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연간 1억t 화물수송.. 한진해운 영욕의 40년

2016. 8. 31.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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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업 불황에 좌초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기업회생 절차를 신청한 31일 사내 인트라넷을 통해 “한진해운 경영정상화를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했지만 채권단을 설득하는 데 부족했던 것 같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채권단의 지원 불가 결정으로 법정관리 절차를 밟게 된 한진해운은 한진그룹의 계열사로 그간 국내 해운시장에서 부동의 1위이자 세계 7위의 대형해운사로 군림했다.

1977년 국내 최초의 컨테이너 전용 선사로 사업을 시작한 후 1978년 중동항로, 1979년 북미서안항로, 1983년에는 북미동안항로를 뚫었다. 한국 컨테이너 해운업을 개척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8년 정부가 1948년 설립한 대한해운공사가 전신이던 ‘대한선주’를 합병하면서 본격적으로 몸집을 키웠다. 이를 바탕으로 한진해운은 1992년 12월 국내 선사 최초로 매출 1조원을 돌파한다. 1996년 한국에서 최대형·최고속 5300TEU급의 컨테이선을 취항했고, 2000년대 초반 5750TEU급 컨테이너선을 잇달아 인수하며 순항했다. 2005년에는 당시 국내 최대 규모인 8000TEU급의 한진 보스톤호와 마이애미호, 볼티모어호 등을 연속으로 투입했다.

이후 컨테이너선, 벌크선 등 150여척의 선박으로 전 세계 70여개 정기항로를 운영하며 연간 1억t 이상의 화물을 소송하는 거대 회사로 성장한다. 창업주인 고 조중훈 회장의 3남으로 경영을 맡았던 조수호 회장이 2006년 사망한 이후 조 회장의 부인인 최은영 현 유수홀딩스 회장이 대표이사에 취임했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 후 해운업이 얼어붙으면서 수천억원의 적자를 내기 시작한다. 2013년엔 대한항공 긴급 자금 지원까지 이뤄지지만 경영은 점점 어려워졌고, 2014년 최 회장은 시숙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에게 경영권을 넘긴다. 조양호 회장은 대표이사 자리에 오른 후 무보수 경영을 선언하는 등 경영정상화에 나섰지만 해운업의 불황을 타개하는 데는 결국 실패한다.

엄형준 기자 ti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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