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질소가스, 막을 법 없다

박재현 2016. 9. 19. 0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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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입 땐 산소 농도 줄어 사망

극단적 선택 도구로 사용 빈발

쇼핑몰 주문하면 수일 내 배송

지난 4일 경기 안산시 단원구의 한 사무실에서 김모(26ㆍ여)씨 등 4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발견 당시 시신 주변에는 고압가스 전문판매점에서 살 수 있는 40ℓ짜리 질소가스통이 함께 있었다. 폐쇄회로(CC)TV 확인 결과 이들 중 두 명이 이날 새벽 가스통을 2층 사무실로 옮기는 과정이 포착됐다. 지난달 31일 서울 강동구 천호동의 한 모텔에서 숨진 박모(29ㆍ여)씨 역시 시신 주변에서 질소가스통이 발견됐다. 경찰은 두 사건 모두 질소를 마신 뒤 사망한 것으로 추정했다.

질소를 흡입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며 관리ㆍ감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질소와 헬륨같은 비활성기체는 독성은 없으나 산소 농도를 떨어트려 의식을 잃게 한다. 산소 농도가 6% 이하로 떨어지면 통상 40초 안에 사망에 이른다.

하지만 맹독성 물질이 아닌 탓에 판매와 구입에는 아무런 제약이 없다. 18일 서울 시내 가스 판매업체 5,6곳을 둘러 본 결과 질소가스를 구입할 때 서류 작성이나 등록 등 별도 절차는 전혀 없었다. 성동구의 한 가스판매소 사장은 “질소가스통 가격이 10만원인데 통을 사면 7ℓ에 1만원 하는 가스는 무료로 주겠다”고 제안했다. 온라인 구매는 더 쉬워 과학기자재 전문 쇼핑몰이 아니더라도 원하는 용량만 선택하면 용도에 관계 없이 수일 내에 자택까지 배송해 주는 쇼핑몰 업체가 적지 않다. 현재 질소는 보관 공간이 500㎡ 이상 필요한 대용량인 경우에만 보유 여부를 관할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신고하도록 돼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고위험 화학물질은 화학물관리법에 의해 관리하지만 질소나 헬륨은 이런 기준을 적용받지 않아 사고가 나더라도 당장 매매를 제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질소ㆍ헬륨의 위험성은 이미 해외에서도 사회문제가 됐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는 한 초등학교 과학교사가 2007년부터 5년간 헬륨가스와 흡입 매뉴얼 등을 담은 키트를 60달러(약 6만6,000원)를 받고 1,300개나 팔아 경찰에 적발된 적도 있다. 대형 포털 블로그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질소ㆍ헬륨가스를 이용해 목숨을 끊는 방법을 시연하는 동영상까지 버젓이 나돌고 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질소가스가 악용되는 사례가 늘고 있는 만큼 화학물질처럼 판매처에 구매자 정보와 용도 등을 알리는 최소한의 규제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재현 기자 remak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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