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가 어때서 ①] [르포] 혼밥 파티에 갔더니.."옆사람과 말 섞으려면 나가"
-본지 기자, 새 트랜드된 ‘혼밥 모임’ 직접 체험기
-합석은 하지만 대화는 안돼, ‘혼자 밥 먹는 모임’ 인기
-지난해 1인가구 506만가구로 늘며 ‘혼밥’보편화 반영
-“혼밥 문화 퍼져 당당하게 먹을 수 있는 사회 됐으면”
[헤럴드경제=유오상 기자] 식당 테이블에 앉은 6명은 말이 없었다. 한 명이 혼잣말을 하는 것 마냥 입을 열었다. “이거 정말 아무 말도 하면 안되는 건가?”. 그러나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큰 식당에서는 사람이 많아 음식이 늦게 나오고 있다는 가게 주인의 말 이외에 어떤 말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조용히 식사를 마치고 건물을 빠져나와서야 대답이 나왔다. “아까 말 걸어서 대답할 뻔했잖아요”.
지난달 27일 오후 1시, 경기도 고양시의 한 음식점에서 열린 이른바 ‘혼밥’ 모임. ‘혼자 밥 먹는 모임’이란 뜻의 행사에 모인 190명은 정말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혼자 밥 먹는 것에 당당해지자’는 모임의 취지에 맞춰 참가자들끼리 대화가 금지됐기 때문이다. 식당 안에서는 종업원을 찾는 소리 외에 어떤 대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혼자 사는 1인가구가 늘어나면서 혼자 밥 먹고 생활하는 것은 흔할 일이 됐다. 실제로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1인 가구는 총 506만1000가구로 전체 가구의 27.1%를 차지한다. 102만 가구를 기록했던 1990년과 비교하면 5배 가까이 증가한 수치다. 혼자 사는 가구가 늘어나면서 이른바 ‘혼밥족’도 늘어났고, 혼자 밥을 먹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던 문화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이번 모임은 아마추어 웹툰 작가인 이상일(23) 씨가 ‘혼자 밥 먹는 만화’를 그리면서 시작됐다. 혼자 식당에서 순대 국밥을 먹는 학생을 주위 사람들이 놀린다는 짧은 내용의 만화였지만, 인터넷에 올라오자마자 공감을 얻으며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급기야 작가가 인터넷을 통해 ‘Honbob doesn’t need a friend’ 등 혼밥 문구가 들어간 티셔츠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애초 목표 판매액은 40만원이었지만 현재까지 5000만원어치가 팔렸다. 이날 모임은 티셔츠 판매 감사 차원에서 이 작가가 식사비를 전액 지원했다.
이 작가는 이번 모임을 통해 혼자 밥 먹는 문화가 널리 퍼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나도 원래 주위 시선이 신경 쓰여 혼자 밥을 먹지 못했었다”며 “혼자 밥 먹는 문화가 널리 퍼져 눈치 보지 않고 혼자 밥 먹을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모임의 규칙은 간단했다. 식당 앞에서 행사 진행요원에게 “혼자 밥 먹으러 왔다”고 말하고 쿠폰을 받아 밥을 먹으면 된다. 다만 식당 안에서 합석한 다른 참가자와 말을 나눠선 안된다. 친구나 지인과 함께 행사에 참여해도 안되고 혼자 참가해 밥만 먹고 돌아가야 한다. 규칙을 지키면 식사가 공짜지만 이를 어기면 밥값을 내고 그 자리에서 나가야 한다.
행사장 앞 진행요원은 참가자들이 말하는 암호에 따라 쿠폰을 나눠주고 “식사 맛있게 하라”고 했다. 식당에서의 마지막 대화였다. 엄격한 규칙 때문에 참가자 대부분은 음식이 나오기 전까지 각자 스마트폰에 집중했다. 식사 메뉴인 국밥이 나오면 먹는 데 온 정신을 집중했다. 식사가 끝나는 동안 아무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식사 중에 대화가 불가능하니 참가자 대부분이 10분도 안돼 식사를 마쳤다.
어색한 분위기 때문에 식사를 마치자마자 무언가에 쫓기듯 나왔지만, 식당 밖은 기다리는 참가자들이 줄을 선 상태였다. 식당을 빠져나오고 나서야 같은 테이블에 앉았던 참가자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이날 행사에 참여했던 이세형(24) 씨는 “식사가 나오기까지 10분이 1시간처럼 느껴졌다”며 “평소 혼자 밥을 먹을 때는 눈치가 보였는데 오늘은 당연하듯 혼자 밥을 먹으니 오히려 편했다”고 했다. 또 다른 참가자 오진형(22) 씨도 “웹툰도 재밌게 봤고 혼자 밥 먹는다는 행사 취지도 공감해 찾아오게 됐다”며 “혼자 밥 먹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는 걸 오늘 새삼 느꼈다”고 했다.
osy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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