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AS] 가해자 40년형 '윤일병 사건', 군은 변하지 않았다

2016. 8. 28.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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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아직 규명되지 않은 부실수사 의혹
여·야 합의 군 옴부즈맨도 도입안돼

육군 28사단에서 선임병들의 상습적인 가혹행위와 폭행으로 끝내 숨진 윤아무개 일병의 납골함.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8월25일 대법원 2부(주심 김창석 대법관)는 ‘윤 일병 폭행사망 사건' 재상고심에서 주범 이아무개(28) 병장에 대해서만 살인죄를 인정해 징역 40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습니다. 폭행에 가담한 하아무개(24) 병장과 지아무개(23)·이아무개(23) 상병은 폭행치사죄를 인정해 징역 7년, 자신이 관리·감독하는 병사의 범행을 방조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유아무개(25) 하사에겐 징역 5년이 선고됐습니다.

윤 일병을 집단 폭행하고 가래침을 핥게 하는 등 상습적으로 가혹 행위를 한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은 이로써 일단락됐습니다. 그렇지만 제2의 윤 일병 사건을 막기 위한 군의 변화는 여전히 요원합니다. 19대 국회 여·야가 합의해 시행을 권고했던 ‘군 옴부즈맨(군 인권보호관)’ 제도도 아직 현실화되지 않았습니다. 2014년 4월7일 윤일병이 숨진 이후 지금까지 국방부가 이 문제에 어떻게 대처해왔는지 되짚어 보았습니다.
윤 일병 사망 닷새 뒤인 2014년 4월11일 군 헌병대가 실시한 ‘현장 검증’ 사진 중 일부. 한겨레 자료사진

1. ‘질식사→좌멸증후군·속발성 쇼크사’ 사인 바뀐 수사

군은 사건 초기 윤 일병이 ‘질식사’했다고 강조했다. 2014년 5월, 28사단 검찰부는 윤 일병이 기도 폐쇄에 의한 뇌 손상 등으로 사망했다고 판단한다. 국방부 조사본부 과학수사연구소가 군 병원 의무 기록을 참고하고, 부검을 한 이후 사인을 ‘기도 폐색성 질식사’로 추정했기 때문이다. 또 주범 이아무개 병장 등 4명이 심폐소생술을 하는 등 살인의 고의성이 없었다며 살인이 아닌 상해치사 혐의로 기소한다.

그러나 7월31일 군인권센터의 폭로로 윤 일병 사건이 세간에 알려진 이후인 그해 9월 이 사건을 이관받은 3군 사령부 검찰부는 공소사실을 바꾸었다. 윤 일병 사망 이유도 “장기간 지속적인 폭행 등 가혹 행위로 인한 ‘좌멸증후군(근육 조직이 붕괴하면서 유독물질이 발생해 장기 등에 이상이 생겨 생명 위협)’ 및 ‘속발성 쇼크(외상으로 대량 출혈이 발생하면서 생기는 현상)’ 등이 중요 원인”으로 정정됐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부터 “사망 원인으로 광범위한 다발성 좌상에 의한 속발성 쇼크를 우선적으로 고려할 수 있다”는 내용의 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주범 등 4명에 대해서는 ‘사고 당시 윤 일병이 이상징후를 보이는 것을 알고도 구타했다’며 살인 혐의를 적용한다. 이렇게 공소사실을 바꾼 것은 군이 스스로 초기 수사가 부실했음을 인정한 셈이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왜 사인이 바뀌었는지, 수사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군으로부터 설명을 듣지 못했다고 했다. 2014년 9월 윤 일병 유가족은 국방과학수사연구소 법의관, 28사단 검찰관, 28사단 헌병대장 등 수사 관련 인사 5명에 대한 처벌을 요구하며 국방부 검찰부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사건을 축소·은폐한 의혹을 규명해달라는 취지다. 국방부 검찰부와 고등군사법원은 증거불충분·무혐의로 5명에 대해 불기소 결정을 내렸다. 유가족은 이러한 결정에 불복해 재항고를 했고, 현재 대법원 3부가 사건을 심리 중이다.

2014년 10월30일 경기도 용인 3군사령부 군사법정에서 열린 ‘윤 일병 구타 사망사건’ 선고공판이 끝난 뒤 윤 일병의 어머니가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오열하고 있다. 용인/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2. ‘외부서 견제’ 군 옴부즈맨 10여 년째 무산

윤 일병 사건을 계기로 군을 믿지 못하겠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2014년 10월 국회에서는 여·야 의원들로 구성된 군 인권개선 및 병영문화혁신 특별위원회(위원장 정병국)가 출범한다. 국회 특위는 지난해 7월24일 활동을 마치며 병영문화 개선을 위한 7개 분야 39개 과제를 권고했다. 이날 국회는 본회의를 열어 국회 특위가 제시한 혁신 과제를 조속히 이행할 것을 정부에 촉구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재석 의원 222명 가운데 찬성 216명, 반대 2명, 기권 4명으로 채택했다.

권고 사항에는 군 내부의 인권침해나 불법행위를 신고받아 처리하는 기구인 군 옴부즈맨(군 인권보호관) 제도 도입도 포함됐다. 이 제도는 10여 년째 국방부 반대로 도입이 무산됐다. 국회 특위는 군 옴부즈맨을 국가인권위원회에 두고 사전 통보 없이 불시에 방문해 조사할 수 있는 권한과 자료제출·진술 요구권을 부여하자고 제안했다. 지금도 국가인권위나 국민권익위에 권리구제를 요청할 수 있으나 인력과 권한이 턱없이 부족해 구제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러한 권고는 외부에서 폐쇄적인 군을 견제할 수 있어야, 장병들의 인권 보호가 가능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군 옴부즈맨 제도는 결국 현실화되지 못했다. 국방부는 군 내부에도 다양한 인권침해 구제 수단이 있고, 보안 문제가 우려된다며 제도 도입에 부정적이다. 19대 국회에서는 입법부 등 군 외부에 군 옴부즈맨을 설치하자는 법안이 여러 건 발의됐으나 논의는 지지부진했다. 독일에서 시행 중인 군 옴부즈맨은 국회에 소속돼 있다. 국회 특위는 부대 지휘관의 지휘·감독을 받아 독립적이고 공정한 재판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을 받아온 국방부 산하 특별법원인 군사법원 폐지도 권고했다. 그러나 국방부가 지난해 발표한 병영문화혁신 실행계획을 보면 “현 안보 상황을 고려해 군 사법제도의 기본 근간은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2014년 8월4일 한민구 국방부 장관(가운데)이 서울 용산구 국방부 브리핑룸에서 육군 28사단 윤아무개 일병 사망사건과 관련해 대국민사과를 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3. 한민구 국방장관 “많은 장병들 인권 보장돼”

윤 일병을 비롯한 수많은 장병들이 억울하게 희생당한 끝에, 지난해 말 ‘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군인복무기본법)’이 국회에서 통과돼 올해 6월부터 시행됐다. 이 법에는 군인 기본권 및 제한, 의무 등이 ‘법률’로 규정돼 있다. 이로써 1966년 제정된 ‘군인복무규율’(대통령령)은 사라졌다. 군인복무기본법 제42조 1항엔 ‘기본권 보장 및 기본권 침해에 대한 권리구제를 위하여 군 인권보호관을 두도록 한다’고 돼 있다. 실제로 이러한 제도를 운용하려면 따로 법률을 제정해야 하지만, 군 옴부즈맨 도입 근거를 마련한 셈이다.

그러나 올해 7월5일 열린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윤 일병 사건을 계기로군 옴부즈맨 제도 도입·군사법제도 개혁을 촉구하는 김종대 정의당 의원에게 “작은 것을 가지고 전체를 문제시(해선 안 된다)”고 해 논란을 빚었다. 한 장관은 군대가 인권이 보장된 환경이라고 강조했다.

“우리 군이 64만의 병력이 들어와서 복무하고 있는 조직입니다. 의원님이 말씀하신 안타까운 사건 사고도 있지만 많은 장병들이 굉장히 보람을 느끼면서 인격이나 인권이 보장된 가운데서 근무하는 것도 현실입니다. 자칫 잘못 이해되면 군 전체가 그런 환경으로 이해될 수가 있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올해 1월 국가인권위원회가 내놓은 직권조사 자료를 보면 윤 일병 사건이 발생한 해당 부대원 83명 가운데 22명(26%)은 윤 일병의 구타·가혹행위를 직접 목격했으며, 9명(11%)은 간접적으로 들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들은 구타·가혹행위를 신고할 수 있지만 결국은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신고로 인해 부대원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거나 불이익을 받을 것을 우려해 이러한 일을 알리지 않았다고 했다. 2014년 건양대학교 군사과학연구소에서 병사 511명과 간부 25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병사 65.8%는 군대 내 인권침해가 있다고 답했다. 반면, 간부 79.3%는 현재 병사들의 인권 수준을 ‘좋은 편’이라고 평가했다.

대정부질문에서 한 장관은 “군 인권보호관 도입은 관계부처, 국회와 협의해 신중하게 처리하겠다”면서도 “(설치를 한다면) 국방부에 두는 것이 적절하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지난 2014년 8월4일 윤 일병의 처참한 마지막 순간이 폭로되자, 한 장관은 대국민 사과를 했었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절박한 심정으로 튼튼한 국방태세를 확립한 가운데, 국민들이 안심하고 신뢰할 수 있는 선진병영문화를 조성하겠습니다.”

윤 일병 사건은, 마지막이 될 수 있을까.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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