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 보다 중요한 건"..차승원, 그가 찾은 삶의 방식(인터뷰)

장아름 기자 2016. 9. 3.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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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스타) 장아름 기자 = 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감독 강우석 / 이하 고산자)는 내년, 데뷔 30주년을 앞둔 차승원이 "연기 인생의 터닝포인트"라고 이야기한 작품이다. 차승원은 어느새 인생의 절반 이상을 배우로 살아왔다. 한때 한국 코미디 영화가 성행하던 당시 영화 '신라의 달밤'과 '라이터를 켜라', '광복절 특사', '선생 김봉두', '귀신이 산다' 등의 코미디 장르로 연이어 성공을 맛봤던 시절도 있었다. 드라마 '시티홀', '최고의 사랑'으로 로코킹의 지위를 누리던 적도 있었고, 연기 변신을 시도했던 영화 '국경의 남쪽'과 '하이힐'로 흥행 실패의 쓴 맛도 알게 됐다. tvN '삼시세끼'는 예능 프로그램이지만 전 국민에게 사랑받는 차줌마 캐릭터를 안겼다. 그렇게 필모그래피가 빼곡하게 채워질 동안, 차승원에겐 터닝 포인트가 될 만한 순간들은 분명 많았다.

노련한 베테랑 연기자에게도 실존인물의 삶은 무거운 부담감으로 다가왔다. 차승원에게 주어진 지도꾼 김정호의 삶은 기록이 많지 않았고, 연기에 앞서 유추하는 과정이 선행될 수밖에 없었다. 대동여지도 목판본으로 지도를 보급하려 했던 김정호의 삶에 접근하며 자신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지금 차승원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30년 가까이 되는 배우의 인생을 거친 후 찾게 된 여유인 것 같았다. "연기 보다 어떻게 살아하는지가 중요하다"는 말은 일정 기간 누군가의 삶을 대신 살아가야 하는 배우에게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치열했던 젊은 시절을 지나 여유가 들어앉은 그가 왜 지금, 관객들에게 김정호로 '고산자'를 선보일 수 있는지 새삼 알 것 같았다.

배우 차승원이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 출연 소감을 전했다. © News1star / 고아라 기자

Q. 차승원이 꼽는 영화의 장단점은? A. 전반적으로 다 좋다는 영화가 좋은 영화이긴 한데 '고산자'는 장단점이 있다. 아무래도 내가 출연한 작품이다 보니까 단점 보다는 장점이 더 보인다. 이야기의 실타래가 엉켜 있는 것이 아니라서 영화가 쉽다. 여러 계층의 관객들이 볼 수 있는 영화라는 점도 장점이다. 추석 연휴에 다같이 보기 좋은 영화가 아닐까 싶다.

Q. 실존인물 연기는 배우에게 득 보다 실이 많다고 이야기했다. 그럼에도 김정호 역할에 도전한 이유는. A. 영화 앞부분에 헐렁한 이야기가 없었다면 아마 못했을 것 같다. 내가 인간 김정호를 봤을 때, 틈이 많은 사람이더라. 그래서 이 작품을 선택하게 됐다. 대동여지도라는 업적을 남긴 건 분명하지만, 그 보다 가족관계나 인물 구성이 영화 후반부 몰아치는 감정을 완화해줄 수 있어서 좋았다. 그게 아마 이 영화의 차별점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Q. 김정호를 연기하고 나서는 어땠나. A. 연기를 끝내고 나니 역사적 인물은 다신 안 하고 싶다. (웃음) 내가 그 시대에 살아봤던 것도 아니고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 가늠조차 안 되더라. 그 위인들의 생각을 1만 분의 1도 쫓아갈 수 있을까 싶었다. '고선자'로 차별화를 꾀하고 싶었던 점이 있다면, 지도꾼 김정호 보다 사람 김정호를 구현하고 싶었다는 점일 것이다.

배우 차승원이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실존인물 김정호를 연기하며 힘들었던 순간을 돌이켰다. © News1star / 고아라 기자© News1star / 고아라 기자

Q. 실제로 김정호에 대한 자료가 많이 없었기 때문에 캐릭터 설정이 어려웠을 것 같다. A. 이번에 사극이 네 번째였는데 이전에 드라마 '화정'에서 광해를 연기할 땐 자료가 많았다. 그 나름대로 단점이 있더라. 기존에 많은 배우들이 연기를 했었고 자료도 많기 때문에 그 틀에서 어떻게 벗어나야 하는지가 관건이었다. 반면 김정호에 대한 자료는 사실상 없는 데다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 지도와 업적 등을 통해 유추해야 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그래서 어떤 점에서는 접근하기가 외려 편했다. 이런 지도를 만드는 사람이 일상 생활이 온전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에 집중했다.

Q. 김정호를 능청스럽고 천연덕스러운 인물로 표현했는데. A. 어떤 특정한 것에 취해 있거나 미쳐 있는 사람이 꼭 반드시 그러라는 법은 없지만 일상 생활은 엄청 헐렁할 것이라 생각했다. 지도를 만들 때는 뒤도 안 돌아보고 집중하지만 딸의 얼굴은 못 알아볼 정도로 헐렁하지 않나. 그런 재미가 있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Q. 강우석 감독은 차승원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풍자와 해학이 가능한 배우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연기에서 자유로운 애드리브가 없었다는 점도 의외였다. A. 대사를 만드는 애드리브는 없었던 것 같다. 애드리브라고 한다면 추임새나 웃음, 행동 등이었는데 이런 것들은 자연스럽게 나왔던 것 같다. 특별히 내가 어떤 것을 더 첨가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진 않았다. 감독님도 별로 안 좋아하시기도 하셨다.

배우 차승원이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백두산에 올랐던 소감을 전했다. © News1star / 고아라 기자

Q. 김정호의 여정을 그리는 화면이 아름답기도 했지만 촬영이 힘들 것 같다 짐작됐다. A. 몸이 힘들었던 것은 없었다. 화면에 나온 것 보다 덜 고생스러웠다. 아마 분장이나 의상의 도움을 많이 받아서 그런지 힘드게 보였던 것 같다. (웃음) 다만 백두산 촬영은 힘들었다. 백두산 첫날 촬영을 제외하고는 여건이 좋지 않았다. 첫날 다 찍어서 다향이었다. 가볍게 오라 해서 갔는데 심적 부담감이 큰 장면을 찍었다. (웃음)

Q. 촬영지 중 가장 아름다운 곳은 어디었나. A. 백두산이다. 주변에도 꼭 가보라고 권유했다. 왜 민족의 영산이라고 하는지 가보면 알게 된다. 왜 애국가에 '동해물과 백두산이'라고 하는지 실감난다. 금강산도 담고 싶었는데 북한이 미사일을 쏘는 바람에 아쉬웠다. 선죽교도 영화에 꼭 담고 싶었다.

Q. 대원군과 대치하는 신도 인상적이었다. A. 김정호가 흥선대원군을 만났다는 역사적 기록은 없지만 이런 지도를 만든 사람이라면 당시 최고 권력자였던 흥선대원군과는 한 번 쯤 만나보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물론 역사적 근거도 없지만 흥선대원군의 오른팔 신원이라는 인물이 김정호를 많이 도왔다고도 하기 때문에 만남을 주선하지 않았을까 싶다. 백두산에 일곱 번 올라갔다는 건 허구일 수 있지만 백두산을 가지 않았다는 기록도 없다. 이런 지도를 만들었는데 팔도를 다 다니진 않았겠지만 중요한 지점들은 한 번 쯤이라도 다 직접 가보지 않았을까 싶다.

배우 차승원이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자신이 지향하는 삶에 대해 이야기했다. © News1star / 고아라 기자

Q. 김정호가 지도꾼이 되는 동기는 분명하다. 아버지의 죽음이 계기가 돼서 지도꾼이 되지만, 애민정신이 대동여지도까지 만들게 했다는 점은 설명이 다소 부족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A. 영화의 시점 이전부터 김정호에게 특정 계기가 출발점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도를 대량 생산을 위한 목판본으로 만들었다는 건 보급을 위해서다. 중인인 김정호가 사리사욕을 추구하는 사람이었다면 지도를 갖고 양반의 지위를 얻으려 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그러지 않았다. 잘 모르는 백성들한테 목판본으로 찍어 만든 지도를 보급하려 했던 것 자체만으로도 애민정신이 있는 사람이지 않나 싶다.

Q. '고산자'에서 김정호를 이끄는 것이 애민정신이라면, 배우 차승원을 이끄는 것은 무엇일까. A. 흥행을 떠나서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될 수 있을 만한 작품이 될 것 같다. 이전에는 계획적으로 연기하고 살아왔다면 이젠 나를 되돌아볼 수 있을 만한 때가 아닌가 싶다. 이런 한 인물을 1년 동안 맡아서 보듬고 다듬어 본 시간들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좋았던 것 같다. 뭔가 내려놓을 수 있었고, 현장에서도 연기를 내려놓고 하게 된 계기가 됐다. 물론 연기에 대한 고민은 늘 한다. 영화 한 편으로 봤을 때 치열한 고민도 필요하지만, 이제껏 해왔고 앞으로 하게 될 연기를 생각해 봤을 때 객관적인 시각으로 나를 바라보는 시간도 필요한 것 같다. 연기 보다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삶의 방식에 더 관심이 생긴다.

Q. 어떻게 사는 삶을 추구하나. A. 적어도 남이 싫어하는 행동을 하고 싶지 않다. 남을 좋아하고 인정한다는 게 좋아한다는 행동, 말로만 표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남이 싫어하는 행동을 안 하는 게 그 사람을 좋아해주는 것이라고도 생각한다. 상대의 행동을 바라봐주고 인정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관계 속에서 이런 생각을 잘 유지하면서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이다.

배우 차승원이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김정호라는 인물이 전하는 가치에 대해 밝혔다. © News1star / 고아라 기자

Q. 차승원이 '삼시세끼'에서 보여주는 '차줌마'의 배려 넘치는 삶의 방식이 묻어나는 생각 같다. A. 우리가 왜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끼는지 생각해 봤다. 현실은 그렇게 함께 밥을 나눠 먹을 수 있는 구조적 여건이 안 되니까. 그런데 여럿이서 함께 밥을 먹는 것도 좋지만 난 사실 혼밥, 혼술도 괜찮거든. 혼밥, 혼술이 유행하지만 나쁘게 바라보는 시선도 있더라. 왜 혼자 밥을 먹냐는 시선이다. 혼자 먹고 마시는 사람들은 그저 남에게 피해주지 않으려는 사람들인데, 마치 뭔가 문제가 있어서 혼자 먹는 사람들로 보는 시선이 있더라. 사람이 밥을 혼자 먹을 수도 있지 않나. 여럿이 함께 나누는 것도 좋아하지만, 혼자 뭔가를 하는 것을 마냥 폐쇄적으로만 바라볼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혼자 있는 시간도 꽤 중요하다. 나도 혼밥, 혼술 자주 한다. 요지는 남이 하는 것에 대해 너무 비난하지 말자는 얘기였다. (웃음)

Q. 한동안 영화 출연은 드물었다. A. 이젠 1년에 몇 편씩 찍어야겠다는 생각 같은 건 없다. 그 보다 의미 있게 참여할 수 있는 영화가 내게 도움이 되지 않나 싶다. 제조업처럼 찍어내듯 연기하지 않으려 한다. (웃음) 어느새 나이가, 자연스럽게 세월이 내게 이런 것들을 가르쳐준 것 같다.

Q. 김정호라는 인물이 이 시대에 어떤 가치를 전해줄 수 있을까. A. 우리는 늘 개인주의, 패배주의에 편중돼 있다. 그런 시대에 사익 보다 남을 위해 산 인물들에게 막연하게 나마 동경심이나 경외심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물론 이들도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라서 했겠지만, 우리도 뒤를 좀 돌아보고 자신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aluem_chang@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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