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부추'로만 부친 담백한 그 맛에.. 고향 집 추억이 아른아른

이현수 소설가 2016. 9. 1. 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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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수의 도란도란 식탁] 옛날 부추전

고향 집에 '벤지'라는 개가 있었습니다. 이름에 걸맞게 암팡진 엉덩이를 흔들고 돌아다녀 누구에게나 사랑받던 개였습니다. 눈치가 빠르고 영리해서 아이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는데요. 서울로 돌아온 이튿날부터 아이들은 외가에 다시 갈 날만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많아야 일 년에 네댓 번, 이삼 일 묵다 오기 일쑤인데도 녀석은 우리 모두를 기억했습니다.

고향 집이 저만큼 보이면 벌써 우렁차게 짓는 벤지의 소리가 들립니다. 아이들과 녀석의 상봉은 언제 봐도 눈물겹습니다. 꼬리를 좌우로 어찌나 발랑거리던지요. 늙어서 눈이 찌부러지자 아이들은 녀석을 '삐꾸'로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고장이 났다는 뜻이지요. 기운 빠진 녀석은 전처럼 애교를 떨지 않아서 고만 눈 밖에 나고 만 것입니다.

벤지에서 삐꾸로 전락한 녀석은 그 후 뇌졸중을 앓던 어머니의 충직한 반려견이 되었습니다. 한쪽 팔과 다리가 마비된 어머니는 마루의 팔걸이 소파에 항상 앉아 계셨는데, 고개를 여섯 시 오 분 전인 시계 방향으로 떨어뜨리고 있었습니다. 어머니 곁에 딱 붙어 앉은 삐꾸의 고개도 같은 방향으로 늘어져 있어 흡사 쌍둥이를 보는 것 같았지요.

뇌졸중을 앓던 어머니가 가장 좋아하던 것이 부추전입니다. 해산물과 매운 고추도 없이, 오로지 조선부추만 넣어서 솥뚜껑에 노릇노릇 지져내던 그 옛날 부추전. 외할머니의 치마꼬리에 묻어 따라간 잔칫집에서 얻어먹던 부추전이 그 무렵 생각나신 듯했습니다. 어머니의 부엌엔 길이 반들반들하게 든, 검고 무거운 프라이팬이 하나 있습니다. 거기에 밀가루를 묽게 개어 부치면 어머니는 옛날 솥뚜껑 부추전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잘게 자른 부추전을 드리면 어머니는 우리가 안 보는 틈에 얼른 삐꾸에게 먹이십니다. 부추전을 날름 먹고도, 안 먹은 척 시침을 뗀 삐꾸의 얼굴이 가관입니다. 어머니를 말려도 보고, 개 껌이나 개 간식으로 삐꾸를 유혹해도 요지부동입니다. 부추전 앞에선 둘 다 사족을 못 쓰더군요. 함께 살면 식성도 닮는 모양입니다. 뇌졸중이 진행되면 말이 어눌하고 기억력도 투미해집니다. 어머니는 지고지순형이지 총명하거나 영민하진 않습니다. 그런데도 당신이 공부를 꽤 잘한 줄 착각합니다. 뇌세포의 퇴화 현상 때문인데요. 유년의 기억을 자주 각색하고 부풀리는 통에 가족들은 그러려니 건성으로 듣습니다. 발음이 술술 새는 어머니의 얘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건 옆에 앉은 삐꾸뿐입니다. 삐꾸는 어머니와 눈도 맞추고 고개도 끄떡거립니다.

어머니가 병원에 계실 땐 삐꾸에게 신경도 쓰지 못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혼자 남은 삐꾸를 어찌할까 가족회의를 했습니다. 여동생을 따라 대구로 내려간 삐꾸는 현관에서 움직이질 않습니다. 문이 열릴 때마다 어머니가 돌아올까 기다리느라 제집엔 들어가질 않는다더군요. 그러구러 현관을 지키던 삐꾸가 어느 날 가출하고 말았습니다. 누군가 여섯 시 오 분 전의 방향으로 고개를 숙인 채 그 집 앞을 지나간 게지요.

폭염이 거짓말처럼 물러간 날, 시장에서 잎이 좁고 부드러운 조선부추, 일명 '정구지'를 발견했습니다. 반갑게 석 단을 사서 품에 안고 오던 중 흰 털이 회색으로 변한 개를 봤습니다. 개의 고개가 여섯 시 오 분 전의 방향을 가리킵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아 나도 모르게 '삐꾸야!' 소리쳐 불렀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도 남은 가족은 잘 먹고 잘 살았습니다. 눈이 찌부러진 삐꾸만 어머니를 찾아서 가출했지요.

유품으로 물려받은 프라이팬에 밀가루와 소금, 부추만 넣어서 담백하게 부친 부추전. 어머니와 삐꾸 몫으로 두 장을 덜어내 큰 접시에 담아 한쪽에 놓습니다. 어머니는 펜촉에 찔린 것처럼 날카로운 통증을 내 가슴에 남겼고, 삐꾸는 지난 십 년 내내 눈에 밟혔습니다. 죽은 개를 위해 관을 사고 장례를 치러주는 마음을 나는 이제 이해합니다. 말 못 하는 짐승한텐 곁도 주지 말고 정도 주지 말아야지. 오늘도 굳게 다짐해놓곤 이내 돌아서서 중얼거립니다. 원, 눈도 찌부러진 것이 어디서 부추전이나 얻어먹고 다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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