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대한 단상④ - 영화 '비포 선셋'

2016. 9. 23.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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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와 셀린느, 9년 만에 재회하다
9년 만에 재회한 제시와 셀린느. 9년 전, 그들은 하루 동안의 강렬하고도 짜릿한 로맨스를 시작했고 또한 희망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6개월 후, 같은 장소에서 재회하자는 낭만적인 다짐을 했지만 역시나 지켜지지 못했다. 9년 뒤, 제시는 셀린느와의 추억을 담은 소설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출판기념회를 위해 프랑스를 방문한다. 이로 인해 둘은 재회한다. 하지만 이번에도 둘에게 주어진 시간은 짧다. 이번 만남은 9년 전보다 훨씬 짧다. 제시가 비행기에 오르기 전 단 몇 시간. 이 한정된 시간 속을 메우는 제시와 셀린느의 현재의 삶, 그리고 그들만의 추억 이야기가 ‘비포 선셋’의 전개 그 자체다.

이들의 사연은 여느 사랑 이야기들 보다 애틋하다. 그래서 귀 기울일 수밖에 없고, 왠지 둘의 관계가 가까워져야만 할 것 같은, 그것을 응원해야만 할 것 같은, 그것이 마땅한 도리인 듯 느끼게 만든다. 79분의 러닝타임은, 마치 오랜만에 재회한 친구와의 짧은 티타임 같은 애틋함과 아쉬움의 감정을 선사한다. 제시와 셀린느가 헤어질 것을 알기에 우리는 이들의 커피가 줄어가는 것, 걸어가는 길이 목적지와 가까워지는 걸 아쉬워할 수밖에 없다. 마치 내가 제시 혹은 셀린느가 된 마냥, 흐르는 시간에 발을 동동 구르는 절박함을 느끼는 상황. 비포 시리즈의 두 작품, 그러니까 ‘비포 선라이즈’와 ‘비포 선셋’을 볼 때면 마치 내가 셀린느가 된 듯한 기분에 휩싸인다. 시간이 멈추길. 혹은 내가 제시와 동일한 시공간에 머무는 여성이기를 바라는 마음 등, 나는 이 시리즈를 볼 때마다 셀린느와 동일시된다.

‘비포 선셋’은 다분히 현실적이다. ‘비포 선라이즈’가 제시와 셀린느 모두에게 낯선 공간에서 일어난 첫 만남이라는 생경함으로 똘똘 뭉친 작품이었다면, ‘비포 선셋’의 익숙한 정서를 밑바탕에 둔다. 배경은 셀린느가 살아가는 장소이며, 둘은 서로를 그리워해왔다. 그래서 ‘비포 선셋’에서는 제시와 셀린느 각자의 캐릭터가 두드러진다. 현실적으로 따져봐도, 서른을 넘긴 두 남녀는 어느 정도 자신의 정체성을 찾을 법한 시기이기도 하다. 게다가 제시는 결혼했고, 아들까지 둔 상태이며 어느 정도 작가로서 입지도 굳힌 상태다. 셀린느는 미혼이며 환경 단체에서 근무 중이다. 전작에서도 느낄 수 있었듯, 여전히 그녀는 페미니스트의 성향이 다분하다. 강인하며 독립적인 여성. 그 캐릭터가 굳어진 셀린느다.

그 어떤 낭만적인 대화가 이어지고 묘한 분위기가 감돌아도 이제는 현실적으로 생각해야 할 때가 된 그들. 9년 전처럼 행동한다면 다소 위험한 상황이기에, 이들의 행동에서는 불편한 기색이 묻어 나온다. 자신의 삶은 찾았지만 사랑에 있어서는 아직 답을 찾지 못한 듯한, 그래서인지 그들의 삶은 100점짜리 인생으로 보여지진 않는다.

제시는 떠나야 할 때가 임박했음에도 좀처럼 재회의 기쁨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급기야 셀린느의 생활권으로까지 들어간 그. 이때부터 왠지 모를 낭만의 분위기가 샘솟기 시작한다. 영화의 끝자락에서 말이다. 셀린느는 제시를 염두에 둔 듯한 노래를 부르고, 제시는 자리를 뜰 생각을 않는다. 이 영화의 끝은 어떻게 마무리될까? 열린 결말로 마무리되는 ‘비포 선셋’. 이 영화의 매력은, 제목처럼 해가 지기 전, 그러니까 영화가 끝나기 전 가장 뜨겁고 아름답게 마무리되는 데 있다. 영화는 끊임없이 온기를 이어나가다가, 해가 떨어지기 직전의 오묘한 미적 세계로의 초대를 통해 관객들을 황홀경에 빠트린다. 그래서 '비포 시리즈 마니아'들은, ‘비포 미드나잇’이 하루 빨리 나오길 기다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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