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김재수 해임건의안, '직권상정'·'날치기'일까?

남승모 기자 입력 2016. 9. 25. 10:05 수정 2016. 9. 25.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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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에 대한 국회 해임건의안이 진통 끝에 통과됐습니다. 기자 입장에서는 국회 선진화법이 통과된 후 좀처럼 경험하기 힘들었던 국회 ‘야간 뻗치기’를 다시 하게 된 하루이기도 했습니다. 필리버스터, 합법적 의사진행방해를 시도하려던 새누리당은 신청서 접수 전에 정세균 국회의장이 본회의 개회를 선언하면서 기회를 놓쳤습니다. 고육책으로 이른바 ‘필리밥스터’, ‘국무위원 필리버스터’라는 신종(?) 기법까지 동원했지만 결국 원내 다수인 야당들의 본회의 처리를 막지 못했습니다.

여권에서는 이번 해임건의안 처리를 놓고 ‘직권상정’ 혹은 ‘날치기’라는 말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다수 의석의 횡포'를 막지 못했다며 사퇴를 선언했고 새누리당 의원들은 국정감사를 포함한 의사 일정을 전면 거부하기로 했습니다. '횡포'인지까지는 몰라도 야당들이 다수의 힘을 이용해 해임건의안을 밀어 붙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직권상정’이나 ‘날치기’라는 용어가 적합한지는 좀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 직권상정 v.s. 상정

국회에서 여야가 충돌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어 가운데 하나가 바로 직권상정입니다. 직권상정은 통상 “입법부 수장인 국회의장이 직권으로 안건을 본회의에 상정해 처리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지만 사실 법적 용어는 아닙니다. 국회법 85조(심사기간)에서 규정하고 있는 심사기간 지정을 그렇게 해석한 것입니다.

85조는 국회의장이 ①천재지변 ②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③의장이 각 교섭단체대표의원과 합의 등 3가지 경우에 한해 특정 안건의 위원회 심사 기간을 지정할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여야의 견해차로 위원회에 발이 묶인 쟁점 안건을 직접 본회의 표결에 부칠 수 있게 하고 있는 겁니다.

이번에 논란이 된 해임건의안은 헌법 63조와 국회법 112조에 규정돼 있습니다. <국회는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의 발의에 의하여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국무총리 또는 국무위원의 해임을 대통령에게 건의할 수 있다>, <해임건의안이 발의될 경우 의장은 그 해임건의안이 발의된 후 처음 개의하는 본회의에 이를 보고하고, 본회의에 보고된 때로부터 24시간이후 72시간이내에 무기명투표로 표결한다>는 게 주요 내용입니다. 

법조문이라 좀 복잡하지만 간단히 말해, 해임건의안은 재적의원 1/3 이상이 발의하기만 하면 본회의에 올라 가도록 돼 있다는 겁니다. 직권상정은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위원회 심사 절차 자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법률가가 많은 여당에서 이를 모를 리 없습니다. 그런데도 굳이 '직권상정' 운운하는 것은 국회의장이 해임건의안을 밀어붙였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일종의 정치적 수사라고 봐야 합니다.  

김재수 장관 해임 결의안

● 날치기 v.s. 적법절차

그렇다면 이번 해임건의안 처리는 날치기일까요 아니면 적법절차에 따른 안건 처리일까요? 이 문제는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결론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먼저 김재수 장관이 해임건의의 대상이 되는지 여부입니다. 현재 국무위원 해임건의 사유가 헌법이나 법률에 따로 규정돼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일부 헌법학 교과서에서는 

①국무위원들이 직무를 집행함에 있어 헌법을 위반하였거나, 법률을 위반한 사실이 있는 경우, ②정책의 수립이나 집행에 있어서 중대한 과실을 범한 경우 그리고 ③기타 국무회의의 구성원으로서 대통령을 잘못 보좌하는 등의 사실이 있을 경우

해임 건의를 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법 자체로 따진다면 적법절차에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있지만 법을 해석해 취지를 따진다면 이제 갓 취임한 김 장관은 해임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다음은 본회의 차수를 변경한 것이 적법했는지 여부입니다. 이 사항은 국회법 77조에 규정돼 있습니다. 

제77조(의사일정의 변경) 의원 20인 이상의 연서에 의한 동의로 본회의의 의결이 있거나 의장이 각 교섭단체대표의원과 협의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의장은 회기 전체 의사일정의 일부를 변경하거나 당일 의사일정의 안건 추가 및 순서 변경을 할 수 있다. 이 경우 의원의 동의에는 이유서를 첨부하여야 하며, 그 동의에 대하여는 토론을 하지 아니하고 표결한다.

여당은 먼저 산회를 선포한 뒤 여야 교섭단체 대표들이 모여 차수 변경에 대한 협의를 하고, 협의가 이뤄지지 않을 때는 의장이 본회의를 개의할 수 없다며 명백한 국회법 위반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반면 야당은 ‘합의’가 아닌 ‘협의’인 만큼 차수를 변경하는 데 반드시 여당의 동의가 필요한 건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결국 ‘협의’를 어떻게 해석할 것이냐가 관건인 셈인데 사전에는 ‘협의’를 <여러 사람이 모여 서로 의논함>으로 명시하고 있습니다. 따로 모여서 의논한 적이 없다는 점을 따지면 국회법 위반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차피 서로의 입장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문건으로 입장을 전달한 만큼 최소한의 의논 절차는 거친 것 아니냐는 주장 역시 틀린 말은 아닙니다.

김재수 해임건의안

● 대의 정치와 민의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대의민주주의입니다. 개별 유권자가 직접 정치에 참여하는 대신 대표자를 뽑아 그 사람에게 맡기는 제도입니다. 그 대표적인 기관이 바로 국회입니다. 흔히 국회를 ‘민의의 전당’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실 129석의 새누리당이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을 막을 방법은 없습니다. 설사 운 좋게 절차적 하자를 찾아내 표결을 무효화한다고 해도 본질적으로 달라질 건 없습니다. 이미 법이 정한 의결정족수 이상의 의원이 해임건의안에 찬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법적으로 절차는 다시 밟으면 그만입니다.

오히려 여당이 절차만을 문제 삼아 야당 의원들의 정당한 권한행사를 방해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대의민주주의 원칙을 훼손하는 반 민주적 행태가 될 수 있습니다. 해임건의안 처리 결과는 여당이나 대통령이 나서 옳고 그름을 따질 문제가 아닙니다. 좋든 싫든 일단 민의로 인정하는 것이 대의민주주의에 맞는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 해임건의안에 대한 공과는 앞으로 다가올 선거에서 유권자인 국민이 표로 판단하면 될 일입니다.      

남승모 기자smnam@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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