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이슈 기본소득]⑥ 모든 시민에게 매달 220만원 주는 미국 오클랜드市의 파격 실험

세종=김문관 기자 입력 2016. 9. 25. 05:5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에어비엔비(Airbnb), 드롭박스(Dropbox) 등 세계적인 벤처기업을 발굴한 미국 실리콘밸리의 창업 투자·보육업체 와이콤비네이터(Y-Combinator·YC)는 올해 8월부터 주민들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파격적인 실험에 나섰다.

샘 알트만 YC 사장./블룸버그

YC의 사장 샘 알트만(Sam Altman)은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시에서 100가구를 선정해 6개월에서 1년 동안 매달 1000~2000달러를 ‘기본소득(Universal basic income)' 이란 이름으로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월 2000달러(한화 약 220만원)는 오클랜드시에서 최저임금(시간당 12.25달러·한화 약 1만3700원)으로 살아가는 근로자가 하루 8시간씩 월 20일 일하고 받는 임금과 맞먹는 수준이다.

이 실험은 알트만이 설립한 YC의 비영리 연구조직인 YC 리서치 랩(YCR)에서 진행한다.

알트만은 지난해 10월 YCR이 출범할 때 사재 1000만 달러(약 111억원)를 기부했다.

알트만은 "로봇 등 첨단 기술이 기존 직업을 빠르게 대체하는 상황에서 기본소득은 가까운 미래에 반드시 필요하게 될 것”이라면서 “기본소득이 사람들에게 미래를 계획할 수 있는 자유를 줄 것"이라고 말했다.

YCR이 오클랜드 시민을 실험 대상으로 선택한 이유는 이 지역 주민의 다양성 때문이다.

오클랜드에는 사회 경제적 지위가 다양한 사람들이 골고루 분포돼 있다. YCR이 선정한 100가구는 소득과 자산의 규모가 전부 다르고, 직업이 없는 주민도 있다. 알트만 사장은 “기본소득이 가계의 재정 건전성과 주민의 행복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 지 알기 위해 이 실험을 기획했다"고 밝혔다.

YCR은 이번 파일럿 실험(대규모 실험 전에 하는 소규모 실험) 결과를 토대로 5년 간에 걸친 장기 프로젝트도 진행할 계획이다. 프로젝트를 마친 뒤 실험 결과는 외부에 공개하고 캘리포니아주정부 등에 제공해 미국에서 기본소득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계기를 마련할 계획이다.

◆ 미국, 1960년대부터 기본소득 논의 이어져

미국 경제학자 밀턴프리드먼./블룸버그

기본소득이란 국가가 모든 구성원에게 자산 유뮤, 근로 조건, 가족 구성, 장애 유무를 떠나 개인에게 일정액을 지급하는 소득보장제도다. 소득과 재산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일을 하거나 하지 않거나, 일을 하려는 의사가 있거나 없거나,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주는 장치다.

미국의 기본소득 도입 논의는 비록 연속성은 없었지만, 역사는 짧지 않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미국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은 지난 1962년 기본소득과 유사한 개념의 ‘음의 소득세(negative income tax)’ 도입을 주장했다.

음의 소득세란 경제학에서 고소득자에게는 세금을 징수하고 저소득자에게는 보조금을 주는 소득세 또는 그런 제도를 의미한다. 특정 수준 이하의 소득이 있는 사람은 정부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지급 받는 세금 체계다.

특정 수준까지의 소득에 대해서는 세금이 없고, 그 수준보다 높은 소득에 대해서 세율에 의해 세금이 부과 되는 한 편, 그 수준보다 낮은 소득의 사람들은 부족한 부분에 대해 정해진 비율로 보조금을 지급 받는다.

비록 ‘모든 국민에게’는 아니지만 기본소득의 개념과 비슷하다. 이후 몇 차례 경제학자들에 의해 기본소득이 논의 된 바 있지만, 미국을 포함해 국가차원에서 완벽히 실현된 사례는 아직 없다.

1968년 미국 닉슨 대통령은 빈곤 가구에 기본소득을 지급할 목적으로 ‘가족부조계획(Family assistance plan)’법안을 제안한 바 있지만, 의회에서 통과하지 못했다.

국가적 차원은 아니지만, 미국 알래스카주는 1982년부터 석유 등 천연자원 수출로 번 돈으로 기금을 적립해 운용수익을 보든 주민에게 기본소득으로 배당하고 있다. 초기 1인당 연 300달러 수준이던 배당금은 2008년 2000달러를 돌파했다.

최근 상황은 어떨까.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최근 미국에서는 진보와 보수를 불문하고 보편적 기본소득을 지급하자는 논의가 일고 있다. 보수진영이 근로의욕을 고취하는 쪽을 강조한다면 진보진영은 소득 보장성과 소득재분배 기능 강화에 중점을 두는 편이다.

진보진영은 생산활동의 인공지능화, 로봇화로 인해 일자리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기본소득 제도가 빈곤과 소득불평등을 완화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일자리 창출이 최고의 복지’라는 기존의 전제가 사라질 수 있다는 시각이다. 보수진영은 기본소득이 기존의 복잡한 복지체계를 단순효율화하고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할 것으로 평가한다. 다만, ‘기술이 일자리를 앗아갈 것’이라는 가정을 보는 관점에 따라 직업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교육제도와 유연한 노동시장이 답이라는 시각도 있다.

버니 샌더스 미국 민주당 상원의원은 “오는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7.25달러에서 15달러로 인상하겠다”고 공약했다. /블룸버그

한편, 미국 대선 과정에서도 기본소득의 개념은 ‘핫이슈’였다. 미국 민주당의 대선 주자였던 버니 샌더스(Bernie Sanders) 상원의원은 ‘최저임금 인상’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샌더스는 작년까지만 해도 힐러리 클린턴(Hillary Clinton)과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에 가려져 미국 대선의 조연에 불과한 듯 보였지만, 최저임금 인상을 비롯한 진보적인 공약으로 2030세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샌더스 열풍'의 주역이 됐다.

그의 공약은 ‘소득 재분배’에 초점이 맞춰졌다. 그는 최저임금 7.25달러가 미국인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며 장시간 근로를 부추긴다고 주장하며 이를 15달러로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국가가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일정소득을 보장해줘야 한다는 샌더스의 주장은 기본소득 도입 취지와 일맥상통한다.

◆ “투잡 뛰는 미국인, 국가의 불명예” VS “일하지 않는 삶, 회의감 극복해야”

최저임금 인상과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모두 결과적으로 노동시간이 줄어드는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한다. 샌더스는 "미국에서 시급을 받고 일하는 노동자의 40% 정도가 집값을 비롯한 생활비가 부족해 매주 40시간 이상 일한다"며 "각종 청구서를 지불하기 위해 2~3개의 직업을 가진 경우도 많은데, 국가적인 불명예”라고 말했다.

기본소득 지자자들 역시 “기본소득을 도입하면 정규직 근로자들이 야근, 주말 수당 등을 받기 위해 불필요하게 노동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고, 결과적으로 질 낮은 비정규직 일자리가 줄어드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판단한다.

가장 큰 문제는 예산이다. 미국 국민 모두에게 매년 1만달러(1103만원)를 기본소득으로 지급할 경우 2조4000만달러(2205조원)이 필요한 것으로 추산되는데, 이는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13%에 달하는 규모다. 우리 나라의 경우 저부담·저복지 체계에서 모든 국민이 매달 25만원 수준의 기본소득을 받으려면 GDP의 10% 수준인 150조원 이상의 예산이 필요한 것으로 추정된다. 세원 확보를 위해 직접세 강화, 지하경제 양성화 등이 주장되고 있지만, 높은 근로소득자 면세율(48%), 기계의 일자리 대체에 대한 사실 논쟁 등을 감안할 때 아직은 논의가 성급하다는 분석이다.

강남훈 한신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본소득을 도입하면 기초생활보장제도, 기초연금 등 기존 복지제도를 일부 대체할 수 있다”면서 “기본소득 재원을 넘어서는 금액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정부 관계자는 “향후 복지제도와 이를 뒷받침하는 조세제도를 어떻게 만들어 나갈 것인지가 기본소득 도입의 핵심과제가 될 전망”이라며 “‘일자리가 최고의 복지’라는 기존의 화두가 더이상 성립되지 않을 경우 ‘일하지 않는 삶의 의미’에 대한 회의감 등을 극복하는 것이 중요한 이슈로 부각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조원경 기획재정부 대외경제협력관은 “정보기술(IT) 혁명의 근원지인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상황은 ‘제4차 산업혁명’ 등 일자리 파괴적인 기술혁명에 대한 근원적 문제해결이 필요하다는 시각을 반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Copyrights ⓒ 조선비즈 & ChosunBiz.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