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바로 헤비메탈이구나

2016. 9. 24.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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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27년 전 만났던 ‘완전체 헬로윈’의 추억

1989년 발매된 헬로윈의 공연 실황 앨범 <라이브 인 더 유케이>(Live in the U.K.) 표지 디자인.

순전히 김학선이 올린 포스팅 때문이었다. 얼마 전까지 <한겨레21> 고정 필자이기도 했던 음악평론가다. 그가 지난 월요일(9월5일)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 속 그 앨범 표지에 나는 완벽하게 사로잡히고 말았다. 지금으로부터 꼭 27년 전인 1989년에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당시 고1이던 나는 아파트단지 상가에 있는 작은 음반가게에 꽤 자주 갔었다. 중학교 시절부터 즐겨 듣기 시작한 팝송(영미권 대중음악) 카세트테이프를 구경하거나 사기 위해서였다. 내 책상 서랍을 주로 채운 건 마이클 잭슨, 프린스, 신디 로퍼, 왬 같은 팝(음악 장르로서의 팝) 앨범들이었다. 에어서플라이 같은 소프트록도 있었다.

음반가게에 간 어느 날이었다. 여느 때처럼 새로 나온 게 뭐 있나 하고 앨범 더미를 뒤져보다 한 카세트테이프에 꽂히고 말았다. 나의 눈길을 사로잡은 건 다름 아닌 표지 그림이었다. 거대한 핼러윈 호박 얼굴로 장식된 무대에서 밴드 멤버들이 공연하는 모습이 귀여운 그림체의 만화로 그려져 있었다. 객석의 관객들 뒤통수도 모두 핼러윈 호박이었다. 밴드 이름은 헬로윈(Helloween). 핼러윈(Halloween)에다 인사말 ‘헬로’(Hello)를 결합한 이름도 마음에 들었다. 앨범 제목은 <라이브 인 더 유케이>(Live In The U.K.). 영국 공연 실황을 녹음한 라이브 앨범이었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나는 쌈짓돈을 내고 테이프를 손에 넣었다.

집에 오자마자 카세트플레이어에 테이프를 넣고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음악보다 먼저 들린 건 관객들 목소리였다. 박수를 치며 “해피 해피 핼러윈~” 하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휘파람과 함성 소리도 들렸다. 곧이어 둔탁한 기타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전기기타에 디스토션 이펙터를 걸어 찌그러뜨린 사운드는 묘한 쾌감을 불러일으켰다. 이와 대조적으로 보컬리스트의 목소리는 청명하고 높았다. 찌르는 듯한 고음은 묵직한 기타 사운드와는 또 다른 쾌감을 안겨주었다. ‘이것이 헤비메탈이구나!’ 헤비메탈의 세계로 발을 들이는 순간이었다.

고등학생 사로잡은 음반 표지

놀라운 점은 멜로디가 무척이나 좋았다는 거다. 이전까지 헤비메탈은 왠지 멜로디가 약할 거라 생각했다. 편견은 두 번째 곡 <닥터 스테인>(Dr. Stein)에서 완전히 깨져버렸다. 영국 작가 메리 셸리의 괴기소설 <프랑켄슈타인>을 소재로 한 이 곡은 들썩들썩 흥겨울 뿐만 아니라 에어서플라이 못지않게 멜로디가 감미로웠다. 곡 중간에 나오는 기타 솔로는 마치 사람이 부르는 노래 같았다. 어릴 적 텔레비전에서 영화 <프랑켄슈타인>을 보고 밤잠을 못 이루던 찜찜한 기억이 말끔히 날아갔다.

다음 곡 <퓨처 월드>(Future World)는 또 어떻고. 신나고 희망 넘치는 가락을 듣고 있노라면 내 앞에 비단길처럼 밝고 아름다운 미래만이 펼쳐질 것만 같았다. 그런 긍정의 에너지에 전염된 듯한 관객들의 떼창이 들려왔다. ‘내가 저들 사이에 껴서 떼창에 동참할 수만 있다면….’ 헬로윈 공연을 직접 보는 꿈을 그때부터 갖게 되었다. 앨범의 백미는 마지막을 장식한 <하우 매니 티어스>(How Many Tears)였다. 제목처럼 비장미가 감도는, 러닝타임이 무려 9분40초에 이르는 대곡을 들으며 눈가에 맺힌 물기를 훔쳤다.

한순간에 헬로윈 팬이 되다

이후 나는 헬로윈의 팬이 되어버렸다. 멤버들의 이름을 외우고 <키퍼 오브 더 세븐 키스>(Keeper Of The Seven Keys) 등 발매 앨범들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라이브 앨범에는 수록되지 않은 <어 테일 댓 워슨트 라이트>(A Tale That Wasn’t Right)라는 걸출한 발라드를 무한 반복해 들으며 밤을 지새웠고, <이글 플라이 프리>(Eagle Fly Free)를 들으며 독수리처럼 멋지게 비상하는 꿈을 꾸었다.

오매불망 헬로윈의 새 앨범을 기다리던 나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다. 핵심 멤버인 기타리스트 카이 한센이 투어 도중 밴드를 떠났다는 걸 뒤늦게 안 것이다. 카이 한센 없는 헬로윈이 1991년 발표한 네 번째 스튜디오 앨범 <핑크 버블스 고 에이프>(Pink Bubbles Go Ape)는 실망스러웠다. 카이 한센이 따로 결성한 밴드 감마레이의 앨범을 들어도 성에 차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헬로윈의 보컬리스트 미하엘 키스케마저 얼마 있다가 밴드를 떠났다.

나를 강렬하게 사로잡았던 완전체 헬로윈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다른 헤비메탈 밴드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고 메탈리카, 메가데스 같은 묵직하고 장엄한 스래시메탈 밴드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헬로윈은 잊혀졌다. 헬로윈과 감마레이 모두 지금까지도 활동하고 있지만, 심지어 두 밴드의 합동 내한공연이 2008년과 2013년 두 차례나 열렸지만, 난 그 자리에 가지 않았다.

2016년, 페이스북에서 본 사진 한 장은 1989년의 그 기억을 소환해냈다. 헬로윈 카세트테이프는 언제 버렸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앨범은 절판된 지 오래다. 국내 음원 사이트에도 없다. 나는 김학선에게 그 앨범 나에게 팔라는 댓글을 달았다. 김학선은 메시지를 보냈다. “중고 앨범 파는 사이트를 알려드리지요.”

그리운 마음에 5만2천원 결제

링크를 따라가보니 두 장이 있었다. 일본에서 발매된 LP 미니어처(LP 앨범을 줄인 모양으로 만든 CD 앨범) 한정판이었는데, 하나는 5만2천원, 다른 하나는 3만5천원이었다. ‘뭔 차이야?’ 하고 살펴보니 비싼 건 ‘오비’(OBI)가 붙어 있었다. 일본 앨범에 주로 있는, 앨범 홍보 문구가 적힌 띠지를 말하는 건데, 수집가들 사이에선 이게 있느냐 없느냐가 상당히 중요한 문제인 듯했다. 난 사실 있는 오비도 다 떼어서 버리는 스타일이다. 하지만 헬로윈의 이 앨범만은 왠지 오비까지 갖춘 걸로 사고 싶었다. 완전체 시절의 헬로윈을 그리워하는 마음이랄까. 결국 5만2천원을 결제했다.

앨범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하지만 엊그제 받은 배송 시작 알림 문자만으로도 내 가슴은 뛰기 시작했다. 아마 오늘 퇴근하면 집에 앨범이 도착해 있을 것이다. 그러면 난 조심조심 CD를 꺼내어 요즘은 좀처럼 사용하지 않는 CD플레이어에 넣고, 관객들의 “해피 해피 핼러윈~”부터 맨 마지막에 페이드아웃되는 관객들의 “헬로윈 헬로윈~” 함성까지 하나하나 곱씹을 것이다. 이런 기분, 참 오랜만이다. 이번 긴긴 추석 연휴는 ‘백 투 더 퓨처’의 시간이 될 것 같다.

서정민 씨네플레이 대표·전 <한겨레> 대중음악 담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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