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현장학습차량 음주감식 학교서 하라"는 경찰

장은교·경태영 기자 2016. 8. 29.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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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경기 일산 경찰서가 최근 관내 초·중·고교 현장학습차량 운전기사에 대한 음주 여부 감식을 교사가 직접 하라고 통보한 것으로 28일 확인됐다. 음주감지기 구매까지 학교 측에 떠넘기며 구입처의 전화번호를 기재했다. 세월호 참사 후 학교에 대한 안전관리 감독을 강화하겠다고 강조하던 경찰이 불과 2년여 만에 학생들의 안전을 뒷전으로 팽개쳤다는 비판이 나온다.

일산경찰서는 지난 24일 관내 90여개 학교에 ‘현장학습차량 운전자 음주감지 관련 협조 요청’ 공문(사진)을 보냈다. 경찰은 공문에서 “관내 초·중·고교 현장학습차량 운전자 음주감지 관련하여 아래와 같이 요청하니 협조하여 주시기 바란다”며 ‘협조내용’으로 “각 학교별로 음주감지기 구비, 경찰관 임장(현장에 나가는 것)불가 시 자체감지 후 이상 있을 시에만 경찰에 통보”라고 밝혔다. 학교가 직접 음주감지기를 구입해 버스기사의 음주 여부를 확인한 뒤 음주가 의심될 경우에만 경찰에 연락하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는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가 밝힌 ‘수학여행과 수련활동 현장체험학습에 대한 안전관리 강화’ 방침을 거스르는 것이다. 교육부는 당시 학교가 지방경찰청 또는 관할경찰서 교통안전부서에 요청해 출발 당일 학생 수송버스 운전자에 대한 음주측정을 하도록 했다. 당시 안전 문제가 부각되면서 경찰도 적극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번에 보낸 공문에서 “변경된 출발시간을 미통보해 경찰관 장시간 대기 및 타 학교 음주감지시간이 지연되고, 음주감지 요청건보다 더 급박한 112신고 및 대형사고 출동으로 음주감지 장시간 지연되거나 미실시되는 경우가 있다”며 “112신고 등 경찰 본연의 업무가 과중되는 가운데 동시간대 음주감지건이 몰려 부득이하게 요청드리니 양해바란다”고 밝혔다. 경찰 스스로 현장학습 안전관리는 경찰 본연의 업무가 아니라고 보고 음주감지는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업무라는 인식이 드러나 있다.

경찰은 음주감지기를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이 공문에 ‘감지기 구입처’ 사무실 두 곳의 전화번호만 기재했다.

공문을 받은 한 학교 교사는 “경찰 음주측정기는 너무 비싸서 30만원대 음주감지기를 구입했다”며 “함께 아이들을 인솔해야 할 입장에서 기사에게 음주감지기를 내밀기도 쉽지 않고, 경찰도 이 점을 알고 직접 음주측정을 해 왔다. 경찰이 사전협의도 없이 이런 식으로 학생들의 안전관리를 떠넘기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경찰은 “경찰이 학교에 안 가겠다는 것이 아니고, 혹시라도 사건·사고 등이나 여러 학교에서 한꺼번에 요청이 와 출동이 지연될 경우 학생들이 20~30여분씩 기다려야 하는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만약에 대비해 음주측정기가 아닌 음주감지기를 준비했으면 하는 취지”라며 “일부 학교에서는 이미 학교예산으로 음주감지기를 구입해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은교·경태영 기자 ind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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