. 12:50 수정
음성재생 설정

이동통신망에서 음성 재생시
별도의 데이터 요금이 부과될 수 있습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이 남자, 사주팔자가 궁금하다. 도대체 바람 잘 날이 없는 인생이다. 예상한 사람 많지 않았던 메이저리그에서의 대단한 성공, 비극적인 부상, 화려한 컴백, 그리고 엄청난 스캔들의 소용돌이. 하지만 그것마저 별 일 없을 것이라는듯 멀쩡하게 뛰어다닌다.

오늘(26일) 게임은 그의 파란만장한 미국 생활을 빼닮았다. 사연도 많고, 일도 많았다.

재활 프로그램 탓에 뒤늦게 복귀했지만 97게임만에 20홈런을 달성했다. 아시아 출신 내야수로는 처음 도달한 기록이다. 3개만 보태면 추 선배의 22개(2010년, 2015년)를 넘어서게 된다.

그의 20호에 팬들의 갈채가 쏟아진 건 비단 기록의 의미뿐 아니다. 험악한 위협구에도 굴하지 않고 터트린 한 방이라는 스토리 때문이다.

왜 이런 표정이 나왔을까. 20호를 친 다음인 8회. 덕아웃에서 핸슨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있다.

혼란의 시작은 3회였다. 빈볼→퇴장→벤치 클리어링으로 어수선했다. 와중에 당사자보다 격렬하게 반응한 서벨리와 로드리게스가 의인으로 추앙됐다. 이윽고 5-5에서 터진 2점포. 여기에는 ‘분노의 한방’, 또는 ‘정의구현’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회자됐다.

문제의 발단은 그의 페이크 동작에 있었다. 폼 잡으려던 주자 브라이스 하퍼가 화들짝 놀라며 부상을 당하게 했던 그 플레이 말이다.

경기 후 그는 “중계되던 볼이 빠지면서 주자를 묶어둬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페이크 동작을 하게 됐다”고 해명했다. 얼떨결에 당한 하퍼는 순간 욕설을 내뱉은 것으로 전해진다. 그만큼 그 플레이는 서로 입장에 따라 감정의 차이가 있을 지 모른다.

하지만 이 경기에서는 그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페이크 플레이가 있었다. 역시 블러핑의 천재들이 기획한 것이었다.

페이크의 천재들이 기획한 플레이

1회 초였다. 홈 팀은 순식간에 3점을 잃었다. 안타, 볼넷에 이어 더블 스틸까지 당했다. 배터리와 내야가 유린됐다. 외야에서는 실책도 나왔다. 가뜩이나 어제 경기에 패해서 샴페인까지 선사했는데….

열이 좀 받는다. 뭔가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 그리고 1회 말 반격에서 그걸 깔끔하게 갚아주는 희대의 플레이가 나왔다. 마침 상대 선발 AJ 콜이 스트라이크를 못 넣는다. 연이은 볼넷 3개로 무사 만루. 여기서 4번 파란만장이 적시타를 터트린다. 1-3.

계속된 기회에서 희생플라이가 나왔다. 좌중간 깊은 구역이었다. 3루 주자의 득점은 물론이고, 2루 주자도 3루로 갔다. 1루 주자는? 못 갔다. 사실 뛰었다면 충분했다. 워싱턴 수비의 중계 플레이가 3루를 향하고 있었기 때문에 빠른 언더베이스를 택했다면 2, 3루가 될 수 있었다.

여기서 수비가 1차적으로 중요한 착각을 한다. ‘1루 주자(강정호)는 센스가 별로구나.’

1사 1, 3루에서 타석에는 6번 조디 머서다. 카운트 1-0에서 2구째. 배트가 나갔다. 타구는 포수 머리 위로 떴다. 그것도 파울 지역이었다. 허탈하게 투 아웃이 됐다. ‘추가점은 어렵겠군….’ 홈 팬들의 표정에는 실망감이 역력했다. 공을 잡은 포수(페드로 세베리노)는 득의만면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엉뚱한 일이 생겼다. 갑자기 1루에 있던 주자가 달리기 시작했다. ‘저건 자살이나 다름 없는데.’ 멀지도 않았다. 포수 바로 뒤에 떨어진 파울 플라이였다. 우샤인 볼트라도 살 수 없는 타이밍이었다. 게다가 그는 방금 전 그 깊은 좌익수 플라이 때도 2루를 못 간 ‘허접한’ 주자 아닌가.

포수는 재빨리 2루로 쐈다. 정확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아웃에 대한 의심은 없었다. 너무나 충분했다. 하지만 그 순간. 페이크의 실체가 드러났다. 1루 주자는 중간에 멈춰 버렸다. 대신 3루 주자 매커친이 바람 소리를 내며 스타트를 끊었다. 아차! 송구가 홈으로 되돌아왔지만 이미 늦었다. 매커친은 벌써 “OK”를 외치고 있었다.

마치 1, 3루 더블 스틸처럼 기발한 주루 플레이로 동점을 만드는 매커친과 강정호의 모습.    mlb.tv 화면

3루수와 투수의 위치가 헛점이었다

마치 1, 3루 주자간의 더블 스틸이 연상됐다. 하지만 다르다. 분명한 차이가 있다. 거기에는 여러가지 깊은 수읽기가 필요한 대목들이 존재한다. 그만큼 수준 높은 묘수들이 가득하다. 무엇이 헛점이었고, 그게 어떻게 이용됐을까? 음미할 가치가 충분하다.

① 일단 수비측은 아주 작은 빈틈 하나를 노출했다. 이 플레이의 핵심. 즉 3루수의 위치였다.

파울 플라이가 뜨자 3루수(앤서니 렌던)는 아무 생각 없이 타구 방향으로 스타트했다. 물론 당연했다. 그러다 보니 3루가 비었다. 그건 매커친이 그만큼 자유롭게 됐다는 뜻이다. 실제로 매커친은 성큼성큼 두세 걸음 앞으로 나온다. 그리고 송구가 2루로 향하자 곧바로 스피드를 올렸다.

② 재생 화면을 보자. 3루수가 앞으로 달려나가자 매커친은 강정호와 시선을 맞춘다. 그리고 오른손을 두어번 돌린다. ‘공사’를 시작하자는 사인이었다.

③ 신호에 맞춰 1루 주자도 베이스로 돌아간다. 그럴 필요가 전혀 없는데 말이다. 그리고 공이 잡히자 마치 언더베이스 하듯이 2루를 향해 돌진한다. 수비는 얼떨결에 공을 뿌리게 된다. 하지만 그는 애초에 2루에 도달할 의사가 없었다. 무조건 중간에 스톱한다는 계산이었다. 그가 먼저 아웃되면 이닝이 끝난다. 3루 주자가 홈에 뛰어들도록 중간에서 멈춰서는 게 필요조건이다.

④ 수비 쪽의 또다른 문제점은 투수의 위치다. 실전에서 3루수 뿐아니라 투수도 포수 쪽으로 달려왔다. 혹시라도 홈을 커버하기 위해서다.

여기서 헛점이 드러난다. 포수~2루 사이는 거리가 꽤 멀다. 중간에 잘라줄 커트맨이 없다면 오랜 공백에 노출된다. 보통의 1, 3루 더블 스틸 때는 투수가 중간에 있다. 자연스럽게 커트맨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게 3루 주자의 자유로운 움직임을 제어하는 요인이다.

그러나 실전에는 중간이 휑하니 비어 있다. 공은 포수 손을 떠나는 순간, 필연적으로 2루까지 갔다와야 한다. 즉, 매커친처럼 빠른 주자에게는 충분한 시간을 제공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최고의 플레이는 자체만으로도 가치 있다

게임을 재구성해보자. 만약 강정호와 매커친의 그 플레이가 없었다면 그 이닝은 더 이상 추가점 없이 끝나게 된다. 즉 2-3으로 리드를 당한 상태로 계속 끌려가게 된다. 그러나 그 플레이 하나로 동점이 됐다. 또 끌려가던 덕아웃 분위기도 살릴 수 있었다. 중반까지 접전을 펼칠 수 있는 반전의 계기가 됐다.

물론 게임은 패했다. 가을 야구로 향하는 길은 더 멀어졌다. 그렇다고 우리가 즐길 수 있는 게 없어진다는 뜻은 아니다.

세계 최고 레벨의 플레이는 그 자체만으로 가치를 지닌다. 철저한 계산과, 준비. 그리고 찰라의 타이밍에서 나온 탁월한 교감에서 탄생한 걸작이기 때문이다.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