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자와 만납시다] 출근부터 퇴근까지..듣기 위해 귀 막는 대한민국

김동환 2016. 9. 24.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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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세 달 정도 됐다. 아직도 또렷이 기억나는 건 그 풍경이 뇌리에 꽤 강하게 박혀서다.

퇴근길 인천행 1호선에 올랐던 난 앞에 앉은 사람이 내린 뒤, 얼씨구나 자리에 앉고는 맞은편 사람들을 쳐다봤다가 ‘피식’ 웃었다.

맞은편 의자에 앉은 승객 7명이 모두 이어폰을 낀 채 앉아있었다. 이어폰을 끼고 눈 감은 사람 옆의 또 다른 승객은 뭐가 재밌는지 화면을 보며 웃었다. 그 옆 승객은 입을 오물거렸는데 이어폰을 따라 들리는 노래를 부르는 듯했다.

문득 우리는 뭔가 듣기 위해 귀를 막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퇴근길에는 더욱. 듣기 위해 귀를 막는 사람. 아이러니한 표현이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여러분도 듣기 위해 귀를 막고는 이 기사를 보고 있을까?



경기도 부천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직장인 이모(29)씨는 최근 집에 가려고 지하철을 탔다가 노약자석에 앉아 말다툼 벌이는 중년 남녀를 목격했다.

두 사람은 서로 모르는 사이였다. 남성은 여성에게 반말을 퍼부었다. 네가 뭔데 나한테 참견하냐고 했다. 반말에 당황했는지 여성은 말을 더듬으면서도 “아저씨, 저 아세요?”라고 대꾸했다.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날, 전동차 에어컨 바람이 강하게 부는데 옆에 앉은 남성의 부채질이 자신에게 방해가 되자 여성이 조금 약하게 부채질하라고 말한 모양이다. 남성에게는 그 말이 태클을 거는 것으로 들린 듯하다.

피곤한 퇴근길. 다툼이 멈추지 않자 이씨는 이어폰을 귀에 꽂고는 평소 즐기던 EDM을 틀었다. 쿵쾅 울리는 음악이 귀를 막자 조금 전까지 신경을 자극했던 말다툼 소리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이씨는 “주위를 둘러보니 이미 이어폰을 낀 사람들은 두 사람 말다툼에 애초부터 신경도 쓰지 않은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부터 음악을 들었으면 신경이나 쓰지 않았을 텐데 괜히 나만 더 피곤해졌다”며 “이어폰으로 귀를 막으니 얼마나 마음이 편했는지 모른다”고 덧붙였다.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지하철에 탄 승객들 / 사진=세계일보 DB



서울 마포구에서 강남구로 출퇴근하는 유모(28)씨는 얼마 전 지하철을 탔다가 황당한 일을 겪었다. 옆 사람 이어폰에서 새어 나오는 음악소리가 커서 볼륨을 줄여달라고 했다가 도리어 “당신이 뭐냐”는 말만 들었다.

유씨는 어이가 없었다. 그는 “듣는 사람은 모르지만 이어폰으로 새는 음악은 소음 아니냐”며 “뭔가 박박 긁는 소리 같아서 신경질이 났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러면서 “귀가 나빠져서 이비인후과에나 가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경기도 화성에서 용인의 회사까지 지하철로 다니는 이모(30)씨는 이어폰 없는 출퇴근길을 상상하지 못한다. 그는 “학창시절 야자시간에도 늘 음악을 들었다”며 “음악 들으며 무슨 공부냐는 선생님의 잔소리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그런 이씨는 얼마 전 출근길 진땀을 흘렸다. 승강장에 서 있던 사람들이 전동차가 도착하자 우르르 몰리는 바람에 귀에 꽂은 이어폰이 누군가의 가방에 걸려 ‘홱’ 사라졌다.

당황한 이씨는 붐비는 사람들 틈에서 이어폰을 찾느라 땀을 뺐다. 몇 정거장이 지난 뒤 사람들이 내리고 바닥에 떨어져 있던 이어폰을 찾기는 했지만, 여기저기 밟힌 이어폰은 수명이 다한 상태였다.

이씨는 “소모품이니까 그러려니 했지만 기분은 영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어폰을 꽂은 채 길을 걷는 시민들 / 사진=세계일보 DB



엠넷닷컴에 시간대별 접속자 수를 알 수 있는지 물었다.

23일 엠넷닷컴에 따르면 지난 5월1일부터 31일까지 한 달 집계한 자료를 기준으로 ‘스트리밍·다운로드’ 분야에서 가장 접속자가 많은 시간대는 오후 6시대(오후 6시00분~6시59분)로 나타났다.

2위는 오후 7시대(7시00분~7시59분)였다. 놀랍게도 모두 퇴근시간이다.

‘출퇴근 시간’에 조건을 두고 집계한 게 아닐까 궁금해 물어봤다.

엠넷닷컴 관계자는 “0시부터 23시까지 범위를 두고 집계한 게 맞다”고 답했다. 접속자 수가 높은 1, 2위가 퇴근시간으로 나타나자 다소 놀란 눈치였다.

3위는 오전 8시대(8시00분~8시59분)며, 4위와 5위는 각각 오후 5시대(5시00분~5시59분)와 오후 8시대(8시00분~8시59분)로 나타났다. 모두 출퇴근시간 범위에 속했다.

참고로 같은 기간 출퇴근시간대 접속자가 가장 많은 장르는 가요였다. 2위는 팝이었으며, 3위와 4위는 각각 인디음악과 재즈로 나타났다. 5위는 클래식이었다.

듣기 위해 귀를 막는 대한민국의 한 단면이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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