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전경련, 탈퇴시켜달라는 공공기관에 '마음대로 못나가'

입력 2016. 9. 26. 01:06 수정 2016. 9. 26.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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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전·석유공사 등 7개 기관 탈퇴 요청에
전경련 “계속 회원사로 남으라” 거부 공문
“조폭식 갑질” 비판…위기 징후라는 분석도

지난 1961년 설립된 전국경제인연합회. <한겨레> 자료사진

재벌 이익단체인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회원사에서 탈퇴시켜달라는 공공기관들의 요청을 거부해 비판을 사고 있다. 전경련은 지난 1961년 재벌 회장들이 모여서 만든 민간단체로, 회원 가입을 강제하거나 보류시킬 법적 권한은 전혀 없다.

25일 <한겨레>가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속 조배숙 의원(국민의당)을 통해 입수한 문서를 보면 5월말~6월초 한국전력공사·한국서부발전·한국석유공사·한국가스공사·한국에너지공단·한국석유관리원·한국산업단지공단 등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7개 공공기관은 전경련에 탈퇴 요청서를 보냈다. 1967년 전경련에 가입한 한국산업단지공단은 지난해 180만원의 회비를 냈으며, 나머지 6개 기관은 수년 전부터 회비 납부를 중단한 상태였다.

이들 7개 기관을 포함해 주요 공공기관 17곳이 재벌 이익단체인 전경련 회원사로 가입해 길게는 수십년 동안 회비를 납부해온 사실은 지난 5월 <한겨레> 보도로 드러난 바 있다. (▶바로가기: [단독] 공공기관 17곳, ‘재벌 창구’ 전경련에 수십년간 회비 냈다)그 뒤 정부의 투자와 예산 지원으로 설립·운영되는 공공기관들이 재벌의 이익을 위해 활동하는 전경련에 가입한 것은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잇따랐다.(▶바로가기: 더민주·정의당 “공공기관들 전경련 가입 납득 안돼”)

전경련은 8월11일 허창수 회장 명의로 한전 등 6개 기관에 ‘전경련 회원 탈회 요청에 대한 퇴회 보류 회신’ 이라는 제목의 공문을 발송했다. 탈퇴를 받아줄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나머지 한 기관은 공문 수령을 거부했다.

“회원으로 가입한 취지 및 가입기간 등과 국가경제를 위한 본회 취지에 부합한다는 측면에서 최종 검토한 결과 퇴회를 보류시키고 회원으로 남아서 국가와 국민경제 발전에 함께 노력하고 동참해 주셔야 한다고 결정됐습니다.”
지난 8월 11일 전경련이 회원사 탈퇴를 요청한 한전·가스공사·석유공사 등 공공기관들에 탈퇴처리 불가 결정을 통보한 공문. 자료: 국민의당 조배숙 의원실

이러한 전경련 태도에 공공기관들은 당혹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공문 수령을 거부한 공공기관의 한 직원은 “지난 6월 기관장 명의로 탈퇴하겠다는 공문을 보낸 뒤 아무런 소식이 없어 처리가 된 줄 알았다. 그런데 두달 뒤 전경련에서 전화가 와 탈퇴 거부서를 보낸다고 하기에 못받겠다고 했다”며 “통화 당시 전경련 쪽 인사가 각 공공기관 기관장들한테 회원사 탈퇴 문제에 대해 따로 이야기를 하겠다는 취지의 말도 했다”고 전했다. 전경련한테서 ‘탈퇴 불가 통보’를 받은 공공기관 가운데 한전·서부발전·석유관리원 등은 8월말~9월초 ‘회원사 자격을 유지할 의사가 없음을 재차 확인한다’는 공문을 보낸 상태다. 조배숙 의원은 “전경련이 공공기관의 회원사 탈퇴 요구를 받아주지 않는 건 ‘조폭식’ 갑질”이라고 비판했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이번 공문 발송에 대해, 전경련의 ‘위기 징후’라고 분석한다. 전경련이 여전히 경제 바깥의 정치 권력에 기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제 역할을 못하고 있음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김 소장은 “전경련이 잘 나가는 단체라면 회원사들이 왜 탈퇴한다고 하겠나. 그럼에도 정부나 외부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공공기관에 어처구니없는 공문을 보낸 건, 회원사 요구를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경제 부문 외적으로 힘을 갖고 있음을 내비친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상반기 전경련은 극우 성향의 보수단체인 대한민국어버이연합(어버이연합)에 불법적으로 수억원대 뒷돈을 댔다는 의혹에 휩싸였으나 아직 정확한 사실 관계가 규명되지 않았다. 최근에는 권력형 비리 의혹이 불거진 미르재단·케이(K)스포츠재단 설립 과정에서 모금 창구 역할을 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전경련은 탈퇴 거부 공문에 대해 “길게는 1960년대부터 여러가지 활동을 함께 해 온 회원사들에 탈퇴 결정을 한번만 더 고민해달라는 취지로 보낸 것”이라며 해명했다.

지난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전경련이 한국석유관리원에 보낸 회원가입 안내 공문. 자료: 국민의당 조배숙 의원실

■ 추락하던 전경련에 날개 달아준 MB

공공기관들의 전경련 가입은 개발독재 시대 ‘정경유착’이라는 구습이 여전히 살아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옛 언론보도를 종합해 보면, 1961년 5·16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부는 부정축재 혐의로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를 비롯해 재벌 기업인 11명을 잡아들였다. 당시 일본에 머물고 있던 이병철은 같은 해 6월 재산을 사회에 헌납한다는 기자회견을 한 뒤 한국으로 돌아와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부의장을 만났다. 그는 이 자리에서 ‘처벌 대신 경제 건설의 일익을 담당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렇게 풀려난 기업인들은 군부의 요구에 따라 1961년 7월 경제재건촉진회를 만들었고, 한 달 뒤 한국경제인협회로 이름을 바꿨으며 1968년 다시 전경련으로 문패를 바꿔 달았다. 박정희 정권이 주도하는 산업화 정책에 보조를 맞추면서, 전경련은 법정 경제단체 대한상공회의소를 제치고 재계의 맏형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 주범으로 재벌들이 지목되고,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 전경련의 위상은 크게 추락했다. 이러한 전경련에 다시 날개를 달아준 건 이명박 정부다. 2008년 이명박 정부는 이윤호 전경련 상근부회장을 산업 정책을 총괄하는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으로 발탁하는 등 전경련에 힘을 실어줬다. 석유 제품 품질 및 유통을 관리하는 석유관리원도 그해 11월 전경련에 가입했다. 당시 전경련은 이 기관에 조석래 회장 명의로 회원 가입요청 공문을 보냈다.

“최근 전경련에 신규로 합류하는 기업과 단체들이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는 경제살리기를 최우선 과제로 삼은 새 정부 출범과 맞물려 전경련의 역할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는 것 등에 기인한다고 생각합니다.”

석유관리원은 전경련 가입 2년 만인 2010년 “비용 대비 업무활용 빈도가 낮다”며 회비 납부를 중단했으나 아직까지 회원사에서 이름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지난 4월22일 경제민주화시민모임·안전사회시민연대 등 16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전경련 해체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시민연대’ 회원들이 서울 여의도 전국경제인연합회의 건물 앞에서 ‘관제 데모 지원한 전경련 해체’를 촉구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25일 <한겨레> 취재 결과, 전경련에 가입한 공공기관 가운데 가장 많은 회비를 내는 국책은행 세 곳은 여전히 전경련에 발을 담그고 있다. 아이비케이(IBK)기업은행(옛 중소기업은행)·한국수출입은행·한국산업은행은 지난해에만 각각 2365만원·2100만원·1156만원을 전경련에 회비 등의 명목으로 납부했다. 산업은행은 “월회비 납부를 중단한 상태이나 탈퇴한 건 아니다”라고 전했다. 수출입은행은 회비를 인하해줄 것을 전경련에 요청했다. 기업은행은 전경련 활동과 관련해 달라진 사항은 없다고 밝혔다.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 모두 8919만원을 낸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올해 연회비로 책정된 914만원을 납부하지 않기로 했다. 인천국제공항공사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윤후덕 의원(더불어민주당)에 제출한 문서를 보면, 이 기관은 이용·교류 실적이 낮은 전경련 탈회를 결정했으나 별도의 탈회서를 보내진 않았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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