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안의 괴물 <2>] 대책 쏟아지지만.. 아동학대는 되레 늘어

윤성민 기자 2016. 8. 31.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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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폭력 속에 우는 아이들

초등학생 A양과 그의 동생 두 명은 친아버지의 손찌검에 하루하루가 괴로웠다. 아버지는 뜨거운 찌개 냄비에 손을 댔다는 이유로 세 남매를 회초리로 때렸다. 어느 날은 아무 이유 없이 막내에게 허리띠를 휘둘렀다.

끔찍한 악몽은 세 남매가 2014년 10월 아동학대 보호 시설에 격리 조치되면서 끝나는 듯했다. 아이들은 두 달 정도 후에 아버지의 폭력성이 줄어들자 가정으로 돌아갔다.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지난해 7월쯤부터 아버지는 다시 폭행을 시작했다. 집을 방문했던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이 ‘재학대’ 사실을 발견한 그해 8월에야 아이들은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재학대를 막지 못한 것은 가정으로 복귀한 아이들을 돌봐줄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세 남매의 상담원은 “한 명이 맡는 학대 피해 아동만 60여명이다. 솔직히 힘에 부친다. 여력이 조금만 있었더라도 재학대가 발생하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아이들이 폭력 속에서 울고 있다. 아동학대는 좀처럼 근절되지 않는다. ‘학대의 악순환’이라고 할 수 있는 재학대도 심각하다.

정부는 2014년 인천 아동학대 사건, 지난해 원영이 사건 등 큰일이 터질 때마다 대책을 쏟아냈다. 그러나 예산은 되레 줄었다. 정부 대책이 ‘말잔치’라는 비난을 받는 이유다.

줄지 않는 아동학대

보건복지부 산하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은 지난해 아동학대 신고가 1만9204건이었다고 31일 밝혔다. 2013년(1만3076건)과 비교해 2년 만에 46.9%나 늘어난 수치다. 박근혜정부가 2014년 2월 아동학대 근절 대책을 수립하고 시행에 들어갔는데도 큰 폭으로 증가한 것이다. 접수된 신고 가운데 아동학대로 판정된 사례도 2013년 6796건에서 2014년 1만27건, 지난해 1만1708건 등으로 늘었다. 2년 동안 72.3%나 증가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재학대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에 따르면 아동학대 재신고는 2014년 2338건으로 전년(1840건)보다 27.0% 늘었다. 재신고는 아동보호전문기관이 신고를 받아 관리하고 있는 아동학대 사례에 대해 다시 신고가 접수된 사례로 재학대 현황을 보여주는 통계다. 2014년 9월 아동학대범죄 처벌에 관한 특례법이 시행되면서 학대 아동이 아무런 보호 없이 가정으로 돌아가야 하는 일이 줄었지만 아직 눈에 띄는 실효성이 나타나지는 않는 상황이다.

상담원 1명이 117.5건 담당

현장에선 심각한 인력 부족을 호소한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상담원 수는 522명이다. 한 기관당 평균 9∼10명의 상담원이 근무하고 있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에 따르면 2014년 기준으로 상담원 한 명이 담당하는 아동학대 건수는 66.5건에 달한다. 특히 부산의 경우 상담원 1인당 117.5건의 아동학대 사건을 맡고 있다.

상담원 한 명이 담당하는 아동도 2만4998명에 이른다. 아동 인구가 한국과 비슷한 수준인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상담원은 1인당 약 1860명을 맡는다. 이선영 서울동남권 아동보호전문기관 팀장은 “계속 아동학대 신고가 들어오고 관리해야 하는 아동의 수가 누적되는 상황에서 모든 아동의 가정을 면밀히 살피는 것은 한계가 있다”며 “정부가 대책을 내놓는 것도 좋은데 그보다 인력 확충 등 지원책부터 내놓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책은 있는데 돈이 없다

박근혜정부는 2014년부터 매년 아동학대 방지 대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예산 지원은 줄었다. 보건복지부는 올해 아동학대 예방사업 예산으로 503억원을 요구했지만 기획재정부가 이를 심의하면서 318억원을 깎고 185억원만 편성했다. 지난해보다 67억원이나 줄어든 수준이다. 늘려도 부족한데 돈줄을 더 조인 것이다.

예산이 줄다보니 아동학대를 예방할 기관을 확보하는 일도 쉽지 않다. 전국의 지역아동보호전문기관은 8월 현재 56곳이다. 정부는 지난 3월 아동학대 방지 대책을 발표하며 지역아동보호전문기관을 60곳으로 늘린다고 밝혔지만 예산 축소로 추가 지정된 아동보호전문기관은 1곳뿐이다.

여기에다 아동학대 관련 ‘컨트롤타워’가 없는 점도 체계적인 아동학대 방지를 어렵게 만든다. 현재 아동학대 방지 대책을 책임지는 정부부처는 복지부, 교육부, 여성가족부, 법무부, 경찰청 등이다. ‘책임의 경계’가 불분명하다보니 예산 확보나 추진 일정 수립 등이 쉽지 않다.

김희경 세이브더칠드런 사업본부장은 “그나마 ‘범정부 아동학대대책추진협의회’라는 것이 설치돼 있긴 하지만 상시 기구도 아니고 고정된 예산을 받지도 않아 한계가 있다”면서 “아동보호 서비스를 체계적으로 수행할 상시적 컨트롤타워가 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성민 기자 wood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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