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수익사업이 된 '제3자 동의'가 뭐길래

김수미 입력 2016. 8. 28. 09:18 수정 2016. 10. 3.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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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인은 동의 안받아도 매매 가능

롯데홈쇼핑과 홈플러스가 회원가입이나 경품이벤트에 응모하기 위해 고객이 제출한 개인정보를 다른 회사에 팔아 막대한 이득을 챙긴 사실이 드러나며 공분을 사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로선 두 회사를 법적으로 제재할 길이 없습니다.

바로 고객들이 자신의 정보를 제3자에게 제공하는데 동의했기 때문인데요. 대체 ‘3자 제공’이 뭐길래 기업들이 고객정보를 팔아 수백억원을 챙겨도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걸까요. 최근에는 대학교수나 연예인 등 유명인이나 공인들의 개인정보는 당사자의 동의 없이도 제3자에게 제공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습니다. 고객의 개인정보가 기업에 수익사업으로서 효자 역할을 톡톡히 할 듯합니다.

이에 ‘제3자 동의’를 둘러싼 논란을 일문일답 형식으로 짚어봤습니다.

-‘제3자 제공’이란 무엇인가요? 기업들이 내 정보를 돈으로 사고팔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보통 온라인 사이트에 회원으로 가입하려면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 동의’라는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합니다. 서비스제공자가 회원가입의 조건으로 주민등록번호, 주소, 이메일 주소, 휴대전화 번호 등을 달라며 그 정보를 활용하는데 동의해달라는 겁니다.

개인정보는 이용에 꼭 동의해야 하는 필수항목과 동의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선택항목이 있습니다.

제3자 제공 동의란, 내가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가입하려고 한 A회사에 내 개인정보를 주면서, 이 정보를 B, C, D 등 다른 회사에도 줘도 된다고 허락하는 겁니다. 제3자 제공은 신용카드사 등 일부 예외를 제외하면 대체로 선택항목입니다.

그런데 회원가입시 체크해야 할 항목도 여러개이고 설명도 길다보니 다 읽어보지 않고 일괄적으로 ‘동의’에 표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때 무심코 동의한 항목 중에 ‘제3자 제공’도 있었던 겁니다.”

-동의만 받으면 기업들이 고객정보를 매매하는 것이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건가요?

“정보통신망법과 개인정보보호법에는 ‘이용자의 동의 없이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제3자에게 넘기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 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습니다. 따라서 A라는 회사가 이용자의 동의만 얻었다만 개인정보를 얼마든지 다른 회사에 넘겨줄 수 있는 겁니다.

다만 제3자 제공 동의를 받을 때 어떤 어떤 회사에 내 정보를 넘길지 ‘제3자’의 명단이 함께 뜨는데요. 제공 횟수에 대한 제한이 딱히 없다보니 제3자 업체가 70곳이 넘는 곳도 있습니다. 동의 한 번 받고 사방에 고객정보를 파는 셈이죠.”

-하지만 고객들은 자신의 개인정보를 마케팅에 활용하는 정도로만 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나요?

“고객들은 내 개인정보를 제3자에게 넘겨준다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갖기도 하지만, 개인정보 유출사고가 워낙 자주 일어나다보니 제3자 정보 제공에 둔감해진 경향도 있을 것입니다. 가끔 온라인 사이트에서 개인정보를 3자에게 제공하는 조건으로 쿠폰이나 금액권을 주는 광고가 있는데, 대부분의 참여자들은 ‘보험에 가입해라’, ‘무슨 상품 사라’ 정도의 마케팅 전화나 받게 될줄 알고 동의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런 믿음과 달리 기업들이 고객의 개인정보을 돈으로 사고 팔았던 겁니다.

롯데홈쇼핑은 2009년 2월부터 2014년 3월까지 5년간 인터넷 회원으로 이름을 올린 고객 정보 324만여건을 3개 손해보험사에 팔아 37억3600만원의 매출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과징금은 고작 1억8000만원에 불과했습니다.”

-고객정보 팔아서 37억 넘게 벌었는데 과징금은 1억8000만원밖에 안내는 이유가 뭔가요?

“방통위가 문제삼은 것은 롯데홈쇼핑이 보험사들에게 고객정보를 돈받고 팔았다는 것이 아니라, 고객의 ‘동의 없이’ 정보를 넘겼다는 겁니다. 롯데홈쇼핑이 보험사에 넘긴 개인 정보는 고객 대다수가 ‘제3자 제공 동의’를 했고, 2만9000여명만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2만9000명이 동의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만 과징금을 부과해 과징금 액수가 적었던 겁니다.”

-고객들에게 정보 제공에 대한 동의만 받았지, 매매해도 된다는 동의를 받은 것은 아니지 않나요?

“법의 허점 때문입니다. 정보통신망법과 개인정보보호법에 이용자의 동의 없이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제3자에게 넘기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 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지만 동의여부만 명시하고 있지, 돈을 주고 사고팔면 안된다는 내용이 적시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방통위도 고객정보를 사고파는 기업에 도의적 비판은 할 수 있지만 사전에 제3자 동의를 다 받았다면 처벌할 길은 없다는 입장입니다.

홈플러스 사례도 비슷합니다.

홈플러스가 2011∼2014년 사이에 11번의 경품행사를 진행하면서 참여한 고객들의 개인정보 2400만건을 보험사에 팔아 231억7000만원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경품 추첨에 쓰이는 줄 알고 이름, 주민번호, 핸드폰 번호, 집주소를 남겼는데 이걸 돈 받고 팔았다고 하니 고객들이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정도 수익을 챙긴 것을 보면 진짜 경품을 주려고 행사를 했다기 보다는 고객정보로 수익사업하려고 경품이벤트를 미끼로 삼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생길만 합니다.”

-홈플러스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어떻습니까?

“지난해 기소된 홈플러스 임원들은 1심에 이어 최근 2심 재판에서도 무죄를 받았습니다.

재판부는 홈플러스가 경품 응모권에 ‘개인 정보가 보험회사 영업에 활용될 수 있다’는 고지를 했기 때문에, 이 사실을 알고 경품행사에 응모한 것은 고객들이 제3자 정보제공에 동의했다고 본 것입니다. 또 홈플러스가 고객 개인정보를 돈을 받고 팔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당사자에게 공지하지 않은 것도 법적 의무가 아니라고 판결문에 적시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홈플러스가 응모권에 1mm 크기의 글씨로 이런 내용을 고지했다는 겁니다. 마트 한 복판에서 응모권 하단에 1mm크기로 쓰여진 공지사항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읽어볼 고객이 얼마나 있을까요.

이 때문에 1심에서 무죄 판결이 나왔을 때 시민단체들이 재판부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1mm 크기로 쓴 서한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기업들이 동의만 받았다면 고객정보를 아무데나 팔아서 얼마의 이득을 취하든 법적으로 제재할 수 없는건가요?

“현재는 그렇습니다. 당초 법을 만들 때 동의 없이 정보를 주고받는 문제만 생각하고, 설마 매매할 것이라는 생각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최근 공인이나 유명인은 당사자의 동의 없이도 개인정보를 제3자에게 제공하거나 매매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습니다.”

-당사자가 원치 않는데도 개인정보를 넘기거나 매매할 수 있다는 뜻인가요?

“네. 최근 한 공립대 교수가 자신의 사진과 이름, 출생연도, 직업, 직장, 학력, 경력 등을 수집해 제공한 업체 등을 상대로 ‘개인정보를 무단으로 제3자에게 제공해 손해를 봤다’며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 소송을 냈는데, 대법원이 원심을 깨고 원고 패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습니다.

네이버와 SK커뮤니케이션즈, 디지틀 조선일보 등은 정치인, 공무원, 연예인 등 유명인들의 신상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해 ‘인물검색’, ‘인물사전’ 등의 코너에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네이버 등이 인물정보를 당사자 동의 없이 다른 회사에 유료로 넘겨도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판결한 겁니다.

영리목적으로 개인정보를 수집해 제3자에게 제공했다 하더라도 대중의 알권리와 표현의 자유, 정보처리자의 영업의 자유, 사회 전체의 경제적 효율성 등이 정보주체의 인격적 법익에 비해 우월하다고 본 겁니다. 또 이미 해당 교수의 정보가 대학 홈페이지 등을 통해 공개돼 있다는 점 등을 토대로 “이미 공개된 개인정보를 정보주체의 동의가 있었다고 인정되는 범위내에서 수집·이용·제공될 때는 별도의 동의는 불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네이버 측은 이에 대해 “공인이나 유명인의 경우 뉴스 등을 통해 이미 공개된 내용으로 프로필을 정리할 뿐이며 수정 등 변경사항은 당사자의 요청을 적극 반영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김수미 기자 leol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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