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탄핵..브라질 대통령 잔혹사

백진원 2016. 9. 1.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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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이 탄핵당했다. 예상했던 대로 브라질 상원은 그녀에게 대통령 사무실을 비우라고 결정했다. 이로써 지난해 12월 하원에서부터 시작된 대통령 몰아내기가 9개월 만에 종지부를 찍었다. 브라질 사상 첫 여성대통령은 이렇게 권좌에서 축출됐다.




브라질 상원은 31일(현지 시각) 전체회의를 열어 호세프 대통령 탄핵안을 표결에 부쳐 찬성 61표, 반대 20표로 통과시켰다.

탄핵안 통과에는 전체 상원의원 81명 가운데 3분의 2인 54명 이상의 찬성이 필요했다. 61명이 찬성했으니 비교적 여유 있게 통과된 셈이다.

상원 최종표결에서 탄핵안이 가결됨에 따라 호세프는 30일 안에 브라질리아 대통령궁을 떠나야 한다. 2018년 말까지 남은 호세프의 임기는 미셰우 테메르 대통령 권한대행이 채운다.

◆ “재정회계법 위반” VS “정권찬탈 쿠데타”

탄핵 사유는 호세프 대통령이 연방정부의 막대한 재정적자를 피하려고 국영은행의 자금을 사용하고 이를 되돌려주지 않는 등 재정회계법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지우마 정부가 2014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정부의 경제실적을 과장하기 위해 이런 편법을 써서 재선에 성공했다는 것이 정치권의 주장이다.

호세프 대통령은 국영은행 자금을 사용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관례에 따른 것이며 위법행위라고 볼 수 없다고 반박해왔다. 탄핵은 테메르 부통령이 정권을 찬탈하기 위한 쿠데타라며 강하게 맞섰으나 판세를 뒤집지는 못했다.

다당제 아래서 연립정권을 꾸려온 노동자당의 지우마 대통령과 브라질민주운동당의 테메르 부통령은 정권을 함께 창출하고 1기 행정부를 꾸릴 때까지만 해도 동지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집권 2기를 맞으며 경제난이 이어지고 의견대립이 심해지면서 마침내 등을 돌리는 사이가 되고 말았다. 그리곤 테메르 부통령은 탄핵의 칼을 지우마 대통령의 등에 꽂은 셈이 됐다.

지우마와 테메르의 관계 변천사. 대통령과 부통령 후보 전, 당선 직후, 등 돌린 옛동지


역사상 두번째 탄핵…되풀이되는 브라질 대통령 잔혹사

탄핵안이 가결되면서 호세프 대통령은 브라질 역사상 두 번째 탄핵을 당한 '불운의 주인공'으로 남게 됐다. 처음 탄핵을 당한 사람은 페르난두 콜로르 대통령으로 1992년 12월 하원이 탄핵안을 가결하자 사퇴했다. 그는 현재 상원의원으로 이번 지우마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결정한 상원 전체 회의 표결에 참석했다.

당시 브라질에서 30년 만에 직접선거로 선출돼 1990년 3월에 취임한 콜로르 전 대통령은 인플레이션을 해결하기 위해 은행계좌를 동결하는 극단적인 조처를 했다가 실패한 뒤, 잇단 비리 의혹으로 여론이 악화하면서 하원이 1992년 12월 탄핵안을 가결하자 사퇴했다.

그러나 몇 년 뒤 대법원은 콜로르에 대한 탄핵 사유에 구체적인 증거가 없다고 판결했다.

호세프 대통령은 2010년 브라질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정치사에 한 획을 그었고 2014년 재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사상 최악의 경제난이 계속되고 부패 스캔들로 지지도가 급락한 가운데 재정회계법 위반 혐의로 지난 5월 12일 탄핵심판이 개시되면서 직무가 정지됐다.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나면서 브라질 대통령들의 잔혹사가 다시 한 번 확인됐다.

“대통령 임기 마친 사람은 8명 중 3명뿐”

1950년 이후 선출된 브라질 대통령 8명 가운데 제대로 임기를 마친 이는 3명뿐이다.

주셀리누 쿠비체크(1956∼1961)와 페르난두 엔히키 카르도주(1995∼2003),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2003∼2010) 대통령이 그들이다.

나머지 대통령들은 탄핵을 당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까닭을 모르게 사퇴했다. 한국의 대통령 못지않게 브라질의 대통령들도 잔혹사를 겪은 셈이다.

제툴리우 바르가스 대통령은 1951년 취임한 뒤 1954년 야당 지도자이자 신문사 사주인 카를루스 라세르다를 암살하려 했다는 의혹에 휘말렸다.

그 과정에서 바르가스 대통령은 군부와의 유대관계가 무너지고 사퇴 압박을 받게 되자 자기 심장에 스스로 총을 쏴 사망했다.

자니우 쿠아드루스 대통령은 1961년 1월에 취임한 뒤 같은 해 8월에 석연찮은 이유로 사퇴했다.

쿠아드루스 대통령은 1961년 8월 라세르다의 신문사가 재정지원을 해달라는 요구를 모욕적으로 묵살했다가 '대통령이 의회를 해산하고 독재자가 되려고 한다'는 역공을 받자 "끔찍한 세력이 나를 표적으로 삼아 발기했다"며 다음날 바로 사퇴를 선언했다.

조앙 굴라르트 대통령은 1961년 9월에 취임해 1964년 3월 경제개혁을 시도하다가 쿠데타로 쫓겨났다. 굴라르트 대통령은 1964년 3월 정유시설을 국유화하고 철도와 고속도로, 이용되지 않는 토지를 국가가 몰수하겠다고 선포했다가 보수진영의 반발을 샀다. 그 후 상파울루에서는 50만 명이 운집하는 대규모 시위가 열렸는데 이를 진압하려 나선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켰다.

이후 브라질에서는 20여 년 동안 군부독재가 계속됐다. 그 후 군부가 지지하는 후보를 꺾고 당선된 탕크레두 네베스 대통령은 1985년 1월 대통령으로 당선됐으나 알 수 없는 위통을 호소하며 쓰러졌다가 취임하지 못한 채 4월에 숨지고 말았다.

그리고 쿠아드루스 대통령 이후 30년 만에 직접선거로 선출된 페르난두 콜로르 지 멜루 대통령은 1990년 3월 취임했다가 1992년 12월 탄핵을 당했다.

미국의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은 이 같은 브라질 대통령의 잔혹사에 대해 '절차적, 형식적 민주주의가 얼마나 갖춰져 있느냐가 아니라 원칙을 얼마나 고수하느냐에 있다'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브라질에는 언론 자유가 있고 독립된 입법·사법부가 있지만 거수기일 뿐"이라며 "대통령을 싫어하는 여론이 요동치면 입법·사법부는 재빨리 거기에 편승하는 경향이 있다"고 덧붙였다.

◆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질 수 있으랴…

선출된 대통령의 임기를 특별한 사유가 아니면 보장하는 다른 민주주의 국가와 마찬가지로 브라질도 뚜렷한 권력분립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권의 부정부패와 권력 분점은 경제위기와 함께 분열되고 말았다.

35개나 되는 정당들이 난립한 상태에서 '이념보다는 이권'을 위해 고만고만한 10여 개 정당이 연립정권을 꾸려가는 나라. 상·하 국회의원 594명 가운데 약 60%가 각종 부정부패 혐의로 입건이 돼 있는 정치권. 브라질 정치인 가운데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질 수 있으랴.

테메르 부통령의 정권찬탈 쿠데타를 주장한 지우마 대통령은 결국 탄핵당했다.


2000년대 후반 경제가 잘 나갈 때 흥청거리던 브라질 정치권은 세계 경제의 침체 속에 경제난이 심화하고 부정부패에 대한 비난이 커지자 '속죄양'을 찾은 듯 배신과 배반을 모색했다. 경제분야의 구조개혁과 복지분야의 합리적 분배에 대한 요구에 부응하지 못한 브라질의 정치는 대통령의 탄핵으로 위기를 자초하며 크게 소용돌이치고 있다.

백진원기자 ( jwhit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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