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견된 한진해운 사태, 정부 엇박자 대응..수출입 물류 대란 자초
그런데, 한진해운에 대한 법정관리가 금융위원회 중심으로 진행되면서 항만, 물류 분야를 책임지고 있는 해양수산부는 논의 구조에서 소외됐다.
이렇다 보니, 해수부는 이번 한진해운 사태에 따른 후속대책 마련에 허둥대고 있다. 국내 수출입 물류피해액이 얼마가 될지 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구조조정 방안이 검토된 지 10개월이 지났지만, 정부가 부처 칸막이만 높게 치고 아무런 대책 없이 허송세월만 보내다 수출입 물류대란을 자초하고 말았다.
◇ 한진해운, 세계 7위 물동량…외국선사들 국내 수출입물량 '군침 흘려'
또한, 한진해운과 계약을 맺은 전 세계 화주(화물 주인)가 8400여개에 이르고, 국내 화주만 847개가 있다. 여기에는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등도 포함돼 있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수출입 원양화물 물동량은 2천568만TEU(길이 6.1m 컨테이너 기준 단위)로 이 가운데 한진해운이 8.5%, 현대상선이 5.4%로 양대 국적선사가 13.9%를 점유했다.
나머지는 국내 중소 해운업체와 중국, 일본, 프랑스 등 외국 선사들이 처리했다.
이번에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선박 운항이 전면 중단됨에 따라, 그동안 한진해운이 처리했던 화물 물동량 8.5%가 공중분해 되게 됐다. 외국 선사들이 벌써부터 군침을 흘리고 있다.
이와 관련해 윤학배 해수부차관은 "한진해운의 물동량을 현대상선이 대체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 해외 선주들, 한진해운 선박 가압류 조치…물류대란 시작
한진해운의 법정관리가 결국 국내 해운업계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져 장기적으로 수출입 화물 운임 상승 등 피해가 우려된다.
우선 당장, 한진해운의 법정관리로 우리나라의 수출입 물류 대란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해수부에 따르면, 31일 현재 운항 중인 한진해운 컨테이너 선박은 모두 95척으로 여기에 선적된 화물만 54만TEU(길이 6.1m 컨테이너 기준 단위)에 이른다.
그런데, 한진해운에 배를 빌려 준 선주들이 용선료(배 임대료) 확보를 위해 화물을 싣고 운항 중인 한진해운 선박을 가압류 조치하면서 피해가 현실화되고 있다.
싱가포르 법원은 30일 한진해운의 5308TEU급 컨테이너선인 한진로마호를 싱가포르 항구에서 가압류했다.
한진로마호는 한진해운이 직접 소유한 선박이지만 다른 용선 선박의 용선료를 체불하자 선주인 독일 리크머스사가 가압류 신청을 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처럼 선박을 가압류 조치할 경우 압류가 해지될 때까지 선박의 부두접안과 하역작업이 불가능해진다. 더구나 선주가 선박 회수를 위해 선적된 화물을 중간 기항지에서 전량 강제 하역하도록 요구하면 대책이 없다.
이렇게 되면 화물주인이 직접 또 다른 선박을 섭외해야 한다. 화주입장에서는 당연히 수출입 납기일을 맞출 수 없게 돼 막대한 손해를 보게 된다.
이와 관련해 해수부는 8~10월이 원양항로 성수기로 한진해운과 이미 계약된 국내 화물은 별도의 선박 섭외에 어려움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부산항을 경유하는 한진해운 단독 노선(미주 3개, 유럽 1개 노선)의 정상 운영이 불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해수부 관계자는 "우리나라와 미국, 유럽 항로의 화물 운임이 급등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 국내 기업들의 수출비용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진해운 단독노선 가운데 미주 1개 노선(선박 4척)과 유럽 1개 노선(선박 9척)에 현대상선을 대체 투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최소 2주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돼, 화물처리에 차질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처럼 물류 분야뿐만 아니라 국내 항만 서비스 산업에도 커다른 피해가 우려된다.
해수부 관계자는 "서비스 노선 조정이 진행되는 1~3개월 간 한진해운이 국내 항만에서 처리하던 환적물량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항만 서비스 관련 시장의 매출 감소를 피할 수 없게 됐다"고 전했다.
◇ 물류·항만 피해액 수 조원 추정…정부 부처 칸막이, '해수부는 몰라'
한진해운의 이번 법정관리 결정으로 국내 화주와 물류, 항만 등 관련 업계가 입게 될 피해액만 수 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해수부는 아예 자체 추산액 조차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한진해운 사태에 미리 대비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반증이다.
사실 이번 법정관리 결정은 금융위원회와 채권단 주도로 진행됐다. 이렇다 보니, 해운. 물류 분야 총괄 부처인 해양수산부는 논의 구조에서 제외됐다.
해수부 고위 관계자는 "한진해운 구조조정 논의가 시작된 이후 해수부는 진행된 내용 자체를 알지 못하고 언론 등을 통해 겨우 분위기 정도만 파악할 수 있었다"며 "법정관리 후속 대책을 마련할 상황이 아니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한국국제물류협회와 한국선주협회 부산지구협의회 등 관련 업계는 31일 발표한 성명을 통해 "한진해운의 청산이 불러올 엄청난 혼란과 피해에 대한 각계각층의 우려가 들끓었음에도 불구하고 한마디 해명 없이 결정을 내리는 무책임함에 가슴깊이 절망하고 분을 참을 수가 없다"고 밝혔다.
이들은 또한, "어제(30일) 채권단은 더 이상의 지원은 없다며 본연의 책무를 저버리는 무책임한 결정을 내리고 말았다"며 "해운, 항만, 조선을 비롯한 연관 산업의 막대한 손실과 수많은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 불 보듯 뻔한 결정을 내리고 말았다"고 비판했다.
[CBS노컷뉴스 박상용 기자] saypark@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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