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희 칼럼] 탈북 러시가 북한 붕괴의 전조인가
대북 국제제재 속에 일어나는 북한 사람들의 탈북 행렬에 북한 붕괴론에 크게 힘이 실리고 있다. 지난 4월 중국에 있는 북한 식당 종업원 13명의 집단 탈출은 언론의 각광을 받았다. 그러나 서울과 워싱턴의 붕괴론자들(Collapsists)을 열광시킨 것은 8월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 공사 태영호 일가족의 탈북이다. 올 들어 8~9명의 3등 서기관급 북한 외교관들이 한국이나 제3국으로 망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중 태영호가 최고위급 탈출 외교관이어서 비상한 주목을 받는다.
태영호의 ‘수송 작전’도 요란했다. 영국 공군기가 2대의 전투기 호위를 받으면서 일단 그를 독일의 미군기지로 이송하고, 거기서 태영호 일가족은 서울로 왔다. 망명 의사를 확인한 영국 첩보기관 MI6는 먼저 미국 중앙정보부(CIA)에 그 사실을 통보했다. CIA의 ‘선수’들이 태영호와 만나 이야기를 해 보고는 그에게서 별다른 정보 가치를 발견하지 못해 미국으로 데려가는 것을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태영호는 10년 이상 외국에서 근무해 CIA가 궁금한 북한 내부 사정, 공포정치를 계속하고 미사일을 펑펑 쏘는 김정은의 행태에 관한 정보를 갖고 있을 수가 없다. 그러나 한국의 붕괴론자들은 고위급 외교관이 남북한이 일체의 대화 창구를 닫고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이 시기에 서울로 망명해 왔다는 사실 자체가 상징성 이상의 실질적 의미를 갖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외국에서 근무하는 북한 사람들의 탈북 행렬이 과연 북한 체제 붕괴나 지도자 교체의 전조가 될까. 과거 남북한의 사례에서 답을 찾아보자.
90년대에도 탈북 러시가 있었다. 91년 소련·동유럽 사회주의체제가 무너지자 많은 북한 사람은 북한 체제의 해체는 시간문제라고 생각했다. 침몰선을 탈출하는 쥐떼 같은 탈북 러시가 일어나고 그 클라이맥스가 97년 북한 주체사상의 ‘아버지’ 황장엽의 한국 망명이었다. 그러나 북한은 그때의 위기, 탈북 사태가 예고한 체제 붕괴의 위기를 넘기고 오늘까지 건재한다. 그때와 지금이 같은가. 다른 점이 있다면 사소한 일로 당·정부 실력자들을 처형·숙청하는 김정은의 공포정치, 강력한 국제제재, 김정일 시대보다 훨씬 소원해진 북·중 관계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정이 조만간 북한 체제 붕괴나 지도자 교체를 가져온다고 미리 ‘김칫국’을 마시는 것은 어리석다. 공포정치가 도를 넘으면 김정은에게도 박정희를 시해한 김재규가 등장할 가능성까지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북한은 곧 붕괴한다는 기대를 바탕으로 강 대 강의 대북 자세를 유지하는 것은 김정은의 불가예측성을 생각하면 위험하기까지 하다. 작년에 북·중 접경지대, 지난달 러시아 연해주를 답사한 중앙일보의 평화 오디세이가 확인한 대로 우선 남·북·중·러 4각 경제협력체제로 지금의 위기를 생산적으로 해결할 길이 있다.
김영희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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