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콘서트는 관객과 함께 만듭니다"

2016. 9. 21.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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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9월 20일 화요일 맑음. 이상한 에너지. #222 Stefano Battaglia 'Youniverse'(1994년) 바탈리아 재즈 피아노 연주회
[동아일보]
최근 방한한 이탈리아 재즈 피아니스트 스테파노 바탈리아. 안웅철 사진작가 제공
12일 오후 8시 32분. 지진이 일어난 그 순간에 난 서울 종로구 효자로의 작은 녹음 스튜디오에 있었다.

이탈리아 재즈 피아니스트 스테파노 바탈리아(51)의 솔로 콘서트 때문이다. 공연 시작 직전인 8시 정각. 기획자인 김충남 플러스히치 대표가 간이 객석을 향해 말했다.

“소리가 날 수 있으니 의자는 되도록이면 움직이지 않도록 부탁드립니다. 휴대전화는 무음으로 설정하시거나 저희 쪽에 맡겨두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떨어뜨릴 수 있는 물건은 바닥에 내려놔주시면 좋겠습니다. 박수는 크게 쳐주세요. 하지만 피아노의 여음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는 참아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이날 공연 실황을 녹음하기로 했기에…. 안 그래도 재즈 피아노 솔로 콘서트란 고도의 집중력을 연주자와 관객에게 요한다. 피아니스트 입장에선 다른 악기와 화성 진행, 템포, 마디 수를 맞출 필요가 없으니 완벽한 자유를 얻지만 그 대가란 혹독하다.

더욱이 바탈리아는 콘서트 전체를 완전히 자유 즉흥 연주로 꾸몄다. 관객 33명은 바탈리아와 그랜드피아노를 불과 1∼3m 거리에서 포위하듯 둘러싼 채 완벽한 침묵에 빠져들었다.

그날 밤 바탈리아의 연주는 실로 대단했다. 첫 세 곡은 좀 난해했다. 불협화음이 연쇄하는 그의 즉흥은 놀랍도록 섬세하고 아찔해서 나를 상상 속 나선계단 난간에 밀어붙였다. 바탈리아는 때로 왼쪽 다리를 들어 오른쪽 몸에 체중을 실은 채 미묘하게 변화하는 편집증적인 오른손 오스티나토를 3분 이상 계속하기도 했다. 긴 터널을 벗어나듯 넷째 곡에서 마침내 아름답고 감성적인 선율이 등장하자 맨 앞줄 여성은 손수건을 꺼내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2시간 가까이 고독한 사투를 끝낸 바탈리아는 박수의 물결 속에 마침내 객석을 향해 말문을 열었다.

“콘서트란 연주자와 악기만으론 성립되지 않습니다. 교회 건물과 교황만 있다고 교회가 이뤄지는 게 아니듯, 물론 제가 교황이란 얘기는 아니고요(웃음), 방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콘서트를 함께 만드는 것이죠. 놀라운 집중력과 에너지를 보여주신 데 감사드립니다. … 제게 이 2시간은 유일무이한 경험이었습니다. 생각 같아선 새벽까지라도 계속 연주하고 싶지만 피아노 조율이 흐트러져서요. 제 생각엔 이상한 에너지가 그(피아노)를 피로하게 만든 것 같아요. 다행히도 녹음으로 기록해뒀으니 이 시간을 먼 훗날 늙어서도 기억할 수 있겠지요.”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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