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가격표 보고 학원 결정하나".. 유명무실 '학원 옥외가격표시제'

김재현 조선에듀 기자 2016. 8. 30.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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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9일 오후, 서울 양천구의 한 보습학원 상담실. “학원 입구에 부착된 교습비 게시표를 보고 들어오는 사람이 있느냐”고 묻자, 직원이 실소를 터트리며 말했다. “그거 보고 들어오는 사람요? 여태껏 단 한 명도 없었어요. 아, 지금 처음 보네요. 호호호.”

인근 국어 전문 학원, 수학·과학 전문 학원의 답변도 비슷했다. 한 논술 전문 학원 상담실장은 이 질문에 얼굴색을 바꾸며 이렇게 말했다. “정말 이런 말까지는 하고 싶지 않은데…. (학원) 강의가 식당 메뉴도 아니고….”

서울의 모든 학원·교습소에서 ‘학원 옥외가격표시제’가 전면시행된 지 두달이 지난 가운데, 학원가는 물론 학생·학부모 사이에서 이를 두고 ‘실효성 없는 제도’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탁상 행정, 전시 행정’의 대표 사례로 꼽아야 한다”는 냉소적 비판이 나올 정도다.

◇학원 옥외가격표시제 전면 도입… 학원은 교습비를 건물 내외부에 개시해야

학원 옥외가격표시제는 학원·교습소의 교습비를 건물 내부 혹은 외부에 반드시 게시해야 하는 제도다. 이는 교육부가 지난 2014년 12월 발표한 사교육 경감대책 중 하나인 ‘옥외가격표시제’에 따른 조치로 마련됐다. 서울시교육청은 충북교육청·대구시교육청에 이어 전국에서 세 번째로 전면 시행했다. 내년엔 경기도교육청도 해당 제도를 전면 도입한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교습비 게시 장소는 단독 건물일 경우 학원 출입문 주변에 부착해야 한다. 건물에 입주한 경우엔 학원 출입문 바깥쪽 주변과 이동 경로상 잘 보이는 위치에 게시해야 한다. 교습비 정보엔 과목명·정원·교습시간(월 기준)·교습비(분당 가격)·징수금·기타 경비 등을 실어야 한다. ‘국어 특강 월 1134분 수업 12만원(분당 106원)’과 같은 식이다.

교습비 정보를 게시하지 않으면 위반 횟수에 따라 과태료(50만 원부터 부과)와 벌점이 부과된다. 미게시·허위게시의 경우엔 적발 1회당 10점씩, 교육청이 제시한 항목 중 일부분만 게시한 경우엔 적발 1회당 5점씩 받는다. 벌점 31점을 받으면 교습 정지 7일, 벌점 66점이 쌓이면 등록 말소된다.

◇사교육비경감 차원? 학부모 43% “아무런 영향 없다”고 답해

학원 옥외가격표시제를 시행하는 가장 큰 목적은 ‘사교육비를 줄이기 위해서’다. 하지만 교육 소비자인 학생·학부모들은 정작 “학원 옥외가격표시제가 사교육비 경감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조선에듀가 초·중학생과 학부모 76명을 대상으로 ‘학원 선택 기준’에 대해 설문조사한 결과, 33명(약 43%)이 ‘주변 학생·학부모의 추천’을 꼽았다. 이어 ‘강사’(약 42%·32명), ‘학원 브랜드’(약 14%·11명) 순으로 선택했다. ‘가격’ 항목을 고른 학생·학부모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김진희(가명·서울 양천구)씨는 “교육부나 교육청이 수강료 공개를 통해 가격 경쟁을 벌일 것으로 예상하고 제도를 도입한 모양인데, 대한민국 학부모 중에 가격 보고 학원 결정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다”며 “사교육비를 줄이려면 입시 제도를 손봐야지, 학원 입구에 A4 용지 붙이는 걸로 되겠느냐”고 일갈했다.

학원가 입장도 마찬가지다. 서울 대치동의 한 종합학원 관계자는 “심하게 말하면 (교습비 게시표를 부착하기 위해 쓰이는) A4 용지와 코팅비용, 하다 못해 테이프까지 아까울 정도로 필요 없는 제도다”라며 “이미 시장 가격이 형성돼 있고, 전화나 방문 상담을 통해 수강료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는 상황인데, 이러한 제도가 무슨 의미냐”라고 했다.

제도에 허점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신수연(가명·서울 양천구)씨는 “학원비는 수강료가 전부가 아니다. 교재비, 특강비, 보충수업비 등 부대비용도 포함된다. 학원들이 옥외가격표시제 때문에 수강료를 찔끔 내린다고 해도, 기타 비용으로 충분히 충당할 수 있는 구조인 셈이다. 학부모들은 학원의 불안 마케팅 때문에 요구하는대로 각종 비용을 지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교육부나 교육청이 과연 ‘학원의 꼼수까지 제대로 확인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사실 제도 도입 이후 당장 효과를 내긴 어렵다. 하지만 교습비가 좀 더 투명하게 공개되는 문화가 정착된다면, 장기적으로는 교습비 인하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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