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다시 광화문 단식 나선 이석태 세월호 특조위위원장
[경향신문]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 직원들이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릴레이 단식’에 들어간지 51일째가 된 15일. 추석 당일인 이날 고속도로와 국도 곳곳이 꽉 막혔지만 광화문 광장 주변 도로는 여느 때와 달리 한산했다.
광화문 광장 천막 아래에는 이석태 특조위 위원장(63)이 있었다. 이 위원장은 지난 7월27일 “정부는 특조위의 조사 활동 기간을 보장하라”고 주장하며 단식 농성을 시작했다. 이 위원장이 일주일 동안 단식을 한 뒤 특조위 상임위원, 조사관 등이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
세월호특별법에 규정된 특조위 조사활동 기간은 1년6개월이다. 정부는 2015년 1월1일을 기준으로 조사활동 기간을 계산해 지난 6월말 특조위의 진상조사 활동 기간이 종료됐다며 파견 공무원들을 원 소속기관으로 복귀시켰다. 하반기 예산도 일부만 편성하겠다고 특조위에 통보했다. 반면 특조위는 정부의 조사방해로 업무 시작이 늦어졌으니 법적으로 내년 2월3일까지 조사활동 기관이 보장돼 있다고 주장한다.
공식 정부기구인 특조위의 장관급 인사이자 환갑을 훌쩍 넘긴 이 위원장은 추석 연휴도 반납하고 다시 광화문 광장을 찾았다. 이 위원장은 전날 밤 9시부터 박종운 특종위 상임위원에 이어 단식에 들어갔다. 그는 “특조위 직원들이 추석 때는 휴식을 취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나와 박종운, 권영빈 상임위원이 추석연휴 때 하루씩 단식을 이어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이날 오전 10시, 오른손으로는 턱을 괸 채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이 위원장은 “아무런 이유 없이 불현듯 선배들이 생각났다”면서 “조영래, 황인철 등 선배 인권 변호사들의 기록을 좀 찾아보고 있었다”고 했다. 그는 “저처럼 미미한 변호사는 부끄러움을 느낀다. 선배들의 행적을 보면 보이지 않는 격려와 채찍질을 함께 받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이 위원장과 나눈 일문일답.
-추석 연휴에 다시 농성장에 나왔다.
“조사관들이 농성도 하고 일도 많아 힘들어 하고 있다. 적어도 추석 때나마 가족의 도리를 하면서 잠시라도 쉬었으면 했다. 나는 가족들과는 차례를 대신해 식사를 미리 하고 왔다”
-추석 당일인 오늘 일하는 조사관들도 제법 많다고 하던데.
“정부가 9월말을 기점으로 특조위를 강제 종료하려 하기 때문에 조사관들이 더 바빠졌다. 혹시 모를 강제종료에 대비해 업무량을 늘릴 수밖에 없다. 조사관들에게 미안하게 생각한다.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세월호 참사 이후 세 번째 추석을 맞이하는 유가족들에게도 죄송한 마음이다”
-정부의 주장대로라면 특조위의 진상조사 활동은 9월30일로 끝난다. 정부의 특조위 활동 강제 종료를 강행할 때를 대비한 대안은 마련하고 있나.
“강제 종료 됐을 때 특조위가 할 수 있는 최선이 무엇인지는 고민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강제 종료를 하더라도 조사활동을 계속해나갈 생각이다. 진상규명은 계속 되어야 한다. 어떻게 특조위가 진상규명에 기여하고 뒷받침할지 고민하고 있다”
-정부의 강제 종료 압박 속에서 특조위에게 남아 있는 역할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보나.
“위원장직을 맡은 것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다. 유가족분들과 시민사회가 기대한 만큼 특조위가 제대로 역할을 했는지에 대한 성찰은 해도 후회는 하지 않는다. 특조위는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하고, 세월호 참사와 유사한 비극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의무가 있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 세월호 참사 규모의 사건은 속시원하게 해결된 적이 없다. 조금씩, 조금씩 하나하나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해나갔다. 특조위의 역할도 마찬가지다. 단 한 번에 진상규명이 안 된다고 해서 좌절하고 실망하지 않고 계속 진상규명이 이어지도록 노력할 것이다”
-최근 3차 청문회가 있었는데 특조위가 신청한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 등 주요 증인이 나오지 않았다.
“어느 정도 예상한 바였다.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증인들을 대비해 참고인도 1, 2차 청문회보다 많이 불렀다. 그럼에도 성과는 있었다고 생각한다. 보도통제, 경찰의 유가족 감시, 해경 주파수공용통신(TRS) 녹취 파일을 통해 구조과정에서 해경의 구조지원 미비나 책임회피도 추가적으로 드러났다. 다만 여전히 침몰 원인 규명에 접근하지 못한 점은 아쉽다. 선체 인양이 계속 늦춰지고 있는 상황에서 특조위가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이 제한적이었다”
-침몰 원인 진상규명은 특조위의 손을 떠날 가능성이 높은 것인가
“특조위는 원칙적으로 강제 종료가 되더라도 조사 활동을 지속한다는 입장이다. 아직은 모두가 특조위 활동에 전념하고 있지만 새로운 특조위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수도 있다”
-새로운 특조위에 대한 논의라면?
“아직 구체적인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특조위 이후에도 일반 시민의 입장에서 어떻게 실질적으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에 기여할 수 있을지 고민할 것이다”
이 위원장이 이날 입은 검은색 양복 바지와 회색 셔츠는 다소 헐렁해보였다. 68㎏를 유지하던 체중은 지난 7월 일주일 단식 후 60㎏까지 빠졌다. 지금은 조금 회복해 63~64㎏를 오르내린다고 했다. 이 위원장은 “단식을 하면서 많은 시민분들이 격려를 해주셨다. 동조 단식에 참여하신 분만 1000명이 넘는다고 들었다”면서 “한동안 못 보고 지내던 지인들도 농성장에 찾아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갔다”고 말했다.
-정부만 특조위 강제 종료를 압박하는 게 아니라 몇몇 언론들도 사설, 칼럼 등을 통해 거들고 나선 것 같다.
“합리적인 비판이라면 언제든지 받아들인다. 가치와 관점은 서로 다를 수 있다. 특조위가 단식 농성에 들어갔을 때 모 신문사 기자가 기자칼럼으로 특조위와 나를 비판했다. 하지만 칼럼에는 내가 했던 발언이 왜곡되지 않고 들어갔다. 다음날 기자가 찾아와서 사과했는데, 내 말을 그대로 실어줘서 괜찮다고 했다”
-단식 농성에 대한 비판은 부담스럽지 않나.
“나는 스스로 절반은 변호사, 절반은 시민운동가라고 생각한다. 농성에 참여하는 데에 심리적 부담을 느끼지는 않는다. 다만 일정한 ‘정도’는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정한 ‘정도’라고 하면?
“특조위 위원장이 되면서 세운 일관된 기준이 있다. 첫째, 원칙과 정도를 벗어나지 않는다. 모든 행동도 원칙과 정도를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한다. 단식 농성도 마찬가지다. 둘째, 세월호 유가족의 눈높이와 마음을 항상 헤아리려 노력한다”
-보름달을 보면 어떤 소원을 빌고 싶나.
“오늘(15일) 오후 4시16분에 유가족분들과 시민사회에서 광화문 광장에 모여 차례를 지낸다고 한다. 세월호 유가족분들이 지금도 여러가지 어려움을 겪고 계시지만 잠시라도 마음의 휴식을 취할 환경이 만들어졌으면 한다. 또, 열심히 일하는 특조위 조사관들이 임무를 마칠 때까지 모두 건강하게 지냈으면 하는 작은 소원이 있다”
<김원진 기자 one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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