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추경안 여야 합의, '박수'쳐야 할까? '야유'해야 할까?

남승모 기자 입력 2016. 8. 29.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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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협'이란 정치적 수사(修辭)의 이중성


사상 처음으로 추가경정예산안 처리가 무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던 지난 25일, 여야가 추가경정예산안을 포함한 각종 현안 처리에 극적으로 합의했습니다. 야당이 추경안 처리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웠던 조선·해운업 부실 규명 청문회 증인 채택 문제를 양보하면서 돌파구가 마련됐습니다.
 
하지만 야당, 특히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핵심 증인이 빠진 청문회가 무슨 소용이 있냐며 원내 지도부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실제로 조선·해운업 부실 규명 청문회에서 당시 경제부총리였던 최경환 의원과 청와대 경제수석이었던 안종범 정책조정수석이 빠질 경우 정부의 실책을 제대로 따질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큰 것도 또한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이번 합의는 여야가 ‘대화와 타협’을 통해 일궈낸 ‘협치’의 결과일까요, 아니면 그저 서로 좋은 게 좋은 ‘주고 받기 식 타협’의 결과일까요?
 
● ‘타협’, 좋은 게 좋은 거?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추경안 협상과정에서 ‘최종택’(최경환, 안종범, 홍기택)을 청문회 증인으로 세우지 않는 한 추경안 처리는 불가하다는 입장을 고수해왔습니다. 이들 3인방이 조선·해운업 부실화 과정과 관련된 이른바 ‘서별관회의’의 핵심 인사인 까닭입니다.
 
추경안에는 조선·해운업 부실화의 한 축을 담당한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지원금 1.4조 원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사실 부실 원인을 명확히 규명하지 않은 채 부실화의 빌미를 제공한 기관에 추경으로 예산부터 지원하는 것은 선후가 뒤바뀐 조치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야당이 ‘최종택’에 대한 증인채택을 요구한 것은 애당초 협상용 카드였다는 게 여당 측의 주장입니다. 야당 내부에서도 ‘(동료 의원인) 최경환 의원에게 어떻게 나오라고 하느냐’, ‘담당 상임위인 운영위원회도 아닌데 청와대 참모를 불러내는 건 좀 그렇지 않느냐’라는 분위기가 있었다는 겁니다.
 
진실은 알 수 없지만 협상과정에서 야당 측이 백남기 농민 사건에 대한 청문회를 요구하거나 세월호 진상조사특위 활동기간 연장을 요구하는 등 모종의 ‘타협’안을 제시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실제로 합의문에는 최경환 의원과 안종범 정책조정수석의 증인채택이 명시되지 않았습니다. 대신 조선·해운업 청문회를 연석회의 형태로 개최하고 백남기 농민 사건에 대한 청문회 추가로 연다는 내용만 추가돼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26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최경환, 안종범 두 사람이 빠진 증인 명단을 의결했습니다.
 
여당은 정권 실세 두 사람을 보호하는데 성공하고 야당은 시민단체에서 강력하게 주장해온 백남기 농민 사건 청문회를 얻어내는 여야 모두 ‘좋은 게 좋은’ 타협점을 찾은 셈입니다. 이 경우 ‘타협’은 정치적 ‘거래’의 냄새를 풍깁니다. 하지만 꼭 그렇게만 볼 일일까요?
 
● ‘대화와 타협’, 협치의 전제
 
타협의 뜻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어떤 일을 서로 양보하여 협의함”이라고 돼 있습니다. 내 것만 주장하지 않는 태도입니다. 타협 앞에 ‘대화’라는 말을 넣으면 뜻은 더욱 긍정적인 힘을 갖게 됩니다. 여야 간 대치로 정국이 파행을 거듭할 때 우리는 통상 ‘대화와 타협’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곤 합니다.
 
여기서 ‘타협’은 정치적 수사로서 ‘협치’를 의미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이번 여야 간 합의를 해석하면 나쁘지 않은 결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여당은 정권 핵심인사들이 공격 받는 것을 막았고 야당은 자신들의 지지층에서 요구해온 백남기 농님 사건 청문회를 얻어내는 동시에 동력이 약한 개별 상임위 차원의 청문회를 특위 수준이라고 있는 할 수 있는 연석회의 형태로 얻어냈기 때문입니다.
 
핵심 증인이 빠진 상태에서 진행하는 청문회가 무엇을 밝힐 수 있겠느냐는 회의론이 있는 게 사실이지만 전례로 볼 때 현역 정치인이 증인으로 나선 경우 설전만 벌이다 끝나거나 제 식구 봐주기 식으로 끝났던 사례도 적지 않았습니다.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안이 있을 때에는 증인만 불러다 놓고 오히려 여야 의원들끼리 서로 대리전을 벌이는 볼썽 사나운 장면도 없지 않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물론 핵심 당사자들을 상대로 진실을 규명하는 게 가장 좋습니다. 하지만 최선책은 아니더라도 국회 파행 같은 정치적 비용을 고려해 차선책을 모색해왔던 게 현실이기도 합니다. 특히 현재 정치 지형이 여소야대 상황인 점을 감안하면 야당 역시 장기 파행이 부담스러웠을 수 있습니다.
 
● 지금 정치권에 필요한 건?
 
앞서 말씀 드렸던 것처럼 ‘타협’은 그 쓰임에 따라 이중적 의미를 갖습니다. ‘정치는 생물’인지라 상황에 따라 의미가 변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상황이 복잡하고 힘들어도 대화와 타협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습니다.
 
민주주의는 원래 시끄러운 제도입니다. 서로 자기 주장을 얘기하고 합의점을 도출한다는 건 자기 주장만 고집할 수 없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건 절대 옳다’고 생각하는 일도 관점을 바꾸면 달라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정치권이 자기 지지층만 바라 보고 강 대 강 대치를 고집하기 보다 비록 차선책처럼 보일지라도 열린 마음으로 해법을 모색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남승모 기자smnam@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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