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시대를 반영하고 사회를 반영한다. 국립국어원은 1994년부터 언론에서 사용하는 신어를 수집해 발표했다. 가족이 모이는 추석 명절, 1995년과 2005년, 2014년의 신어로 꼽힌 단어들을 돌아보면서 세대 공감 초점을 잡아보자.

국립국어원은 1994년 이후 신어를 수집해 발표한다. 국립국어원은 1994년 10월3일부터 1995년 1월23일 각종 신문과 잡지에서 신어를 수집해 ‘95 신어’로 묶어 발표했다. 당시에는 ‘가나다 순’의 배열로 사용례를 함께 적어둔 정도였다.

당시 눈에 띄는 신어는 주로 당시 초기적인 인터넷과 온라인 통신 관련 용어다. 또한 ‘가상’과 관련된 단어가 다수 등장하는데 ‘가상공간’을 비롯 ‘가상도서관’ ‘가상박물관’ 등이 소개됐다.

가상화폐라고 볼 수 있는 ‘전자돈’ 역시 한국 언론에 처음 등장하는데 일본으로부터 비롯됐다. 경향신문은 1995년 10월13일 6면에서 “일본 대장성은 12일 통신망을 이용해 현금 지불이 가능한 전자돈의 실용화를 위한 검토 작업에 착수해 이르면 98년부터 시행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 추석을 맞은 관광객들이 14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을 찾아 한복을 입고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전자돈과 비슷하게 출판업계가 온라인으로 진출한 형태인 ‘전자 신문’, ‘전자 잡지’, ‘웹진’ 등 신조어도 함께 등장했다.

1995년은 인터넷 관련 새로운 용어도 등장했다. ‘사이버카페(=사이버넷카페)’와 ‘인터넷카페’도 새로운 풍속이었다. 동아일보는 이해 9월18일자 “현재 사이버카페 형태로는 일반 전화선을 이용한 구내 PC통신으로 서울 시내에서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지만 인터넷 카페는 이보다 훨씬 진보된 형태”라고 소개했다.

동아일보는 같은 기사에서 “미국과 유럽에 이어 국내에도 인터넷카페가 등장했다”며 “카페의 호젓한 분위기 속에서 인터넷으로 다양한 오락 정보를 얻고 비즈니스도 할 수 있는 일종의 사이버 공간”이라고 덧붙였다.

인터넷이라는 신문물은 여러 신인류를 만들어 냈다. 당시 언론은 이들은 ‘인터넷족’, ‘인터넷광’, ‘사이버펑크족’, ‘지피족’, ‘네트워커’ 등의 이름을 붙였다. 전자신문은 1995년 10월20일자 신문에서 “사이버네틱스와 펑크의 합성어인 것처럼, 지피는 집시와 히피의 신조어”라고 보도했다.

'칼라'라는 잡지는 이 해 4월치에서 “나는 이 컴퓨터와 전화선 속에서만 살아가는 사람이에요 누군가 나와 친구들을 사이버펑크라고 하더군요. 아마도 인조인간 사이보그 같은 걸 말할 때 쓰는 사이버와 기성세대에 반항하는 펑크족을 갖다 붙여 만든 말인가 봐요”라는 인터뷰를 싣고 있다.

▲ 사진=포커스뉴스

인터넷 관련 용어는 ‘사이버 스페이스’, ‘사이버 섹스’, ‘사이버폰’(“컴퓨터 통신을 통해 유포되는 포르노라는 뜻” 조선일보 1995. 6.30) 등 사회상을 담을 말을 비롯해 ‘사이트’, ‘하이퍼링크’, ‘하이퍼어드레스’, ‘홈컴퓨터(=홈피시, Home PC)’, ‘홈페이지’ 등 컴퓨터와 인터넷 관련 영어도 새롭게 언론에 등장 시켰다. 

온라인 이메일 서비스를 연결고리로 한 1997년 멜로 영화 ‘접속’의 등장은 이런 사회상이 바탕이 돼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당시는 개인 휴대통신의 초기 단계이기도 하다. ‘개인휴대통신’에 대해 한겨레(8월1일치)는 “현재 이동전화보다 값싸면서 전화 외에 데이터·영상 등 멀티미디어 무선 통신용으로도 쓸 수 있는 첨단서비스”라고 소개하고 있다. 당시 차기 개인휴대통신인 PCS 서비스 무선 접속 방식에 대한 논란이 일었고 정보통신부는 10월20일 CDMA(크도분할다중접속) 방식으로 확정했다.

CDMA는 퀄컴사가 내놓은 당시 신기술로 한국에 이어 미국 중국 일본 등 일부 국가에서 채택했다. 정통부가 한국적인 CDMA 기술을 확정한 이후 국내 단말기 시장을 삼성과 LG가 점유하는 길을 열었다. 당시만 해도 국내 단말기 시장 90%를 점유했던 모토롤라, 노키아 등 글로벌 선두 기업은 세계 시장의 20%에 불과한 CDMA 단말기 시장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소비자들은 해외 로밍에 어려움을 겪었다.

1993년 ‘신세대’가 등장한 이후 또 다른 신인류가 등장한다. 어린 자녀와 메모지에 친필로 사랑을 전하는 ‘글사랑족’(동아일보 1995. 9.28), 서울랜드 야간 개장을 맞아 데이트에 나선 젊은 층은 ‘데이트족’(한겨레 1995.7.13.)으로 불렸다.

꾸미기에 나섰던 남성들에게는 ‘댄디족’(일간스포츠 1995.8.12.), ‘우모족’(월간중앙 1995.4) 등으로 불렸다. “말만 많지만 행동하지 않는 사람들”은 ‘나토족’으로 불렸다. 주간조선 1995년 9월14일자에선 “얼마전 한 조사에서 직장인 중 80% 이상이 독립사업을 구성해봤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이들은 나토족으로 불리기도 한다”며 비아냥거리는 뜻이 담겨 있다고 전했다.

당시 인기를 끈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서 따 밤에 조깅하는 사람들을 일컫던 말인 ‘검프족’도 있었다. 당시 함께 쓰인 ‘야깅족’은 2005년에도 쓰였다는 기록은 남아있지만 검프족은 영화 인기가 사그라들며 함께 사라졌다. 글사랑족 역시 휴대전화, 문자메시지와 이메일 등을 통한 소통이 활성화되면서 자취를 감췄다.

▲ 사진=포커스뉴스

2005년부터 국립국어원은 그 해에 새로 생긴 말은 엄격하게 걸러서 등재하기 시작한다. 때문에 사회상에 따른 변화를 더욱 쉽게 확인할 수 있게 됐는데 이 해에는 ‘스쿨폴리스’라는 말이 새로 생겨 가장 빈번하게 사용됐다. 학교폭력이 사회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하면서 대응책으로 시행된 제도다.

당시에도 국립국어원은 종합일간지와 방송사에서 사용한 뉴스 기사 등을 수집해 신어를 수집하고 미디어오늘 등을 비롯한 신문을 통해 사용 빈도 등을 검증했다. 당시에도 신어 사용 빈도 측면에서는 ‘~녀’라는 조어가 순위권에 등장한다.

사용 빈도면에서 공동 2위는 ‘개똥녀’로 지하철에서 애완견 배설물을 치우지 않은 여성이 인터넷을 통해 알려지면서 비하적으로 사용됐다. 또 사용 빈도 6위에는 ‘떨녀’가 랭크됐다. 국립국어원은 “온몸을 격렬히 떨며 춤추는 동영상이 인터넷에 올려져 유명해진 여대생을 이르는 말”이라며 “온몸을 떨며 추는 춤을 잘 추는 여성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고 설명했다.

인터넷 유머사이트에서 자신의 게시물을 인기 목록에 올리기 위해 누리꾼에게 추천을 요구하며 자신 사진을 올린 여성은 ‘덮녀’로 불렸다. 술 취한 여성을 ‘골뱅이’라고 부르고 이들과 만취한 여성을 성폭행하는 남성을 ‘골뱅이족’으로 부르는 신조어도 2005년에 수집됐다.

‘생리공결제’라는 말도 등장했는데 중앙일보는 2005년 1월13일자 신문에서 “생리공결제를 시행하면 여학생이 심한 생리통으로 결석할 경우 매달 하루는 ‘공적인 결석’으로 간주해 출석 처리 된다”고 전했다. 사용 빈도 순위로는 5위를 차지했다.

빅맨은 “능력이 뛰어나서 집단 내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사람”이라는 해석이 붙었다. 사용 빈도 순위는 4위였다.

이밖에도 ‘점오배족’(연휴 때 고향 방문을 하지 않고 0.5배 수당을 더 받기 위해 일하는 아르바이트족), ‘에스컬레이터족’(좀 더 나은 학교로 편입을 거듭하는 학생), ‘줌마렐라’(경제적 능력을 갖추고 자신을 위해 시간과 돈을 적극 투자하며 사회활동을 하는 3040세대 기혼여성), ‘공시족’(각종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 ‘디지털 코쿤족’(디지털 기기와 개인 통신망을 이용해 자신만의 공간에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며 사는 사람) 등도 등장했다.

2005년 경제분야에서는 ‘강남 아줌마론’이 신조어로 집계됐다. 조선일보가 7월22일자에서 “이 총리의 강남 아줌마론. 보유세 올리면 전세금 올리고 양도세 올리면 안 팔고 기다려”라고 보도하는 데서 한 번 등장했다.

‘세금 폭탄론’이란 말도 이해 처음 생겨나 7번 사용됐다. 그중 한겨레는 8월26일 “‘세금 폭탄론’을 앞세운 일부 보수 언론의 흠집 잡기가 먹혀드는 듯해 안타깝다”고 보도했다.

교육·사회 분야에서는 취업난과 관련한 신조어들이 눈에 뜬다. 여자 사수생을 낮잡아 이르는 말로 국립국어원이 ‘사순이’를 등재했다. 하지만 조선일보 3월5일자 기사에 함께 등장한 “남자 3수생은 ‘삼돌이’”라는 말은 신어에 등재되지 않았다.

‘주차장 대학’이라는 말은 동아일보가 7월16일치 기사에서 “공짜 공부라 몇 년씩 졸업을 미루는 대학생도 많다. 청년 실업률을 줄여 주는 ‘주차장 대학’이라고 할 만하다”고 사용했다. 국립국어원은 “직장을 구할 때까지 졸업을 미루고 학교에 계속 다니는 학생이 많은 대학을 이르는 말”이라고 풀이했다. 대학 졸업을 미루는 학생들은 ‘대학 둥지족’이라는 말로도 불렸다.

사회 분야에서도 ‘경쟁특별시’(경쟁이 치열한 서울을 비유), ‘공시족’, ‘공시족병’, ‘공시촌’ 등 공무원 시험과 관련된 단어가 다수 신어로 등록됐다. 임용고시를 준비하며 학교와 학원가를 전전하는 사람은 ‘교직낭인’으로 불렸다.

‘밥터디’, ‘밥터디족’은 밥을 먹으면서 그날 공부한 내용을 점검하고 정보를 나누는 사람들을 이르는 말로 취업 준비생이나 대학가에서 주로 사용하는 말로 등장한다.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거부한 채 밀폐된 공간에서 폐쇄적으로 생활하는 사람은 ‘구석방 폐인족’이라는 명칭으로 불리게 됐으며 직업의 층위도 임금으로 명확하게 나누는 말이 등장했다. 매일경제신문은 2월23일 “공무원의 급여가 민간 기업의 평균을 웃도는 이른바 ‘관고민저’ 현상을 바로잡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하며 ‘관고민저’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2015년 3월 발표된 2014년 신어는 특정 행동 양상을 보이는 사람들 무리를 가리키는 어휘가 27% 가량을 차지했다. 새로운 쇼핑 모습을 답은 ‘모루밍족’(오프라인 매장에서 제품을 확인하고 모바일 쇼핑을 하는 사람), ‘출퇴근 쇼핑족’(출퇴근 중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 등으로 쇼핑을 하는 사람) 등이 신조어로 등장했다.

▲ 2014년 신어 '앵그리맘'과 동어의 MBC 드라마 '앵그리맘'. 딸의 학교 폭력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중학생을 변장해 직접 학교로 등교하는 '앵그리맘' 설정을 다뤘다.  사진=앵그리맘 공식 홈페이지

사회상을 반영하는 신조어로는 ‘오포 세대’(생활고 때문에 연애, 결혼, 출산, 인간관계, 주택 구입을 포기한 세대), ‘앵그리맘’(자녀의 교육 관련한 사회 문제에 분노해 적극적으로 해결에 참여하는 여성) 등이 대표적이다.

이중 ‘오포 세대’는 현재 ‘N포 세대’로 확장돼 포괄하는 범위가 늘어나 씁쓸한 사회 단면을 보여준다. 또 복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복지 비용을 위한 증세에는 반대하는 ‘눔프족’ 단어도 신조어로 등록됐다.

지속된 불경기가 미치는 영향은 다양한 신조어를 생성했다. ‘임금 절벽’(지속적으로 오르는 물가에 비해 임금은 오르지 않아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현상), ‘주거 절벽’(급격하게 오른 주거 비용 때문에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현상), ‘일자리 절벽’(구직자가 일자리를 찾기 어려운 현상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등을 비롯해 ‘재벌 절벽’, ‘창업 절벽’ 등으로 파생됐다.

이는 고재학의 저서인 ‘절벽사회’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사회적으로 주목 받는 남녀 특징을 반영한 어휘도 등장했다. ‘뇌가 섹시한 남자’를 줄여 부르는 ‘뇌섹남’을 비롯해 ‘금사빠녀’(금방 사랑에 빠지는 여자), ‘꼬돌남’(꼬시고 싶은 돌아온 싱글 남자) 등도 등장했다.

스마트론과 SNS 사용이 늘면서 등장한 신어도 다수 발견됐다. 자신이 먹은 음식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먹스타그램’, 인생에 한번 있을까 말까할 정도로 잘나온 사진을 일컫는 ‘인생짤’, 빛의 속도로 삭제하는 ‘광삭’ 등도 신조어 후보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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