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배 다시 꿈을 꾸다

전지현,박인혜,박은진 2016. 9. 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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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아톰' 보며 과학 동경..사재 3천억 털어 서경배 과학재단"1조까지 지원 늘릴것..이제 노벨상 수상자 곁에 서고 싶어""과학에 미래와 희망 있다" 代 이어 사재출연

◆ 사재 내놓는 기업 오너들 ◆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53)은 유년 시절 TV 만화영화 '우주소년 아톰'을 즐겨 봤다. 1970년대 지구 밖을 날아다니는 아톰을 보면서 과학의 힘을 동경했다. 학창 시절에는 생물 수업을 유난히 좋아했다. 과학자들이 밝혀낸 생명의 신비에 푹 빠져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세월이 흘러 회사를 경영하면서 과학의 힘을 좀 더 구체적이고 절실하게 깨달았다. 1990년대 아모레퍼시픽이 수입 화장품에 밀려 고전하고 있을 때 노화를 방지하는 비타민 유도체 '레티놀 아시드'를 화장품에 적용하는 기술을 개발하면서 경영난을 일시에 해결했다. 1997년 수백 번 실험을 통해 만든 '아이오페 레티놀 2500'이 대박을 친 덕분에 오늘날 'K뷰티 신화'를 쓸 수 있게 됐다. 이 제품 기술의 토대는 선친인 고 서성환 선대 회장(1923∼2003년)이 1992년 설립한 '태평양중앙연구소'에서 나왔다. 1991년 노동조합 총파업으로 회사가 휘청한 후 이듬해에 '기업의 미래는 과학에 있다'고 판단한 선대 회장이 만든 연구소다.

과학기술의 힘을 빌려 쿠션 등 히트 화장품을 만들어온 서 회장이 그 빚을 갚기로 결심했다. 지난 7월 그가 보유한 아모레퍼시픽 주식 3000억원을 기부해 생명과학 기초 연구를 지원하는 공익법인 '서경배 과학재단'을 설립했다. 자사 화장품과는 무관한 순수과학 연구에 거액을 기부해 의미가 깊다.

서 회장은 1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재단 출범 기자회견에서 100년 이상 지속 가능한 재단을 만들기 위해 앞으로 1조원 규모까지 사재를 기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날 붉은 넥타이를 매고 나타난 서 회장은 "시작은 3000억원으로 하지만 제 꿈은 사업을 잘해서 1조원을 기부하는 것"이라며 "재단이 정상화되려면 1년에 대략 150억원이 들어간다. 100년 이상 과학 연구가 계속될 수 있도록 출연금을 내놓겠다"고 말했다. 이름을 내건 재단을 만든 이유는 강한 책임감 때문이다. 서 회장은 "재단이 잘못되면 내 이름에 먹칠하는 것이다. 빠져나갈 구멍을 없애기 위해 내 이름을 걸었다"면서 "이 재단이 세계적인 과학 결과물을 만들어 한국에서도 노벨상이 나오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최근 조창걸 한샘 명예회장, 김준일 락앤락 회장이 공익재단을 설립하는 등 중견기업에서 시작된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의무) 실천이 이제 대기업으로 확산되고 있다.

 서경배 회장은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선친이 세상을 떠난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재단 설립을 준비해왔다. 아모레퍼시픽 창업자인 서성환 선대회장은 1954년 한국 화장품 업계 최초로 연구실을 개설했을 정도로 과학기술에 관심이 깊었다.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 서울대 의대, 연세대 의대 등 학교와 외부 연구소에도 연구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서 회장은 "어릴 때부터 아버님이 과학기술 이야기를 항상 들려줬고 사재를 털어 재단(태평양장학문화재단, 태평양학원, 태평양복지재단)을 설립했다"며 "집사람과 얘기한 후 꼬부랑 할아버지가 되기 전에 나도 재단을 설립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우리말에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쓴다고 했는데 힘들게 번 돈을 멋있게 쓰고 싶다"고 말했다.

 부친의 뜻을 이어받은 서 회장의 과학 사랑도 유별나다. 2006년부터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와 '아모레퍼시픽 여성과학자상'을 제정했고 2010년부터 재단법인 피부과학연구재단과 협약을 맺고 '아모레퍼시픽 피부과학자 연구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신진 과학자들에게 연구비를 전달해왔다. 2015년부터는 '차세대연구자상'을 신설해 국내 분자생물학 및 세포생물학 분야 연구자에게도 연구비를 지원하고 있다.

 서 회장은 과학 연구를 지원하는 사람이 늘어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 그는 "꿈은 혼자 꾸면 백일몽이지만 100명이 모이면 현실이 된다"며 "과학에 미래와 희망이 있다"고 강조했다. 신기술로 회생한 그의 회사처럼 과학이 세상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서경배과학재단은 국내외 석학 및 전문가들로 과학자문단과 심사위원단을 구성할 계획이다. 서 회장이 이사장을 맡고 재단 이사로는 김병기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교수, 강봉균 서울대 자연과학대학 교수, 오병하 카이스트 생명과학과 교수 등이 참여한다.

[전지현 기자 / 박인혜 기자 / 박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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