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 첫 1시간·하루·사흘의 '動線' 짜라

도쿄/김수혜 특파원 2016. 9. 24.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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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은 이쪽, 부시장은 저쪽".. 日선 지시 없어도 플랜따라 행동] - 日 고베, 대지진 후 뼈아픈 반성.. 확 바꾼 방재 계획 살펴보니.. "天災인 지진 피해는 불가피.. 人災는 최소화 하겠다" 인식 "정부가 모두 책임질 수 없어.. 시민들이 각자 대비를" 강조도 예측할 수 있는 최악 시나리오 짜.. 상황별로 촘촘하게 대책 세워 해안마을 전봇대에는 어디로 달려가라는 표지판 지진때 넘어질 염려있는 가구엔 실비만 받고 벽에 고정시켜줘

일본이라고 늘 지진에 강했던 건 아니다. 1995년 1월 한신(阪神) 대지진이 일본의 방재(防災) 수준을 지금처럼 끌어올린 획기적인 계기였다. 그 당시는 일본도 지진에 인재(人災)가 겹쳐 화를 키웠다. 시시각각 사람이 죽는데, 중앙정부와 지자체는 우왕좌왕 헛발질을 계속했다. 가장 피해가 막심한 곳이 고베(神戶)시였다. 인근 오사카와 교토도 피해를 보았지만 전체 사망자 열 명에 일곱 명이 고베 시민이었다(6434명 중 4571명·71%).

21년간 고베시가 달라지고 일본 전체가 달라졌다. 땅 밑 단층이 움직이는 건 인력으로 막을 수 없지만 피해를 줄이는 건 인간의 몫이라는 인식을 정부와 지자체, 온 국민이 공유했다. 그런 반성이 응집된 결과물이 고베시가 지진 이듬해에 내놓은 '지역 방재 계획'이다. 인근 활성단층에서 실제로 강진이 났다고 가정하고 고베 시민 150만명이 어디로 대피할지, 지자체와 공무원은 뭘 할지 세세하게 정했다. 막연한 지침을 나열한 게 아니라 첫 한 시간, 첫 하루, 첫 사흘 동안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상해 각자의 동선(動線)을 짰다.

이들은 '아무도 안 죽는다'는 막연한 목표를 세우지 않았다. 자연재해란 피해가 있을 수밖에 없으므로,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노력한다는 '감재(減災)' 개념을 도입했다. 지진 시나리오를 짤 때도 '주오고조센(中央構造線) 단층에서 지진이 나서 40명, 야마사키(山崎) 단층에서 지진이 나서 260명이 죽었다'는 식으로 냉정하게 가정한 뒤 그다음을 고민했다.

고베시 방재 개혁의 또 다른 핵심은 시민 개개인의 '자기 판단력 강화'다. 재난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만큼, 정부만 보지 말고 시민 각자가 비상 대처 능력을 키워야 생존율이 올라간다는 것이다. 시민들에게 '자기 목숨은 자기가 구한다'는 정신을 강조하고, 그에 필요한 훈련과 정보를 제공했다.

한신 대지진은 한겨울 새벽 효고(兵庫)현에서 일어났다. 오사카·교토·고베 같은 대도시가 촘촘히 모여 있는 곳이다. 한신 대지진보다 14년 전에 '앞으로 짓는 건물은 진도 6~7 강진을 견딜 수 있어야 한다'는 법을 만들었지만, 막상 지진이 났을 때 그 기준을 만족하는 건물은 얼마 안 됐다. 일본 전체 주택 67%가 그 법을 만들기 전에 지은 오래된 건물이었다.

총리 귀에 "지진 났다"는 보고가 들어간 건 지진 발생 후 2시간이 다 돼서였다. 방위성은 "자위대를 보내려면 현행법상 광역단체가 먼저 출동 요청을 해야 한다"며 절차 타령을 했다. 컨트롤타워 기능을 해야 할 국토청 방재국에서는 공무원이 TV 속보를 보면서 화이트보드에 사망자 수를 받아 적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여론이 끓어 올랐다. 하루 뒤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총리가 현장에 내려가자 성난 주민이 "구경 오셨냐"고 했다.

◇처절하게 '복습'했다

특히 고베시는 상황이 심각했다. 시민 150만명 중 24만명이 피난민이 됐다. 도로와 철도가 엿가락처럼 휘고, 가스관이 터져 곳곳에 불이 났다. 물·전기·전화도 끊어졌다. 완파된 건물이 6만7421동, 반파된 건물이 5만5145동이었다. 건물 잔해에 깔린 사람들을 애써 구조해도 병원 약품이 부족했다. 회중전등을 든 의사가 마취제 없이 수술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아사히신문은 '위기 관기의 완전한 패배'라고 썼다. 대재앙이 지나간 뒤 일본이 맨 먼저 한 일은 뭘 잘못했는지 샅샅이 분석하는 '복습'이었다.

◇컨트롤타워를 강화했다

일본 정부는 한신 대지진 이듬해에 전국 출동이 가능한 '긴급소방원조대'(소방청)와 '광역긴급원조대'(경시청)를 만들었다. 자위대 출동 절차도 간소화했다.

각 부처가 중구난방으로 대응하지 않도록 1998년 총리관저에 '내각위기관리감'이라는 직책을 만들어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겼다. 이후 몇 차례 조직 개편을 거쳐 24시간 운영되는 '총리관저위기관리센터'를 만들었다. 이 조직을 통해 3월 구마모토 지진 당시, 발생 10분만에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까지 보고가 올라갔다.

평소 지진에 대비하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내진 진단 비용'도 지원했다. 한신 대지진 당시 60%대를 맴돌던 일본 주택 내진화율을 2013년 82%까지 끌어올렸다.

◇"전화 지시, 하지말고 기다리지도 말라"

고베시도 지진 이듬해에 '지역 방재 계획'을 전면 개정했다. 한신 대지진의 교훈을 최대한 반영했다.

고베시는 우선 '과학이 예측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짰다. 막연하게 '다음엔 잘하겠다'고 다짐한 게 아니라, 지진 전문가들의 연구를 토대로 야마사키(山崎) 단층에서 규모 8.0 지진이 난 상황, 우에마치(上町) 단층에서 규모 7.5 지진이 난 상황, 주오고조센(中央構造線) 단층에서 규모 7.7 지진이 난 상황 등을 구체적으로 가정했다.

상황별로 고베시의 각 지역이 어떤 영향을 받을지 평가하고, 공무원들이 어떻게 움직일지 현실적인 액션 플랜을 짰다. '재난이 일어나면 시장·부시장은 바로 위기관리센터로 오되 교통이 막히면 시장은 나다소방서, 부시장은 니시소방서로 가라' '진도 5 이상 지진이 나면 모든 공무원은 전화 지시를 하지도 말고, 기다리지도 말고, 가족의 안위를 확인한 뒤 바로 정해진 장소로 나오라' 등이다.

◇자기 목숨은 자기가 구한다

고베시 방재 개혁의 또 다른 핵심은 시민 개개인의 '자기 판단력 강화'다. 해안 마을 전봇대에 '쓰나미가 오면 어느 방향으로 뛰라'는 표지판을 붙이는 건 고베시 몫이지만, 그걸 보고 실제로 뛰는 건 시민 각자다.

한신 대지진 사망자 대부분은 자택에서 장롱·책장 같은 무거운 가구가 쓰러져 압사했다. 고베시는 '가구가 넘어지지 않도록 각자 평소에 점검하라'고 홍보하면서, 원하는 사람은 집으로 전문요원을 보내 최소한의 실비만 받고 가구를 벽·천장에 고정하는 것을 지원했다.

경주 시민들이 지진을 피해 공원과 운동장으로 뛰어왔다가 다음엔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막막해하던 것과는 달리, 고베 시민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지진 직후 1차 피난지(작은 공원·놀이터)에 모였다가, 쓰나미 경보가 울리면 2차 피난지(고지대)로 이동하도록 반복 훈련을 한다. 일본 전문가들은 "한신 대지진이 국민 개개인의 지진 대처 능력을 키우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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