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 집주인에 막힌 미납 국세 열람
[동아일보]
최근 서울 성동구에서 전세 아파트를 구하던 김모 씨(43)는 거래 직전까지 갔다가 취소되는 낭패를 당했다. 부동산 중개인에게 “집주인이 세금 체납자인지 확인하고 싶다”고 말했다가 퇴짜를 맞았다. 김 씨는 “전에 살던 집에서 주인이 체납한 세금 때문에 전세보증금을 떼인 적이 있었다”고 밝혔지만 부동산 중개인은 “집주인이 기분 나빠하기 때문에 곤란하다. 그런 요구를 하려면 다른 데 가서 알아보라”며 손사래를 쳤다.
건물 임대인이 내지 않은 세금으로 인한 임차인 피해를 막기 위해 도입된 ‘미납 국세 열람 신청제도’가 이처럼 현장에서는 사실상 무용지물인 것으로 드러났다. 미납 국세 열람 신청제도는 주택·상가 임대인이 납부해야 할 국세를 납부하지 못해 주택·상가가 압류돼 공매처분 되는 경우 국세 징수로 보증금이 추징당하는 피해를 막기 위해 2003년에 도입됐다. 임대인의 동의를 얻고 신분증 사본과 서명을 받아 관할 세무서에서 열람할 수 있다. 그러나 ‘을’의 위치에 있는 임차인이 ‘갑’인 임대인에게 열람 동의를 요청하는 것이 쉽지 않다. 부동산 거래 때 고지할 의무가 없다 보니 임대인이 거부할 경우 속수무책이다.
이 때문에 집주인의 세금 체납 사실을 모른 채 전세 계약을 한 뒤 압류가 진행돼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피해가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서울 강동구에 전세로 신혼집을 차린 박모 씨(33)는 올해 초 법원으로부터 경매통지서를 받았다. 결국 보증금 2억 원 중 5000만 원만 돌려받은 채 집에서 쫓겨났다. 집주인의 세금 체납 때문이다. 박 씨는 “국세 우선 변제의 원칙이 적용돼 우선순위에서 밀려 집주인의 세금을 대신 내준 셈이 됐다”고 말했다. 국세청에 따르면 종합소득세와 상속세 증여세를 비롯한 5억 원 이상 고액·상습 개인체납자는 지난해까지 총 1만1163명이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이종구 의원에 따르면 올해 1∼8월 미납 국세 열람 건수는 184건에 불과하다. 국토교통부에서 발표한 같은 시기 전국 전월세 거래량은 98만3184건. 0.02%의 임차인만 집주인의 미납국세를 열람한 것이다. 강남구의 한 부동산 중개인은 “임대인이 미납 국세 열람에 동의하지 않아 잠정적인 임차인을 놓친다고 해도 전세 수요가 많기 때문에 아쉽지 않은 심정”이라며 “요리조리 따져보며 신중하게 전세 계약을 하려는 사람들이 이 제도에 대해 많이 물어보지만 결국 열람해 보지 못하고 울며 겨자 먹기로 계약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부동산 거래 때 임대인이 중개인에게 미납 국세 확인 동의를 제출하도록 의무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후 계약 단계에서 임차인이 요구하면 체납 세액을 확인할 수 있도록 강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의원은 “집주인의 체납 국세 내용만 알아도 억울한 세입자가 나오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좋은 제도를 갖추고도 전혀 활용하지 않아 너무 안타깝다”며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국세청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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