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이사슬 꼭대기에 오른 '미세플라스틱'..인간 밥상까지 위협

조형국 기자 2016. 9. 18.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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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환경·생태 오염의 ‘경고’

지난 8월 프랑스 정부는 미세플라스틱 ‘마이크로비즈(Microbeads)’가 포함된 화장품을 2018년부터 팔지 못하는 내용의 ‘생물다양성, 자연 및 경관 회복을 위한 법’을 공표했다. 화장품에 포함된 마이크로비즈가 강이나 바다 또는 지하수 등에 흘러들어가 수질오염의 원인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정부는 마이크로비즈가 포함된 화장품 외에도 플라스틱제 면봉, 1회용 식기류, 네오니코티노이드(니코틴계의 신경 자극성 살충제)를 포함한 살충제를 2020년부터 판매금지하기로 했다.

프랑스만이 아니다. 미국이 지난해 상·하원 만장일치로 마이크로비즈 규제법안을 통과시킨 데 이어 영국도 2017년 말까지 마이크로비즈가 포함된 화장품이나 세척제를 금지하겠다고 지난 3일 발표했다. 캐나다는 마이크로비즈를 ‘독성물질(Toxic substances)’ 목록에 올려 마이크로비즈 성분의 세안제 등이 유통될 수 없도록 했고 네덜란드·오스트리아·룩셈부르크·벨기에·스웨덴은 유럽연합(EU) 전체에서 마이크로비즈 제품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많은 국가들의 마이크로비즈 퇴출은 산업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코트라(KOTRA)는 프랑스의 생물다양성 회복 법 공표를 두고 “생분해성 플라스틱 제품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생분해성 플라스틱 산업이 이미 발달한 선진국 기업이 프랑스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 대프랑스 통상 환경이 까다로워질 것”이라고 평가했다. 코트라는 “한국도 프랑스처럼 관광, 녹색시장 활성화, 수출기회 창출, 고용증대 및 경제성장 등의 복합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생물다양성, 자연 및 경관 보전 및 복원산업 육성에 주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세플라스틱이 뭐길래?

마이크로비즈는 직경 5㎜ 이하의 미세플라스틱 중에서도 치약·세안제·스크럽제 등 생활용품에 들어가는 아주 작은 알갱이 형태의 플라스틱이다. 환경오염을 일으키는 것은 마이크로비즈뿐만이 아니다. 바다에 흘러든 비닐봉투, 음료수 페트병이나 버려진 부표, 어망 등도 오랜 시간 마모되면 미세플라스틱이 돼 중금속 등 유해물질을 흡수한다. 플라스틱 알갱이들은 유해물질을 붙이거나 떨어뜨리면서 수중이나 해양생물 체내를 옮겨다닌다.

그린피스가 공개한 ‘우리가 먹는 해산물 속 플라스틱’ 보고서를 보면 유해물질을 흡수한 미세플라스틱은 해양생물에 악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심할 경우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많은 연구들은 미세플라스틱이 어류의 장폐색(장이 막혀 내용물이 통과하지 못하는 질환), 섭식 변화, 성장 및 번식 장애 등의 영향을 유발한다고 밝히고 있다.

아직 미세플라스틱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은 규명되지 않았지만 해양생물이 흡수한 미세플라스틱은 먹이사슬을 타고 상위 포식자로 유입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해산물을 섭취하는 인간 또한 미세플라스틱의 악영향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뜻이다. 그린피스는 “먹이사슬의 계단을 타고 꼭대기까지 오른 미세플라스틱이 인간의 밥상도 위협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미세플라스틱, 한국도 자유롭지 않다

2012~2014년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이 실시한 ‘미세플라스틱에 의한 연안환경오염 연구’ 결과를 보면 경남 거제 일대의 미세플라스틱 오염 수준은 세계 평균보다 12배, 진해만은 3배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해양수산부 해양쓰레기대응센터가 집계한 결과를 보면 지난해 4만220개의 플라스틱 쓰레기, 1만639개의 부표 등 스티로폼 쓰레기가 발생했다. 2011년 이후 5년간 발생한 플라스틱·스티로폼 해양쓰레기는 약 33만t에 달한다.

시민들의 불안은 높은 수준이다. 지난 6월 그린피스가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84%는 생활용품에 미세플라스틱이 사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응답자의 94%가 “미세플라스틱이 수산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에 불안하다”, 71%는 “마이크로비즈 제품을 구입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정치권에서도 논의가 진행 중이다. 더불어민주당 강병원 의원은 미세플라스틱 전면 사용금지 방안을 담은 ‘미세플라스틱 금지 3법’을 발의하기로 했다. 이 3법은 미세플라스틱을 유해화학물질에 포함시키고, 화장품법과 식품의약품법을 개정해 미세플라스틱을 사용금지 원료에 포함시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부도 미세플라스틱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다. KIOST는 2020년까지 90억원을 들여 ‘해양 미세플라스틱의 환경위해성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미세플라스틱 채취·식별 기술을 확보하고 연안의 미세플라스틱 유입량, 생물에 미치는 영향 등을 확인하는 것이 목표다. 내년까지 1단계 저감대책을 마련해 2018년부터 실시하는 방안도 담겨 있다. 이르면 내후년부터 미세플라스틱으로 인한 해양오염을 막는 대책이 실시될 것으로 전망된다.

외국 기업과 경쟁하는 국내 기업도 마이크로비즈 금지 추세에 맞춰가고 있다. 아모레퍼시픽, LG생활건강 등 55개 국내외 화장품·치약 기업이 향후 미세플라스틱 사용을 중지하거나 대체성분을 사용하겠다고 했다. 외국계 화장품 브랜드 밀크앤코(Milk&Co)는 국내에서 판매되는 브랜드 최초로 유엔환경계획 한국위원회와 마이크로비즈 사용 반대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경규림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선임 커뮤니케이션 담당자는 “세계 다른 기업과 경쟁하는 국내 기업들도 미세플라스틱 이슈에 대응하기 시작했지만 자율개선 수준에 그쳐 강제성이 없다”며 “정부 차원의 미세플라스틱 규제법안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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