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대한 단상④ - 영화 '비포 선셋'
이들의 사연은 여느 사랑 이야기들 보다 애틋하다. 그래서 귀 기울일 수밖에 없고, 왠지 둘의 관계가 가까워져야만 할 것 같은, 그것을 응원해야만 할 것 같은, 그것이 마땅한 도리인 듯 느끼게 만든다. 79분의 러닝타임은, 마치 오랜만에 재회한 친구와의 짧은 티타임 같은 애틋함과 아쉬움의 감정을 선사한다. 제시와 셀린느가 헤어질 것을 알기에 우리는 이들의 커피가 줄어가는 것, 걸어가는 길이 목적지와 가까워지는 걸 아쉬워할 수밖에 없다. 마치 내가 제시 혹은 셀린느가 된 마냥, 흐르는 시간에 발을 동동 구르는 절박함을 느끼는 상황. 비포 시리즈의 두 작품, 그러니까 ‘비포 선라이즈’와 ‘비포 선셋’을 볼 때면 마치 내가 셀린느가 된 듯한 기분에 휩싸인다. 시간이 멈추길. 혹은 내가 제시와 동일한 시공간에 머무는 여성이기를 바라는 마음 등, 나는 이 시리즈를 볼 때마다 셀린느와 동일시된다.
‘비포 선셋’은 다분히 현실적이다. ‘비포 선라이즈’가 제시와 셀린느 모두에게 낯선 공간에서 일어난 첫 만남이라는 생경함으로 똘똘 뭉친 작품이었다면, ‘비포 선셋’의 익숙한 정서를 밑바탕에 둔다. 배경은 셀린느가 살아가는 장소이며, 둘은 서로를 그리워해왔다. 그래서 ‘비포 선셋’에서는 제시와 셀린느 각자의 캐릭터가 두드러진다. 현실적으로 따져봐도, 서른을 넘긴 두 남녀는 어느 정도 자신의 정체성을 찾을 법한 시기이기도 하다. 게다가 제시는 결혼했고, 아들까지 둔 상태이며 어느 정도 작가로서 입지도 굳힌 상태다. 셀린느는 미혼이며 환경 단체에서 근무 중이다. 전작에서도 느낄 수 있었듯, 여전히 그녀는 페미니스트의 성향이 다분하다. 강인하며 독립적인 여성. 그 캐릭터가 굳어진 셀린느다.
그 어떤 낭만적인 대화가 이어지고 묘한 분위기가 감돌아도 이제는 현실적으로 생각해야 할 때가 된 그들. 9년 전처럼 행동한다면 다소 위험한 상황이기에, 이들의 행동에서는 불편한 기색이 묻어 나온다. 자신의 삶은 찾았지만 사랑에 있어서는 아직 답을 찾지 못한 듯한, 그래서인지 그들의 삶은 100점짜리 인생으로 보여지진 않는다.
제시는 떠나야 할 때가 임박했음에도 좀처럼 재회의 기쁨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급기야 셀린느의 생활권으로까지 들어간 그. 이때부터 왠지 모를 낭만의 분위기가 샘솟기 시작한다. 영화의 끝자락에서 말이다. 셀린느는 제시를 염두에 둔 듯한 노래를 부르고, 제시는 자리를 뜰 생각을 않는다. 이 영화의 끝은 어떻게 마무리될까? 열린 결말로 마무리되는 ‘비포 선셋’. 이 영화의 매력은, 제목처럼 해가 지기 전, 그러니까 영화가 끝나기 전 가장 뜨겁고 아름답게 마무리되는 데 있다. 영화는 끊임없이 온기를 이어나가다가, 해가 떨어지기 직전의 오묘한 미적 세계로의 초대를 통해 관객들을 황홀경에 빠트린다. 그래서 '비포 시리즈 마니아'들은, ‘비포 미드나잇’이 하루 빨리 나오길 기다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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