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두열이 남기고 간 위대한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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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5일 사직구장. 1일 세상을 떠난 고 유두열 전 청주고 감독이 롯데의 홈 개막전에서 시구를 했다. 공식석상에 나서 팬들에게 인사한 마지막 모습이었다. 고인은 암 투병 중이었지만 롯데 팬들 앞에서 멋진 시구를 보여줬다. 사진제공|롯데 자이언츠 |
기자는 2010년 10월 3일 사직구장에서 열린 두산과 롯데의 준플레이오프 4차전을 앞두고 고인과 인터뷰를 했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순간이다. 당시 포철공고에서 인스트럭터를 하고 있을 때였다. 그는 기자에게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전 롯데자이언츠 선수 유두열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은퇴한 지 19년의 시간이 지난 시점이었지만 여전히 롯데 자이언츠의 선수, 그리고 첫 우승멤버라는 긍지와 자부심이 컸다.
고인을 애도하며 2010년 기자에게 직접 들려준 1984년의 이야기를 다시 찾았다. “삼성과 한국시리즈 6차전까지 굉장히 부진했다(17타수 1안타). 그러나 7차전 오더에 내가 5번타자였다(3번 김용희·4번 김용철). 강병철 감독의 믿음에 보답하고 싶었다(훗날 이 타순은 기록원의 실수로 밝혀졌다. 강병철 감독은 시리즈 내내 1할 타율로 부진한 유두열을 6번에 배치했다. 경기 시작 직전 이를 알아챘고 양해를 구하고 바로 잡을 수 있었지만 강 감독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1점 차(3-4)로 뒤진 8회 1사 1·3루 찬스가 왔다. 오더가 잘못됐었다는 사실은 전혀 몰랐다. 어떻게든 ‘병살은 안 된다. 희생플라이라도 쳐서 동점을 만들자’는 생각밖에 없었다. 김일융이 던진 공이 살짝 낮았는데 역전 3점홈런이 됐다.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순간이다. 바람이 있다면 롯데 후배들이 한국시리즈에서 더 극적인 장면을 만들어 주는 거다.”
19년 전 그날로 돌아간 듯 생생하게 그 순간을 들려줬었다. 당시 그는 잠시 코치직에서 떠나 있었지만 한시도 야구장을 떠나지 않았다. 포철공고에서 야구선수들에게 타격을 가르치고 있었다.
고인은 1970년대 실업야구 시절 정상급 외야수였다. 1982년 서울에서 개최된 세계야구선수권 우승한 뒤 프로에 데뷔해 고향 팬들에게 짜릿한 한국시리즈 우승을 안겼다.
고인은 기자에게 이런 말도 남겼다. 지금까지도 큰 울림이 남는다. “2000년대 8년 동안 6번 최하위를 할 때는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없었다. 은퇴했지만 전 롯데 선수 아닙니까? 누가 나무라는 건 아니지만 팬들에게 미안하고, 나뿐 아니라 대다수 롯데 출신들이 다 조용히 살았습니다.”
팀에 대한 무한한 헌신과 자긍심, 그리고 끝이 없는 책임감. 그는 떠났지만 그라운드에 있는 모든 이들이 꼭 가슴에 새겨야할 큰 유산이다. 문뜩 하늘을 바라보면 1984년 친 유두열의 ‘역전 결승 스리런포’는 아직도 날아가고 있을 것 같다.
고(故) 유두열(1956∼2016)
▲아마추어 선수경력=마산상고∼한국전력∼경리단∼한국전력 ▲국가대표 주요경력=제26회(1980년 도쿄) 및 27회(1982년 서울) 세계야구선수권대회 외야수 ▲프로경력=1983년롯데 입단∼1991년 은퇴 ▲프로통산성적=734경기, 타율 0.264(2224타수 588안타), 58홈런,268타점 ▲수상경력=1984년 한국시리즈 최우수선수상(MVP) ▲지도자경력=롯데 코치(1993∼1999), 제주관광산업고 코치(2001∼), 김해고 감독(2007∼), 설악고 감독(2009∼), 충훈고 감독(2012~), 청주고 감독(2014~)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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