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뷰] '고산자, 대동여지도' 김정호 삶을 고찰하고 존애하다

한예지 기자 2016. 9. 6.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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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 리뷰

[티브이데일리 한예지 기자] 고산자 김정호, 평생 옛 산을 그리워하며 그곳에 기대어 살고 싶은 꿈이 있어 스스로를 고산자라 부른 지도꾼 김정호의 삶. 역사에도 제대로 기록돼 있지 않은 그의 일대기는 박범신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강우석 감독의 철저한 사명감을 바탕으로 스크린을 통해 새롭게 그려졌다.

9월 7일 개봉을 앞둔 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감독 강우석·제작 시네마서비스)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도를 남겼지만, 역사엔 제대로 기록돼 있지 않은 지도꾼 김정호의 삶에 대한 고찰이자, 그의 업적에 대한 존애(尊愛)를 담아냈다.

영화는 '대동여지도'를 제목으로 내건 만큼 조선 팔도의 절경을 담는데 집중하는 건 틀림없지만 이 같은 동선을 시퀀스 곳곳에 삽입하기보다 곧바로 오프닝에서 무려 7~8분 여 간에 걸쳐 밀도 있게 그려내는 점이 다소 파격적이다. 이는 강우석 감독의 일종의 자부심이자, 그만큼 심혈을 기울인 신이다. 그 어느 때보다 영상미의 완성도에 완벽을 기한만큼 그동안 오락성과 상업성에 묻혀 다소 저평가됐던 강우석 감독의 연륜과 깊이를 제대로 토해낸다.

실제 구름이 걷힌 백두산 천지의 절경은 먹먹함을 주고, 산새와 어우러져 산 하나가 꽃으로 덮인 봄을 상징하는 황매산, 고행의 여정이 느껴지는 얼어붙은 북한강, 바다 위로 웅장한 일몰이 지는 여수 여자만, 대한민국 최남단 섬 마라도까지. 감독의 말마따나 "아름답고 좋다, 예쁘다, 그 이상의 숭고한 느낌"을 전해주는 우리나라 사시사철 팔도의 절경은 경건하고 엄숙하게 느껴질 정도다. 물론 여기에 더해진 장엄하고 웅장한 음악은 작정한 듯 힘을 과하게 준 느낌이라 다소 아쉽긴 하지만, 이처럼 팔도를 누비며 지도를 완성하기 위한 김정호의 모습을 진취적으로 담아냈다는 점과 카메라의 과도한 움직임을 자제하고 김정호의 시각에서 보는 듯한 경관을 프레임 안에 담아내고자 한 노력은 감명 깊은 대목이다.

이처럼 웅장한 오프닝 이후론 김정호의 삶을 그려내는 데 주력한다. 다소 의아할 순 있으나 애초 감독이 담고자 했던 메시지는 조선 팔도 절경 보다도, 만인에 지도를 나누고자 했던 선각자로서의 김정호 삶이 전하는 귀감이었다.

실제 김정호를 떠올리면 '대동여지도' 외엔 남겨진 역사적 고증이 부족하다. 불과 130여 년 전의 인물임에도 그에 대한 구체적 사료는 남아 있지 않다. 있다 한들 1930년대 일제가 만든 식민사학을 통해 조선의 지도 제작 능력을 폄하한 왜곡된 정보가 추가되며 일반화돼 전해진 인물로서 의미가 크다. 언제 태어나 언제 사망했는지 알지 못하기에 학자들이 추정해 판단할 뿐이다. 그렇기에 애초 영화에 대해 역사적 고증을 논하는 자체가 성립이 되질 않는다.

강우석 감독은 김정호를 진심 어린 집념과 꿈을 가진 미치광이 지도꾼으로 그려냈다. 허황된 허구만을 추구하진 않았다.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인물인 데다 하층 계급 출신 인물들의 이야기가 기록된 '이향견문록'에 그에 대한 유일한 기록이 담긴만큼 높은 신분이 아닐 거란 추측이었다. 길지 않은 생애, 어려운 환경 속에서 지리학에 대한 집념을 가진 그가 '대동여지도'를 실천했다는 점에서 감독은 그의 통찰력과 훌륭한 업적에 감탄과 존경을 내비쳤다. 물론 역사적으론 발로 직접 뛰어 제작한 것이 아닌 기존 지도를 집대성한 방식을 택한 것이라고 추정될 순 있으나, 김정호가 수많은 지도를 꼼꼼하게 비교하고 검토해 새로운 지리지와 지도를 제작한 것은 틀림없을 터. 특히 김정호의 마지막 지도에 '대동'이란 우리나라를 중심으로 하는 사상이 반영된 것을 보아 그의 철학을 감히 엿봤다. 또 당시 국가와 관청에서 만든 지도를 일반 백성들이 사용할 수 없었는데 김정호는 목판을 제작하고 절첩식으로 이용해 편리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백성들에 공유했음을 추정했다.

이처럼 부족한 역사적 자료 대신 당시 시대상과 대동여지도에 담긴 정신을 기반으로 빚어낸 김정호다. 스크린으로 구현된 김정호는 잘못된 지도에 의지하다 길을 헤매고 급기야 목숨을 잃는 일도 빈번했던 시대 더는 잘못된 지도로 목숨을 잃는 일을 없애고자 했던 의인이자, 완벽하고 정확한 지도를 만들고자 뜻을 굽히지 않던 장인이다. 지도가 곧 권력이자 목숨이었던 조선 후기 흥선대원군과 안동 김씨 문중의 치열한 정치적 싸움에 휘말려서도 나라가 독점한 지도를 백성들과 나누고자 하는 일념 하나로 대동여지도의 완성과 목판 제작에 혼신을 다했던 인물로서 살아 숨 쉬는 그다.

만인을 위한 정확한 지도를 만들고자 했던 김정호의 뜻을 좇되, 소설과 영화적 상상력을 가미해 보다 드라마틱하게 완성된 김정호의 삶, 그 인내와 집념은 무릇 경건하기 이를 데 없지만 한편으론 가엾고 척박할 따름이다. 극 중 김정호는 지도에 미쳐 전국 방방곡곡을 도느라 훌쩍 자란 딸의 얼굴조차 알아보지 못하지만, 제 소명감을 겉으론 핀잔하면서도 마음 깊이 지지하는 딸에 대한 고마움과 애정을 품은 아비다. 권력의 손아귀에 놓여 딸과 지도를 두고 피 끓는 슬픔과 고통을 토해내는 그의 심경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절절함을 표한다. 그럼에도 나라의 근본을 백성이라 여기고 이에 대한 대의를 지킬 수밖에 없던 인물로서 종국에 이르기까지 시대와 권력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갔던 그는 현시점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물론 만듦새에 아쉬운 면도 분명 있다. 경건한 무게감을 전반에 깔아 둔 상황에서 낡고 구식의 유머와 예견된 신파 코드는 도리어 몰입감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한 인물의 일대기를 아울러 담다 보니 다소 밋밋한 동선, 그리고 권력의 대립에 놓인 지점에선 예측 가능한 결과를 야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프닝 신과 연결되는 마지막 독도(우산도)를 향하는 뱃머리의 전경은 '고산자, 대동여지도'를 완성하는 방점을 찍는다. 또한 역사가 기록하지 못한 위인 김정호에 대한 숭고한 애정과 거룩한 사명감은 가히 압도적이다.

[티브이데일리 한예지 기자 news@tvdaily.co.kr/사진=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 포스터,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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