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 스텔스族' 활개치는 한강변 자전거길

연규욱 2016. 9. 4.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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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중 한명 라이트·헬멧착용 없이 쌩쌩사고 4년만에 2배·한해 사망자 100명음주 라이딩도..법규미비로 안전 구멍

서울시 자전거길 200㎞ 연장한다지만 안전의식은 바닥

평소 자전거 주행을 즐기는 유 모씨(31)는 지난 7월 중랑천 자전거도로를 주행하다 하마터면 큰 사고를 당할 뻔했다.

전방의 자전거 운행자가 후미등을 켜지 않고 멈춰 서 있어서 급하게 멈추다 몸이 앞으로 쏠려 넘어진 것이다. 다행히 가벼운 타박상을 입는 데 그쳤지만 평소처럼 빠른 속도로 달렸다면 훨씬 더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유씨는 "밤에 전조등과 후미등은 물론 반사판도 없이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부지기수"라며 "그들이 급브레이크를 잡으면 잘 보이지 않아 대응하기 어려워 위험한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다음달부터 총사업비 237억원을 투입해 시 곳곳을 잇는 역대 최장 자전거도로 16개 구간(201㎞)을 만들 계획을 밝힌 가운데 갈수록 늘어가는 이용자, 인프라스트럭처와 달리 안전의식은 여전히 '바닥' 수준이다. 서울시 한강사업본부에 따르면 2009년 700만명 수준이던 한강 자전거도로 이용자는 2014년 1500만명을 넘어섰다.

매일경제는 지난달 23일 잠실한강공원, 잠원한강공원, 중랑천 자전거도로, 뚝섬한강공원 등 서울 주요 한강변 자전거도로 4곳에서 이용객 총 277명에 대해 안전장비 착용과 운행 행태를 현장 취재했다. 이 결과 이용객 총 277명 중 헬멧 미착용과 라이트 미점등이 각각 74명(26%), 55명(20%)에 달했다.

온전히 안전장비를 갖춘 이용자는 148명(54%)에 불과했다.

이러다 보니 자전거 주행 사고는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2011년 2883건이던 자전거 사고는 2015년 6920건으로 두 배 이상 껑충 뛰었고 사망자도 연간 100여 명에 이를 정도다. 자전거길의 '폭탄'은 야간에 전조등·후미등을 켜지 않는 이들이다.

기자 역시 안전장비를 갖추고 직접 야간 자전거길을 달려보니 몇 분 지나지 않아 인기척도 없이 갑자기 옆을 '쌩' 하고 추월해 지나치는 자전거들에 깜짝깜짝 놀랐다. 전조등·후미등을 켜지 않은 자전거는 야간에 라이트를 켜지 않은 자동차나 마찬가지다. 자전거족 사이에서는 '스텔스족'이라 부른다. 밤중에 운행하다 발견하기 어려워 위험한 점을 스텔스 전투기에 빗댄 말이다. 뚝섬한강공원 인근에서 만난 '스텔스족' 강 모씨(25)는 "안전을 위해 라이트를 켜야 하는 건 알지만 상대가 켜면 크게 문제없을 것 같아서 부착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강씨는 헬멧 등 안전장비도 갖추지 않은 상태였다. 강씨뿐 아니라 한강에서 확인한 라이트 미점등 운전자는 한 명도 빠짐없이 헬멧을 착용하지 않은 상태였다. 본인과 타인의 안전까지 모두 '볼모'로 삼고 있는 셈이다.

음주 상태로 자전거를 타는 이용객도 문제로 꼽힌다. 인터넷 커뮤니티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하 자출사)'에서 지난달 26일 자전거 음주운전에 대한 찬반 투표가 있었다. 해당 글과 댓글에는 자전거 음주운전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주를 이뤘지만 실제 투표 결과는 달랐다. '음주는 절대 안 된다'는 의견이 184표(64.7%), '가벼운 맥주 한잔은 괜찮다'는 의견이 100표(35.3%)였다. 10명 중 4명 정도가 '한잔쯤은 괜찮겠지'라며 안이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 한강 자전거도로변 편의점에서는 자전거 의류·장구를 착용한 채 맥주를 마시는 이용객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자출사의 다른 게시판에는 상대 자전거 음주운전자 때문에 충돌한 사례도 올라와 있었다. 지난달 29일 밤 9시 30분께 맞은편 자전거가 중앙선을 넘어와 부딪친 사고로, 피해자는 가벼운 뇌진탕과 타박상을 입었다고 밝혔다. 도로교통법 제50조 8항은 자전거 음주운전을 금지하고, 9항은 등화장치·발광장치 사용을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두 항 모두 처벌규정이 없는 훈시규정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다 보니 어디에도 자전거 음주운전자나 안전장비 미착용자를 계도하기 위한 게시물, 안내판조차 없다.

해외에서는 자전거 음주운전 시 일본은 5년 이하 징역이나 100만엔(약 1085만원)의 벌금형을 받는다. 프랑스는 최대 750유로(약 93만원)의 벌금을, 독일은 자동차 면허를 정지하거나 취소하도록 정했다.

[연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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