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금, 미래동력 발굴 나몰라라..'한국판 테슬라' 꿈도 못꿔
◆ 국민연금 인덱스 편식 ◆
전상용 골든브릿지투자증권 연구원은 "BA 스피커는 전 세계에서 소니와 놀스테크놀로지 정도만이 보유한 첨단 기술"이라며 "BA 스피커 독자 개발은 이엠텍에 있어 향후 큰 성장동력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요즘 이엠텍의 주가 성적표는 형편없다. 지난 8월 2일 주가가 1만4200원까지 올랐지만 31일에는 1만1950원에 머물렀다. 한 달 새 16%나 급락한 것이다.
가장 큰 요인은 연기금 등 기관 자금 이탈에 따른 수급 악화다. 깜짝실적에 기술 독자 개발까지 호재가 연달아 나오면서 외국인은 8월 한 달간 24억원어치를 순매수했지만, 국내 기관은 오히려 78억원어치를 팔아치웠다. 우량 중소형주에서 국내 기관 자금 이탈로 주가가 급락한 사례는 이외에도 수두룩하다. 미디어 사업을 하는 코스닥 기업 제이콘텐트리는 올 상반기에 매출액 1710억원과 영업이익 137억원을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각각 8%, 18% 증가했다. 하지만 지난 5월 이후 연기금이 230만주가량 매도하면서 연초 6240원이었던 주가가 지난달 31일 현재 3650원으로 반토막이 났다.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중소형 제약회사 환인제약도 올 상반기 실적이 작년보다 개선됐다. 하지만 5월 이후 연기금이 85만주를 내다팔면서 주가가 연초 1만9500원에서 지난달 말 1만6100원으로 17% 추락했다. 이들 우량주 주가가 아무 이유 없이 빠진 것은 국민연금이 새로운 벤치마크 가이드라인을 내놓은 영향이 크다. 국민연금은 올 들어 주식 투자전략을 개별 종목 중심 액티브(Active)에서 시장 지수 등락을 따라가는 패시브(Passive)로 바꿨다. 또 지난 6월 자산운용사들에 유형별로 순수주식형과 장기투자형, 대형주형은 벤치마크 지수의 50% 이상을, 사회책임투자와 가치주형은 60% 이상, 중소형주는 20% 이상을 복제하라는 새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코스닥을 비롯한 중소형주 시장에서는 국민연금을 추종하는 기관 자금의 추가 이탈이 염려되는 상황이다. 코스피가 박스권 상단에 도달하자 개인투자자들이 펀드에 넣었던 자금까지 빼내기 시작하면서 중소형주 주가가 타격을 받고 있다.
김학균 미래에셋대우 투자전략부장은 "국내 주식형펀드 설정액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삼성전자 독주 장세가 펼쳐지자 국내 기관이 삼성전자를 추가로 사기 위해 코스닥을 비롯한 중소형주를 대거 매도하고 있다"며 "국내 기관이 삼성전자 보유지분을 1%포인트 더 늘리려면 중소형주를 무려 2조원어치 이상 내다팔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지수 등락률에서도 확인된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달 전 세계 주요 40여 개국 증시 가운데 코스닥지수는 베네수엘라 다음으로 많이 떨어졌다. 전 세계적인 유동성 랠리가 전개되면서 홍콩H(7.1%), 러시아(3.4%), 중국 상하이(3.2%), 대만(1.4%), 코스피(0.9%) 등 신흥국 증시가 강세를 보였지만 코스닥지수는 오히려 6.02% 하락했다. 최근 한 달간 코스닥시장에서 주가가 떨어진 기업 수는 807개로 전체의 70%에 달한다.
국민연금이 대형주 중심으로 구성돼 있는 인덱스 위주의 투자 패턴으로 바꾼 것은 성장잠재력이 높은 개별 종목을 발굴해 투자하던 옛 투자 방식이 별 효과를 내지 못했다는 판단에서다. 국민연금은 국내 주식에서 2014년 -5.5%, 지난해 1.3%의 저조한 수익률을 올렸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안전한 방식으로 자금을 운용하기 위해 인덱스 투자를 늘리는 것도 나름 일리가 있다"며 "하지만 성장잠재력이 높은 중소형주 발굴을 게을리하면 '한국판 테슬라' 같은 스타 벤처기업 육성은 꿈도 못 꿀 것"이라고 말했다.
[김혜순 기자 / 용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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