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이 따라 지도층된 사람들, 희생자 몫까지 빼앗으려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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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복 교수는 “영국이 선진국의 지위를 유지해온 것은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고위층이 ‘일반 국민보다 더 많은 혜택을 입었으니 은혜를 갚겠다’며 먼저 나가 목숨을 던진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29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79)는 특유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한국 고위층을 질타했다.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를 지낸 그는 평생토록 사회계급 연구에 매진해왔다.
그는 최근 출간한 ‘특혜와 책임’(가디언)에서 누리기만 할 뿐 책임지지 않는 한국 고위층에 ‘직격탄’을 날렸다. 이 책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책임)가 역사에서 어떻게 작용했는지를 살펴보고 한국 고위층의 형성 과정과 문제점을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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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교수는 영국과 미국, 일본이 200년 이상 선진국의 지위를 유지하는 요인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라고 말했다. 책에서는 ‘충성스럽고도 희생적이며 공고히 단합된 엘리트 집단이 있는 나라는 오래오래 존속한다’는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의 말이 언급된다.
육필(肉筆)을 고집하는 그는 한국의 현 상황이 너무나 심각해 횃불을 드는 심정으로 한 자 한 자 만년필로 적어 나갔다고 했다. 집필에는 1년이 걸렸지만 20년 이상 모은 자료가 바탕이 됐다. 이 책이 생애 마지막 저서가 될 것이라는 말도 나왔다. “80세가 다 된 노인은 언제 어떻게 될지 몰라요.(웃음) 한 주제만 깊이 파고든 책을 쓰고 싶지만 만만찮은 작업이라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송 교수는 한국 정치권의 천박함을 드러낸 대표적 사건으로 1992년 12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부산지역 기관장들의 대화가 공개된 ‘초원복집 사건’을 들었다. ‘똘똘 뭉쳐야 한다’ ‘지역감정이 좀 일어나야 돼’라는 저질 언어가 난무하는 것은 국가의 장래보다는 자기 쪽에 유리한 것이면 뭐든 해도 괜찮다는 사고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의 정치인과 고위 관료, 법조인 등이 지금 누리는 것을 노력에 대한 당연한 결과라고 믿는 것은 “착각”이라고 잘라 말했다. “명문대 입시, 고시 등은 대부분 0.5∼1점 차로 당락이 갈립니다. 합격자는 운이 따랐음을 깨닫고 떨어진 사람들의 몫까지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송 교수는 한국 사회가 단기간에 경제 성장과 민주화를 이루다 보니 도덕성과 희생정신을 내면화할 시간이 없었다고 분석했다. 또한 고위층 역시 맨주먹으로 상층에 오르느라 공격적이고 이기적인 행동을 하는 데도 거리낌이 없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그는 우리 역사에서도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빛난 시기가 있었다고 말했다. 신라 시대, 정확하게는 법흥왕 초기(514년)부터 문무왕 말기(681년)까지 167년간이다.
“신라 지도층은 풍부한 지식과 판단력, 정확한 정세 분석, 강한 희생정신과 도덕성으로 백성들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황산벌에서 백제 계백 장군이 이끄는 부대에 맞서 목숨을 던진 관창이 대표적입니다.”
그는 가정에서부터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시작돼야 하고, 학교와 사회에서 이를 반드시 가르쳐야 한다고 경고했다. “가장 무서운 사회는 가장 많은 것을 소유한 사람이 가장 치열한 매도의 대상이 되는 사회입니다. 이런 사회는 좌절과 폭압이 횡행해요. 많이 가진 이가 선각자가 돼야 합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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