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 지원만 쳐다보는 구조개혁 혈투..대학들 제 발등 찍을라

2016. 8. 29.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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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 지원에 초점 맞춰 치밀한 분석 없이 학과 통폐합..대학 구성원 반발 초래 이종배 의원 "구조개혁 기획·신청 모두 졸속..돈 앞세운 대학 통제 위험수위"
한국교통대 증평캠퍼스 학생들이 지난 1월 구조개혁안에 반발해 총장실 점거농성을 하는 모습[연합뉴스 자료사진]

재정 지원에 초점 맞춰 치밀한 분석 없이 학과 통폐합…대학 구성원 반발 초래

이종배 의원 "구조개혁 기획·신청 모두 졸속…돈 앞세운 대학 통제 위험수위"

(전국종합=연합뉴스) 공병설 기자 = 한국교통대 유아특수교육학과는 국립대 학과로는 국내에 유일하다. 충북에서도 하나뿐이고 전국을 통틀어도 유아특수교육학과가 설치된 대학은 8개뿐이다.

교통대는 2012년 신설 승인을 받은 이 학과의 폐지를 추진 중이다.

유아특수교육학과 폐지가 포함된 구조조정안을 둘러싸고 이 대학은 심각한 내홍을 겪었고, 장애인단체까지 들고일어났다. 이 학과 폐지의 목표로 삼았던 정부의 재정 지원도 받지 못했다.

이런 반발과 부작용을 무릅쓰고, 갓 신설한 학과를 교통대는 대체 왜 없애려고 할까.

표면상 이유는 정원(13명)이 적어 학과 운영이 힘들다는 거지만, 진짜 이유는 대학 평가에 있다.

대학들은 '구조 개혁'을 앞세운 교육부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아 재정 지원을 받으려는 목적으로 너나없이 '돈 안 되는' 학과를 없앤다.

29일 새누리당 이종배 의원(충북 충주·교육문화체육관광위)이 교육부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현재 시행 중인 대학 재정 지원 사업은 모두 9개. 연간 1조5천억 원(2016년 기준) 규모다.

'두뇌한국21'로 잘 알려진 BK21 플러스 사업(2천725억원)을 비롯해 대학 특성화 사업(CK·2천467억원), 특성화 전문대학 육성사업(SCK·2천972억원), 산학협력 선도대학 육성사업(LINC·2천240억원), 고교교육 정상화 기여대학 지원 사업(459억원), 학부교육 선도대학 육성사업(ACE· 594억원)이 대표적이다.

올 들어서는 산업연계교육 활성화 선도대학 사업(PRIME·2천12억원), 대학 인문역량 강화사업(CORE·600억원), 평생교육 단과대학 지원사업(평단·300억원), 이공계 여성인재 양성사업(WE-UP·50억원)이 신설됐다.

대학 재정 지원 사업의 가장 큰 문제점은 대부분 체계적 분석이나 전망 없이 졸속으로 이뤄진다는 것이다.

올해 초 전국 대학의 화두였던 프라임 사업이 대표적 사례다.

이 사업은 '사회수요 중심의 자율적인 대학 체질 개선을 통해 학생의 진로 역량 강화와 인력 불일치 해소'를 정책 목표로 연간 2천억 원씩, 3년간 모두 6천억원 이상을 지원한다.

평생교육단과대 사업과 관련해 총장 사퇴 요구 시위가 벌어진 이화대여 졸업식[연합뉴스 자료사진]

사업 일정을 보면 지난해 1월 신설 발표가 나고 그해 9월 교육부 예산이 반영됐다. 이어 10월 사업 기본계획 마련 및 제1차 공청회가 열린 뒤 12월에야 '대학 전공별 중장기 인력수급 전망'이 발표됐다.

이종배 의원은 "사업 구상과 예산 반영이 다 끝난 뒤에야 사업 근거가 되는 전망자료가 나와 선후가 완전히 뒤바뀌었다"며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는 사업인데도 목표 설정조차 제대로 안 됐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인력 공급과 구인 인력 수요 격차가 가장 큰 분야가 전문대로 나타났는데도 프라임 사업은 4년제 대학에 집중됐다.

최근 문제가 된 이화여대 평생교육단과대 사업도 지난해 12월 공고 후 원래는 3월까지 참여 대학을 선정할 계획이었다. 다른 사업들과 겹쳐 선정 대학 수가 목표치에 미달하자 5월에 추가 선정 공고를 내서 7월 중순 최종 결과를 내놨다.

이처럼 많은 사업이 계획서 준비 기간이 고작 두세 달밖에 없어 학생, 교수 등 대학 구성원 의견 수렴이나 합의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교육부의 평가 기준표를 보면 구성원 합의 여부에 대한 배점도 100점 중 3점에 불과해 나중에 내분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이화여대 학생들은 평생교육단과대 사업 반발에 앞서 지난 4월에는 재학생 5천 명이 프라임 사업 반대에 서명한 뒤 대학본부에 제출했다. 학교 쪽이 이를 무시하고 사업계획서를 교육부에 제출하자 모금을 통해 20여 개의 '근조' 화환을 마련해 정문 앞에 설치하기도 했다.

대학 재정 지원 사업의 또 다른 위험 요소는 공학계열 편중 지원에 따른 공급과잉 우려다.

프라임 사업에 선정된 21개 대학은 인문사회 계열에서 2천500명, 자연과학 계열에서 1천150명, 예체능에서 779명을 줄이는 대신 공학계열에 4천429명을 늘릴 예정이다.

일방적인 공대생 양성 사업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교육부의 '전문대 및 일반대학 공학계열 취업률 현황'에 따르면 2011∼2014년까지 최근 4년간 공학계열 취업률은 지속적으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대 취업률은 76.1%에서 75.9%, 75.0%, 73.3%로, 전문대는 72.2%에서 72.0%, 70.6%, 69.4%로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지금도 공학계열 인력이 남아도는 상황에서 공학계열 입학 정원을 일방적으로 늘리면 장기적으로 공학계열 인력의 공급과잉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대학 재정 사업의 모순은 이뿐만이 아니다.

평생교육단과대 사업 항의농성하는 이대생들과 최경희 총장(왼쪽)

인문계 정원을 줄이는 프라임 사업과 인문계 역량을 키우는 코어 사업이 동시에 추진되는 것을 두고 '병 주고 약 주는' 교육행정이란 지적도 나온다.

재정 지원 사업은 목표가 모두 다른데도 평가지표는 80% 이상 유사하다.

한 사업에 선정된 서울, 수도권 대학이 계속 선정되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나타나 결국 지방대가 몰락하는 결과를 낳는다.

지원받은 돈으로 다른 사업 신청을 준비해 추가 재정 지원을 따낸다. 한마디로 '돈 놓고 돈 먹기'다.

대학가와 교육단체들은 돈으로 대학을 통제하려는 정부의 재정 지원 방식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지난 6월 대학교수 152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교육부의 재정 지원 사업이 교육과 연구환경 개선에 도움이 되느냐'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는 대답이 70.4%에 달했다.

대학 총장들은 올해 하계 세미나에서 "개별 사업에 선정된 대학에 재정 지원을 하는 방식 말고 기본 요건을 갖춘 대학에 일정 수준의 지원을 해주는 총괄지원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는 대정부 건의문을 채택했다.

상대적 수혜자로 꼽히는 전국 공과대학 학장들조차 7월 정기총회에서 "정부가 주도하는 연구과제 선정에 문제가 많다"며 재정 지원 사업 혁신, 대학 자율성 강화를 촉구한 것은 현 대학 평가와 지원 방식에 문제가 산적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종배 의원은 "정부의 대학 재정 지원 사업은 뚜렷한 목표와 근거 없이 진행되는 측면이 많다"며 "프라임 사업처럼 교육부 스스로도 사업 실효성이 낮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업은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k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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