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임기중반 단체장 연속 인터뷰>박원순 "지금은 分權시대.. 중앙 조직·예산 대폭 이양해야 民生행정"

노성열 기자 2016. 8. 31.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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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4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시청 본관 집무실에서 “시정(市政)을 수행할 때 나무와 숲을 같이 보는 ‘민생 행정’이 중요하다”고 힘주어 말하고 있다. 김낙중 기자 sanjoong@

- 박원순 서울시장



우리사회 큰 담론에 치우쳐… 이제는 민생 챙겨야 할 때

도로·교량·지하철도 노후화… 중앙정부 적극적 지원 필요

한양도성 둘레길 157㎞ 완성… 내년 유네스코 유산 등재추진

한강, 수영할 수 있는 곳으로… 여의도 윤중로, 관광 상품화

대선출마? “일 열심히 해야죠”… “서울市政에 國政이 다 있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4일 시청 본관 6층 박원순 서울시장의 집무실을 찾았다. 과거 이명박 시장의 청계천 사업 같은 ‘큰 한 방’보다 시정 곳곳의 시민중심 전환이란 ‘디테일’에 신경 쓰던 그가 요즘 좀 바뀌었다는 말을 듣는다. 소문처럼 “여름휴가를 앞두고 책상을 깨끗이 치웠다. 1, 2 부시장에게 업무도 많이 위임했다”며 스타일 변화를 은연중 과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박원순의 꼼꼼한 실용주의는 율사 출신, 그것도 제도권보다 인권·시민변호사로 잔뼈를 키운 경력에서 비롯된 본능에 가깝다. 철저한 서면 준비와 때론 냉혹하기까지 한 변론, 일단 의뢰인을 무죄로 믿고 승소 만을 향해 치닫는 승부근성 같은 것들이다. 덩샤오핑(鄧小平)은 ‘흑묘백묘론’을 통해 “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인민을 배불리 먹일 수 있으면 된다”며 이념을 초월했다. 박원순에게도 시민을 위한다면 어떤 수단이라도 좋다. 참여연대 시절 소액주주운동이나 낙천·낙선운동, 최근 강행 중인 청년수당과 서울역고가 보행화 등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한 마디로 그는 ‘시민을 위한 관선 변호인(Public Defender)’으로 평생을 살고 있다.

―각론에 집중하다 보니 큰 정책의 방향을 놓친다는 지적이 있었다. 시장으로서 큰 방향을 설정한 게 있나.

“우리 사회가 너무 큰 담론에만 치우쳐 있었다. 조선 후기에 대비가 돌아가시면 왕이 몇 년 상을 치러야 하는가 하는 논쟁이 온 나라를 당파 속으로 몰아넣었다. 이제 민생을 중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21세기 실학운동이 우리 시대에도 나와야 한다. 거대 프로젝트보다 시민의 삶을 실질적으로 바꾸는 정책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숲과 나무의 관계처럼 숲을 봐야 한다고 생각해서 250개의 마스터플랜을 취임 후 만들었다. 분야 분야는 디테일하게 들어가지만 전체를 바꾸는 플랜을 계속 만들었다. 2개는 따로가 아니고 같이 간다. 시민의 삶이란 복지와 안전, 경제이다. 행정은 민생을 실질적으로 바꾸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봤다. 시장 취임 후 민생 관련 친환경 무상급식, 비정규직 정규직화, 반값 등록금을 한 달 안에 했다. 그런데 안전은 서울시 힘만으로는 힘들더라. 전체 하수관 중 노후하수관이 30% 이상이고 건물과 도로, 교량, 지하철도 노후화가 진행 중이다. 중앙정부의 도움이 필요한 부분이다. 도시는 전 세계가 함께 경쟁하는 것이다. 중앙정부의 배려가 있었으면 한다.”

―서울은 강도 있고 산도 있고 아름다운 도시인데 잘 연결돼 있지 않은 것 같다. 수도 서울을 보는 미래 구상은.

“고속성장 시대와 다른 패러다임으로 가져가려 한다. 서울의 랜드마크는 아름다운 자연, 역사, 사람 3가지라고 한다. 사실 서울만큼 아름다운 자연을 가진 도시는 없다. 먼저, 서울의 어제와 오늘을 한눈에 둘러볼 수 있는 한양도성 둘레길을 157㎞ 규모로 완성해 내년에 유네스코 문화재로 등재시킬 예정이다. 시의 상징인 한강의 경우 투 트랙으로 간다. 하나는 언제든지 수영할 수 있는 자연성을 회복하는 것, 두 번째는 통합 선착장을 만들고 여의도 윤중로를 관광로로 바꿔 관광상품화하는 등 시민들의 강 활용도를 높이는 것이다. 그 일환으로 만든 한강 야시장도 크게 인기를 끌고 있고, 이제 63빌딩에 면세점이 생겼으니 그 수요를 노량진 수산시장으로 연결하려 한다. 그리고 광풍처럼 몰아닥쳤던 뉴타운 정책을 전환해서 한양도성 중심으로 이화마을, 부암동, 행촌동 등 도심의 보존 가능한 문화는 지키면서 발전시키겠다. 행촌동의 경우 도입한 도시농업이 성공을 거두면서 지역의 미관을 바꾸고 있다. 하지만 어떤 사업이든 세월이 어느 정도 지나야 제대로 된 평가가 나오는 만큼 서두르진 않겠다. 가장 중요한 건 정책의 수혜자인 시민들의 반응 아니겠나.”

―사회구조가 변화하면서 저출산 극복이 굉장히 중요한 문제가 됐다. 시장님 생각을 듣고 싶다.

“저출산 문제는 출산보조금 등 돈 주는 정책으로는 해결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공공성의 확대가 답이다. 아이를 낳으면 걱정 없이 키울 수 있고, 국가가 거의 키워준다는 정도의 보장이 필요하다. 국·공립어린이집에 들어가기 위한 대기 인원이 4만 명이나 되고, 직장 맘이 출산휴가를 내려고 하면 나가라고 하고, 곳곳에 여성에 대한 범죄 위협이 있는 나라로는 해법이 없다. 국가정책의 전면적 변화가 필요하다. 서울시는 공공어린이집을 꾸준히 늘려 이미 1000개를 넘었다. 2018년까지 공공어린이집 비중 30%를 달성하면 일본 수준이 된다. 그리고 사교육 없이 마을 전체가 교육기관이 되는 혁신교육학교, 주말에 스쿨버스를 이용해 아이들을 서울 근교에서 뛰놀게 하는 등 3000개가 넘는 ‘놀라운 서울 프로젝트’도 시행 중이다. 앞으로 이 프로그램들의 실효성을 높여서 국가가 아이를 키워준다는 생각이 들도록 할 거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간 상관관계 속에서 광역단체장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벤자민 바버 교수는 저서 ‘뜨는 도시, 지는 국가’에서 대통령은 원칙을 말하지만 시장은 쓰레기를 줍는다고 했다. 자치단체로 내려갈수록 시민의 삶에 한층 더 밀접한 행정을 펼치므로 자치와 분권을 확실히 이행해줘야 한다. 시너지가 나려면 권한을 더 많이 가진 쪽에서 양보해 자치단체로 조직, 예산 등 가능한 권한을 최대한 내려보냄으로써 혁신의 에너지를 시민 삶 속으로 확산할 수 있다고 본다. 앞으로 서울시는 중앙정부와 국회에 ‘분권형 개헌’을 건의하면서 자치단체로서는 ‘자치분권’을 선도적으로 실천해 ‘아래로부터의 혁신’이 일상적으로 이뤄지는 새 흐름을 만들어 가겠다.

―마지막 질문. 여러 곳에서 대선 출마 여부를 물어도 계속 “시장 일 열심히 하겠다”고 말씀하셨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야구에 비유해 “불펜에서 몸을 풀고 있다”고 구체적으로 의지를 밝혔다. 모호한 답변만 하실 셈인가.

“(웃으며) 몸 풀 필요가 뭐 있나. 서울시정에 국정이 다 있는데.”

<프로필>

박원순(60) 서울시장은 우리나라 시민사회 운동사에 큰 획을 그은 인물이다. 1980년 사법시험 합격 후 1년 검사를 거쳐 인권 변호사로 일하던 박 시장은 1994년 참여연대를 설립하고 본격 시민활동가로 뛰기 시작했다. 정치권·공공기관·대기업의 개혁 필요성을 주장하면서 주주총회에서 ‘소액주주 권리찾기’ 운동, 국회의원 낙선·낙천 운동을 벌이는 등 기존 진보진영과 차별화된 방식의 접근법으로 주목받았다. 2002년 참여연대에서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주겠다”며 물러난 뒤, ‘아름다운재단’과 ‘아름다운가게’를 열어 ‘나눔’과 ‘기부’라는 새로운 시민운동 지평을 제시하기도 했다.

2011년 10월 서울시장 당선과정은 한 편의 드라마였다. 시민사회 진영 무소속 후보로 초반 지지율이 5%에 불과했지만 경쟁자 안철수 당시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으로부터 극적인 단일화 양보를 얻어냈다. 이후 경선에서 민주당 후보를 꺾고 본선에선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에 승리하면서 여야 양당체제를 넘어선 정치사의 새 장을 열었다. 2014년 6월 재선에 성공, 올 12월 22일이 되면 관선·민선을 통틀어 역대 최장수(1884일·약 5년 3개월) 서울시장이 된다. 시민운동가 출신답게 ‘소통’과 ‘협치’를 중시하며, SNS 팔로어 200만 명에 달하는 파워 1인 미디어이기도 하다.

△1956년 경남 창녕 출생 △경기고, 단국대 사학과 △사법시험 22회 △참여연대 사무처장 △아름다운 재단 상임이사 △제35·36대 서울시장

인터뷰 = 명승환 인하大 교수·노성열 전국부장 nosr@munhwa.com

정리=노기섭 기자 mac4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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