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읽기] 정의로운 차등과 교육 / 정용주

2016. 8. 29.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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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정용주
염경초교 교사,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장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이 지난 25일 서울국제고 사회통합전형을 50%까지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조 교육감은 이 정책이 단순한 사회적 배려 대상자 선발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 전형으로 들어온 학생들이 입학 뒤에 소외감을 느끼는 문화가 형성되지 않도록 학력신장 프로그램이나 학교심리적응 프로그램 등을 마련하고, 학업에 전념하도록 생활비까지 지원하겠다고 설명했다. 더 나아가 지자체, 시민단체와 연계하여 입학 전부터 재학 중이나 졸업 후 대학 진학, 대학 진학 이후까지 통합돌봄서비스를 하는 종합적인 지원 계획을 목표로 삼고 있다고 한다. 조 교육감은 이 정책의 성격을 ‘정의로운 차등’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의로운 차등은 당장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교육에서 기회의 평등을 제공하는 선에 그쳐야 하며, 결과의 불평등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당장 특정 분야에 재능이 있는 학생을 선발하는 것이 특목고인데, 사회적 배려 대상자 선발을 확대하는 것은 건학 목표에 맞지 않으며, 공립 특목고의 학력이 떨어지거나 역차별이 생길 수 있다는 반발이 나온다. 학부모들은 형편이 어려운 아이를 배려하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저소득층이 아니라는 이유로 우수한 일반 학생이 떨어지는 것은 역차별이라며, 일반 전형의 문이 지나치게 좁아지는 것 같다고 문제를 제기한다.

그러나 정의로운 차등은 우리 사회에서 용인 가능한 불평등의 조건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우리 헌법은 공동체 구성원들이 평등한 자원으로 출발하여 자신의 삶을 자율적으로 영위해 나가며,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경제적 배경, 성, 인종, 장애 등과 같은 주어진 여건 때문에 인간의 존엄이 훼손당할 위험을 최소화하도록 하고 있다. 이것은 교육이 추구해야 할 근본적인 지향이기도 하다. 그러려면 부모의 경제적 수준에 상관없이 누구나 의미있는 교육적 경험을 통해 성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정의로운 차등’이 지렛대 구실을 해야 한다. 그래야만 마을과 함께하는 교육, 함께 성장하는 배움이 가능하다. 또 우리가 대한민국이라는 공통의 울타리 속에서 교육을 받으면서, 이 사회가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각자가 존엄하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사회통합이 실현될 수 있다.

조 교육감의 정의로운 차등이 다른 교육정책으로 확산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이 정책을 좌파 정책으로 낙인찍으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정의로운 차등이야말로 자유주의와 시장경제의 원리가 현실에서 작동하기 위해 필요하다. 개인의 자유로운 삶, 시장에서의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기회, 과정, 결과의 영역에서 평등이 고려되어야 한다. 특히 개인의 능력과 노력의 결과로 얻어지는 시험점수와 대학, 더 높은 성취는 경쟁의 원천적 속성이기 때문에 교육에서 분배의 평등은 성립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승자 독식의 완벽한 불평등은 경쟁에 참여하는 경쟁자를 축소함으로써 궁극적으로 경쟁 자체의 유효성까지 해치게 된다. 여기에 더해 모두가 승자가 되는 경쟁은 없기 때문에 매 단계에서 ‘정의로운 차등’의 원리가 구현될 때, 각자는 경쟁에서 최선을 다해볼 것이며, 시장 전체로는 효율성을 내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정의로운 차등의 원리는 자본주의 체제의 지속을 위해서라도 서울국제고를 넘어 특목고로, 그리고 교육정책 전반으로 확산되어야 한다.

조희연 교육감이 말한 ‘정의로운 차등’은 좌파 교육감의 공약이 아니라 이념에 상관없이 가족이나 사회로부터 차가워진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고 마지막 한 아이까지 웃을 수 있도록 손을 내미는 인간의 얼굴을 한 교육정책이다. 한국 사회 자유주의의 미래를 위한 고민으로 읽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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